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이사회가 이사회 회의 방청은 허용하되 속기록은 공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공개하라는 법 취지에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향후 방문진과 EBS이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방문진은 아예 속기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다는 논의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는 지난 25일 정기이사회를 열어 ‘이사회 공개’ 관련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골자는 방청은 가능하나 속기록을 홈페이지에 공시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신청인에 한해 열람을 가능하도록 했다. 이사회는 오는 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세칙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5월 2일 국회의 <방송법> 개정에 따른 조치이지만, 법 개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 KBS 여의도 사옥ⓒ미디어스
국회의 KBS이사회 공개 결정 이유는?

국회가 KBS이사회 공개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미이행 논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초기 <정부조직법> 처리와 함께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까지 설치했지만 새누리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의 핵심으로 꼽혔던 ‘특별다수제’ 등을 반대했다. 여야는 당시 특별다수제 등을 제외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의무화, △방통위·공영방송 사장 등 임원 결격 사유 강화, △KBS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공영방송 이사회 공개(KBS·EBS·방송문화진흥회) 등에 대한 법 개정을 하자는 데에만 합의했다. 그러나 그 후, 종편을 소유하고 있는 보수매체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의무화’는 그나마 제외된 채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회의공개’는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여야 모두 이견이 없던 방안이었다. 지난 2013년 정기국회 당시 감사대상인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가 자료제출을 지연하거나 거부해 논란이 컸던 상황도 반영이 됐다. 여야는 모두 공영방송 이사회에 대한 회의를 공개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관련기사 : MBC 대주주 ‘방문진’, 국회 자료제출 요구 거부)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방송법> 제46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등)에서 “이사회 회의는 공개한다”고 규정했다. 이사회를 비공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다른 법령에 따라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가 제한된 내용이 포함된 경우, △공개되면 개인·법인 및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감사·법인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되면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제한됐다. 해당 조항은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문화진흥회법>에도 포함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회의공개 방안을 개별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결정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눈가리고 아웅…방문진·EBS이사회도 비슷한 논의 수준”

KBS이사회가 회의방청만 허용하고 속기록을 공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방송법> 개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높다. 이미 두 차례나 후퇴해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KBS이사회가 이를 다시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크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은 KBS이사회의 회의공개 방안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유승희 의원은 속기록은 공시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열람을 요청하면 공개하는 것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이 같은 결정은 국회에서 공영방송 이사회에 대한 ‘회의공개’ 결정한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 사회가 점점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법 개정 당시 미방위 야당 간사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KBS이사회의 이 같은 반쪽 회의공개 결정이 방문진과 EBS이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곳 또한 비슷한 논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방문진은 속기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다는 식의 논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영방송 이사회들의 이 같은 행태는 법 개정 취지에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나온다면 모법에서 ‘방청허용’, ‘속기록 공시’, ‘녹음공개’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방송문화진흥회 관계자는 ‘회의공개’ 여부와 관련해 “구체적인 시행 명시가 없어서 내부적으로 제정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있다”며 “10월 2일 3차 회의를 통해 최종안이 나오면 7일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KBS이사회 결정을 따를 것인가’라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이사회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따라간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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