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의 대세 중 하나는 소설 원작 영화입니다. 개중에는 특히 이른바 '영 어덜트(Young-Adult)'를 사로잡은 소설이 많습니다. <해리 포터>로 가능성을 확인하더니 <트와일라잇>의 폭발적인 성공까지 더해지면서 지금의 트렌드를 주도했습니다. 일단 영상으로 구현한 소설을 보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을 타겟 관객을 뚜렷하게 확보한 만큼 할리우드로서는 군침을 흘리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영광을 꿈꾸며 뒤를 이어 쏟아졌던 많은 영화는 기준치 미달로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아직까지는 <헝거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영어덜트 영화를 계승한 작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시점에서 홀연히 우뚝 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 소개하는 <메이즈 러너>입니다.

제임스 대쉬너의 소설을 영화화한 <메이즈 러너>는 일찍이 지난 코믹콘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단지 설레발로 보지 않았던 건, 오로지 팬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 나온 환호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예민하다고 볼 수 있을 원작의 팬이 박수를 보냈다면 <메이즈 러너>는 분명 평범한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역으로 원작 팬은 좋아하고 그 외는 불만족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로서 <메이즈 러너>의 구조는 여타 영어덜트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배경은 디스토피아인 데다가 꽉 막힌 체제에 짓눌린 어린 청소년이 등장인물이고, 이들 사이에서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하여 용기 있게 반기를 들면서 전복을 이끌고 마침내 성공한다는 건 동일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메이즈 러너>의 주인공은 소년이라는 것과, 연출이 좀 더 장르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상업성과 더불어 다분히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뤄졌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반가웠다면, 후자는 이 영화를 오락적으로 상당히 즐길 수 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에서 칭찬해 마땅합니다.

감독인 웨스 볼은 공교롭게도 그 악명 높은 '우웨 볼'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라서 괜히 걱정이 앞섰던 것에 반해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제법 깔끔하게 조립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메이즈 러너>에는 군더더기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글레이드'라고 하는 공간에 미로를 놓고 거기에 아이들을 던져서 가두고는 시종일관 거길 탈출하는 것에만 집중토록 하고 있습니다. 그 지긋지긋하고 흔해 빠진 로맨스도 <메이즈 러너>에는 없습니다. 영화 속 생태계가 인위적으로 조성됐다는 걸 간간이 슬며시 비추는 것도 잊지 않은 건 세계관 구축을 겸하여 ​관객의 의문과 호기심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관객으로서는 부차적인 이야기에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지면서 몰입도가 한결 높아졌습니다.​

그렇다고 또 마냥 오락적인 기능으로만 점철된 것도 아닙니다. 웨스 볼은 폐쇄된 공간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대립시키면서 갈등과 공포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모로 <메이즈 러너>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 대목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글레이드는 현실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전제를 인정하고 보면, <메이즈 러너>의 중추에 있는 것은 "하나의 체제가 사회의 기틀로 잡혔을 때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때 누군가는 수긍하면서 안정적인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믿으면서 위험도 무릅쓰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메이즈 러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테마입니다. 아울러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희망'이란 것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다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약 두 시간 안에 모든 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기에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마무리와 의문으로 남긴 게 더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로에 아이들을 가둔 이유가 그렇습니다.(워낙 성급하게 처리해서 이건 원작을 한번 보고 싶네요) 뭔가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았던 소녀 한 명도 뚜렷한 역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조차 속편을 위한 소개의 일환으로 본다면 <메이즈 러너>는 시리즈의 첫 출발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마치 흥미진진한 책을 읽는 것처럼 얼른 속편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하거든요. 실은 결말부에 다다랐을 시간이라고 느꼈을 때만 해도 "재밌긴 한데 말이야, 이걸 대체 어떻게 마무리하려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우려에 부합하지 않고 <메이즈 러너>는 용케 미로를 통과했습니다.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가 자신의 모태를 어떻게 요리했는지는 웬만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메이즈 러너>는 취사선택을 알맞게 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

덧)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연기한 배우가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의 아들로 나왔던 토마스 생스터입니다. 어릴 적 얼굴이 남아있어서 금방 알아봤네요. 살만 좀 붙으면 니콜라스 홀트 못지않은 아역 출신 미남배우가 되겠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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