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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촛불 보면 야하던가?[안영춘] ‘촛불남’을 찌질이 만든 <문화일보>의 찌질한 관음증
안영춘 기자 | 승인 2008.09.29 16:14

   
  ▲ 개그콘서트 마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KBS <개그콘서트>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봉숭아학당’에 나오는 ‘마 교수’ 캐릭터가 불쾌해서라는데, 그가 불쾌해하는 이유는 (건방지게) 개그맨이 자신을 흉내내서가 아니라, 자기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흉내를 내서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불쾌감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남을 흉내내서 웃음을 유발하려면 대상의 본질을 이미지화해야 하는데, 개콘 마 교수는 무늬만 베꼈을 뿐이다.

마광수 교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파고들어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반증하는 ‘집요한’ 탐미주의자다. 혀로 핥는 듯한 ‘과정’ 자체가 본질의 한 심급을 구성한다. 그럼 개콘 마 교수는? 그에게 탐미의 ‘과정’은 처음부터 생략돼 있다. 성적 긴장과 무관한 기호 앞에서도 성적 욕망을 즉자적으로 작동시킨다. 마치 동전을 넣지 않고 툭 치기만 해도 제품이 쏟아지는 고장난 성애주의 자판기 같다. 그러니 진짜 마 교수가 어찌 불쾌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콘 마 교수는 겉모습만 늙은 중학생이기도 하다. 전두환 정권 초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나름대로 첨단을 표방해, 막 중고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흑백 TV를 교실마다 설치했었다.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이 방송수업을 할 때였다. <옷입은 마야> 그림이 비치던 거무죽죽한 화면이 <옷벗은 마야>로 넘어갔다. 순간 모든 교실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방송 수업은 곧장 중단됐다. 선생님은 교실을 돌며 매질을 했다. 아이들은 맞으면서도 큭큭댔다. 개콘 마 교수처럼.

얼마 전 ‘강안남자’의 신문 <문화일보>가 오래 잠들어 있던 내 중학생 시절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참조 : “날 ‘찌질이’ 만든 문화일보와 전쟁 벌일 것”)

“경찰은 장씨가 왜 하필 여성 네티즌만을 골라 촛불시위 참가를 유도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또 장씨가 여성 전용사이트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씨는 여성 전용사이트에서 여자 이름으로 보이는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여성 네티즌에게 접근해왔다. 장씨는 서울시내 모 중학교 교직원이며, 미혼이다.”

   
  ▲ 문화일보 7월30일자 8면  
 
‘골라’ ‘특별한 목적’ ‘여자 이름으로 보이는 아이디’ ‘접근’ ‘미혼’ 따위 열쇠말로 구성된 본문은 단 한 번도 직설적인 언급이 없지만, ‘여자들만 골라 “촛불시위 참석해요”’라는 제목, 한 남성이 한손에 촛불을 들고 음험한 표정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의 삽화와 어울려 특정한 미장센을 연출한다. 기사 속 주인공의 항변대로 그는 이 기사 때문에 “‘촛불시위 핑계대고 여자 꼬시러 여자 전용사이트에 들어온 찌질이’”가 되어버렸다.

기사가 동원한 장치들은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작품성으로는 B급 성인물이 제격이다. B급 성인물에는 놀라운 ‘절제력’이 있다. 적나라한 노출은 절대 삼간다. 대신 몇 가지 ‘암시’의 기호들로 보는 이의 관음증을 자극한다. “다 보여주면 재미없다”는 말은 이 경우에 타당하다. 관음증이 기대는 건 시각이 아니라 연상이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 여성 수영선수의 옷 갈아입는 사진을 떠올려 보라. 그 사진이 비난받은 것도 사진이 유도하는 연상이 관음적이었기 때문이다.)

관음적 본능 자체야 비난할 일이 못된다. (나의 중학생 시절도 고해성사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정신분석학 사전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기 내면에 감춰진 본능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조각들을 끼워맞춘 퍼즐 그림이 바로 인격이다.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영화가 (특히 남성에게) 불편함을 주고, 그러면서도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그 영화들이 본능을 ‘자극’해서가 아니라 그 본능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대면하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다르게 B급 성인물은 불편함을 제거하고, 대신 일회용 티슈 같은 관음의 기호만 유통시킨다. 개인적으로 불편하지 않은 만큼 사회적 부담도 크지 않다. 유통 범위가 어두운 골방이나 후미진 삼류극장 안에 갇힌다면 수용자 각자가 알아서 가볍게 즐기고 잊어버리거나, 정도가 심하면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는 정보를 사회가 제공해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업적 목표를 넘어서 정치적 의도로 이를 생산·유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화일보 기사는 철저히 경찰의 입에 의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기획자는 경찰이고, 감독은 기자다. 국가권력(및 그 하부권력인 이른바 공권력)과 언론권력의 이런 만남은 우연한 조우의 결과가 아니다. 이들은 노예시장의 상인처럼 필요에 따라 만나고, 협상하고, 거래한다. 이들의 만남과 협상과 거래는 늘 그렇듯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이들 사이를 매개한 B급 성인물은 자신들에게 공포와 위협이 되는 대상을 조롱하는 표현수단이다.

도무지 성적 긴장을 유발할 수 없는 대상에 관음증의 기호를 덧씌운다는 점에서 이들은 개콘 마 교수와 닮았다. 하지만 개콘 마 교수가 결코 사적 유희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 반면, 이들의 목적은 애초부터 유희가 아니라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있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이 영화를 통해 2008년 상반기 한반도를 지배했던 촛불은 기껏 ‘장가 못 간’ 한 노총각의 관음증에 불과하다고 짐짓 희화화하고 있다.

개콘 마 교수와의 또다른 차이는 이들의 언어가 매우 엄숙하다는 점이다. ‘순결한 세상을 음란으로 물들이려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으라’고 선언하는 표정은 근엄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엄숙주의와 선정주의는 이들에겐 입구와 출구가 하나인 회전문과 같다. 이들의 성스러운 ‘동기’(입구)는 상스러운 ‘암시’(출구)로 드러나지만, 인과관계의 진실은 정반대로 뒤집혀 있다. 음란을 박멸하려는 위생학적 강박은 정작 자신의 관음증을 외부로 투사한 것에 다름 아니다.

   
  ▲ 신정아씨 누드 사진이 실렸던 2007년 9월 13일자 문화일보 3면  
 
지난해 문화일보의 변양균-신정아 사태 보도는 이들의 회전문이 일회적 관문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민의 알권리’를 명분삼아 ‘남성(권력)의 볼거리’를 전시한 이들에게는 옷입은 마야까지 투시광선으로 꿰뚫어보려는 집요한 치기와 이를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활용하려는 뻔뻔한 권력감정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80년대 권인숙 성고문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가권력과 언론권력은 성고문 피해여성에게 “성을 혁명도구화했다”며 정절 이데올로기(관음증)와 안보 이데올로기(정치적 프로파간다)의 2차, 3차 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음증 정치 마케팅은 반복될수록 효과가 반감하는 결정적 한계를 갖고 있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사람을 현혹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거짓말이다”는 말은, 그 말이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화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언제까지 개콘 마 교수처럼 찌질이 짓을 되풀이할 것인가. 골방에서 B급 성인물만 탐닉하지 말고, 개봉관에서 몸을 배배 꼬며 김기덕이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불편함을 감당하든지, 아니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 보길 권한다. 제발 촛불 보며 엉뚱한 상상 하지 말고!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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