방송사업자들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협찬’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방송법>에 협찬을 규정하는 세부기준이 있는 만큼 투명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14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협찬 관련 방송사업자들의 온갖 법 위반과 꼼수 등이 난무한다”며 “특히 방송협찬은 각 방송사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그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방통위의 철저한 점검과 더불어 시급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협찬, 방송사의 영업비밀?

최민희 의원실은 방통위에게 지상파3사와 종편4사의 2012년부터 최근까지 협찬내역 제출을 요구했지만 자료를 제출한 방송사는 KBS 한 곳이었다. MBC와 SBS는 연도별 총 협찬건수와 금액만 제출했다.

그러나 방송협찬은 <방송법>에 따라 세부기준이 있기 때문에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체 공개가 필요하다는 게 최민희 의원의 설명이다. <방송법>은 협찬이 가능한 경우를 ‘방송사업자가 행하는 공익성 캠페인’, ‘방송사업자가 주최·주관 또는 후원하는 문화예술·스포츠 등 공익행사’, ‘시사·보도, 논평 또는 시사 토론프로그램을 제외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KBS와 MBC, SBS는 자체제작 프로그램의 경우 교양프로그램은 회당 제작비 5000만 원 이상, 예능은 7000만 원 이상, 드라마는 4회 미만의 단막극 또는 110회 이상의 연속극이거나 회당 2억 원 이상의 대작 드라마에 한해서만 협찬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방송사업자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법 위반 자체를 감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판이다.

최민희 의원은 “방통위가 제 구실을 한다면 방송사업자들이 이 같은 기준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얼마든지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할 수 있다”며 “하지만 번번이 협찬 관련 자료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방통위에는 물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출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관리감독 미비의 책임을 물었다.

<방송법> 제98조(자료제출)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방송사업자에 관련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108조(과태료)는 이를 위반한 방송사업자에게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협찬, 치외법권처럼 방송사들 마음대로…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방송협찬’이 치외법권으로 놓여있다. 특히, 종편 JTBC와 MBN은 협찬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통위는 매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을 발간한다. 해당 공표집에는 방송사업자들이 ‘광고매출’, ‘수신료매출’, ‘프로그램판매매출’, ‘협찬매출’이 기재되는데, 종편 JTBC와 MBN은 협찬 관련 매출액이 없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해당 자료는 방송사업자들이 제출한 것을 토대로 구성되는 만큼 JTBC와 MBN 측에서 관련 자료를 방통위에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문제는 해당 기간 JTBC와 MBN이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JTBC는 2012년 10월 특집다큐 <절망이 준 새로운 시작, 눈물을 희망으로>를 제작하면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7700만원의 협찬을 받았다. 또, 2013년 12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시사교양물 7편을 제작하는데 1억5000만원을 받았지만 이를 적시하지 않았다.

MBN도 마찬가지다. MBN은 한국전력으로부터 2012년 5월 2000만원, 2013년 7000만원(3건)을 협찬 받았다. <건강솔루션>이란 프로그램에서는 보훈병원 홍보 목적으로 보훈공단으로부터 6000만 원, 한수원에서 1억 원, 병무청에서 400만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200만원을 협찬받았다. 2014년 또한 한전으로부터 7000만원의 협찬을 받기도 했다. <방송법> 제98조(자료제출)는 “방송사업자는 매년 말 당해 법인의 재산상황을 방통위에 제출해야 하며, 방통위는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JTBC와 MBN이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협찬, 협찬규정도 불분명

방송협찬 관련 문제는 또 있다. <방송법> 위반 행위와 협찬규정 위반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각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협찬내역을 비교한 결과 방송사업자들이 <방송법>을 위반했거나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례들이 다수 나타났다. 하지만 법적 기준이 모호해 위반 여부를 판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료를 제출한 KBS의 경우 예컨대, <전국노래자랑>은 자체제작 프로그램으로 단 한 번도 방통위에 협찬을 받았다며 ‘제작협찬 제작비 검증자료’를 제출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해당 프로그램 또한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으로부터 다수의 협찬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억 원, 2013년 9월부터 2014년 8월까지 41차례 한전KPS로부터 회당 200만원 씩 모두 8200만원의 협찬을 받았다. 특히, KBS <전국노래자랑>은 예능 협찬 가능 기준이 7000만원이라는 점에서 ‘협찬고지 위반’이라는 게 최민희 의원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국세청에서 2200만원 등 1억3550만원 협찬), <즐거운 책읽기>(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1억 원), <러브인 아시아>(한국수자원공사에서 6000만원), <인간의 조건>(에너지관리공단에서 7700만원)도 협찬을 받았지만 검증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 SBS '인기가요' 교통안전송 협찬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SBS <인기가요> 역시 2012년부터 ‘교통안전송’ 송출 대가로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8억2500만원을 받았다. 도, 한국관광공사에서 2억5000만원, 고용노동부에서 4290만원, 에너지관리공단에서 4400만원, 근로복지공단 4180만원 등 총 12억 원 이상의 협찬을 받았다. SBS <심상이 뛴다> 역시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6600만원, SBS <자기야, 백년손님> 또한 국민보험공단에서 2200만원을 받았지만 이 또한 자료에서 누락됐다.

MBC도 마찬가지다. MBC <메이퀸>은 보건복지부에서 2200만원의 협찬을 받았다. EBS <다큐프라임>의 경우는 자체제작과 외주제작이 혼재돼 규정은 더욱 애매하다. 해당 프로그램은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1억1000만원을 받아 절전 관련 다큐를 내보냈다. 교육부로부터 1억4000만원, 고용노동부에서 6500만원을 받아 <인생항로, 나침반을 찾아서>가 제작됐다. 이 밖에도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에서 9000만원을 협찬받기도 했다.

KBS·MBC 등 방송사업자, 협찬 가능 기준에 총제작비 맞추기?

방송사업자들이 협찬이 가능한 수준으로 제작비를 아예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KBS <도전골든벨>의 경우 교양 프로그램이라 협찬가능 기준은 제작비 5000만원이다. 그런데 그 내역을 따져보면 ‘기획/진행’과 ‘미술’, ‘기타’ 등의 비용이 총 제작비를 5000만원 넘기는 선에서 고무줄처럼 형성돼 있다. 3.1절 특집 프로그램 KBS <민족운동의 거인 전덕기>은 협찬가능한 총 제작비 5000만 원이 들었다.

MBC <2013 청소년 푸른성장 대상>은 12만원 차이로 MBC 생방송 <함께 일하는 대한민국>은 34만원 차이로 5000만원 기준을 넘겼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수상쩍다는 게 최민희 의원의 설명이다.

협찬 관련 법 미비점은 더 있다. 간접광고와 협찬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방송사업자들은 현재 협찬을 PPL도 함께 포함되는 형식으로 계약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행법상 ‘간접광고’와 ‘협찬’ 규정은 매우 다르다. 특히, 간접광고의 경우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통해서만 받도록 돼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어기고 있는 셈이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최민희 의원은 “방송 협찬은 들여다볼수록 천태만상의 아수라장”이라며 “이로 인해 방송계에서 어떤 비리가 횡행하고 있는지 다들 수군대고만 있을 뿐 그 실상은 업계 카르텔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백분 활용해 협찬의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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