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금학회 주최로 22일 국회에서 열린 ‘공무원의 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노조의 난입으로 무산된 데 대해 보수언론은 공무원노조 책임론을 전면에 제기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3일자 1면에 <입도 못뗀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연금학회 주최의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대한 토론회가 공무원노조 및 50여개 노동운동 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소속의 공무원들이 욕설을 하고 야유를 보내 결국 무산됐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공무원연금은 이미 응급환자 수준”, “공무원노조가 해야 할 일은 토론회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적 시민단체다.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23일자 1면.

같은 날 <동아일보> 역시 1면에 <말도 못꺼낸 ‘공무원연금 개혁’>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제목에서부터 <조선일보>와 거의 유사한 내용의 기사일 것이란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가만있으면 공무원연금 곳간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면서 올해만 정부가 공무원연금 보전으로 2조 원 이상의 세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동아일보>는 정부 차원에서 공무원연금법을 마련하더라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등에서 논란이 예정돼있으므로 개혁안 구상 단계부터 공무원들을 논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조직적 저항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같은 날 기사를 통해 공무원노조가 스스로 연금 개혁안을 제대로 따져 볼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12면 <“꺼져” “너 나와”…토론조차 못 하게 막은 공무원 노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무원노조 조합원과 지도부, 새누리당 측 간의 격앙된 대화를 상세히 전하면서 토론회 전 연금학회 측이 공무원노조에 토론회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노조 측이 “들러리가 되기 싫다”며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투쟁보다 토론이 필요할 때”라는 점잖은 조언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날 <중앙일보>는 상대적으로 점잖은 기사의 스탠스와는 달리 사설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공무원노조 측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연금 개혁 반대 집단행동, 아무도 지지 안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공무원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추세력이다”라면서 “이런 폭력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어이없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을 통해 공무원의 경우 월급과 퇴직금이 적어 연금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고 해도 퇴직금 정상화를 요구하고 스스로 적자를 해결할 일이라며 고령화로 인한 고통의 분담을 요구했다.

▲ 23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 역시 이 날 <전공노가 난입해도 ‘공무원연금 개혁’ 멈출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공무원들만을 위해 언제까지 국민이 부담을 짊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 <공무원연금 개혁, 노조가 막으면 국민도 참지만 않을 것>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해당 토론회에 대해 “공무원노조 조합원 200여명이 호루라기를 불고 야유와 욕설을 퍼부으면서 시작도 못 해보고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면서 공무원들은 노조라는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 조합비를 집회와 광고에 쓰지만 대다수 국민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주장과 논리를 펼 통로가 없어 공무원노조의 반대를 구경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보수언론의 시각에서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공무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계속 반대할 경우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공통된 표현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세금을 매개로 한 공무원 대 국민이라는 프레임을 제기하려는 시도로 평할 수 있다.

▲ 23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사설.

그러나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 기득권화됐다는 식의 프레임은 일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세금을 걷는 주체는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공적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와 국가에 고용된 공무원의 노동자성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노동자성에 관한 문제이다. 공무원노조 측은 공무원들이 애초에 받아야 할 임금과 퇴직금이 공무원연금에 반영되어 있으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노동3권을 포기하게 되는 현재의 구조에 대한 보상 역시 공무원연금 수령액에 포함돼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모두 연동돼있는 상태에서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공무원노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신중한 태도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헌법에 의해 보장돼있는 합법적인 이익단체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합원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팔짱끼고 가만히 있는 노조가 세상에 어디있는가?

물론 공무원연금의 개혁은 국가재정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사이에 정치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노동3권 보장 등 노동자성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2008년 이후 정부 내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는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 지금 어차피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면 이러한 공무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일정한 배려를 통해 이해당사자들과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키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은 오히려 느긋하다. 같은 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공무원 노조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충분히 경청할만한 점들이 있고, 연금제도 개혁에 있어 반영되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도 “이런 점들을 논의과정에서 정정당당하게, 치열하게 토론해 반영해야지 사실상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발언했다. 정치를 무슨 토론회에서 하는가? 새누리당은 토론을 말하기 전에 공무원노조 측이 연금학회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춰 공적연금체계의 후퇴를 초래한 주범 중 하나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부터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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