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아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외국인들이 패널로 나와 한국에서의 삶을 한국말로 여유롭게 논하는 토크쇼가 인기리에 방영될 정도다. 하지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독특하게도 이방인들의 한국 정착기를 다룬 3부작 특집 프로그램이 KBS1에서 방영되었다. 아마도 예능인지 다큐인지 애매한, 그 경계에 선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리라.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은 이태원 한복판에 커다란 여행 캐리어 박스가 설치됐다.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주제로 그곳을 오가는 외국인들과 상담을 하는 곳이다. 이에 영어에 능통한 알렉스가 상담자로 등장하여 100여 명의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알렉스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각자의 소회대로 자신의 앞에 놓인 떠나거나 남는 선택키를 누른다.

그렇게 알렉스와 이야기를 나눈 100명 중에서 선택된 3명의 한국 생활 100여일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 바로 <리얼 한국정착기-이방인>이다. <리얼 한국정착기-이방인>의 세 주인공은 이탈리아인 다비드, 케냐 출신의 아디와 독일 출신의 로미나이다.

이탈리아인 다비드는 아일랜드에서 만나 결혼한 한국인 아내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와 6개월째 처가에 머물며 이탈리안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 중이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는,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아내 없인 옴짝달싹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그의 야심은 연남동에 즐비한 각종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혼돈을 겪는다.

장학생으로 이대를 수료한 아디의 직장은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 각종 도움을 주는 비영리 단체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재원이지만, 고국 케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을 알지 못해 한국에서 직장을 얻은 아디는 이제 겨우 6개월 차의 신입사원이다. 이방의 그녀가 겪는 한국의 회사 생활은 밥 한 끼부터 인간관계까지 쉬운 게 없다.

독일 출신의 로미나는 독특하게도 트로트 가수 지망생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그럴 듯하게 부르는 그녀가 화제가 되면서 이미자 씨의 전국 순회공연에 초대가수로 동행하게 되었고, 덕분에 가수의 꿈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들보다 빨리 <가요무대>에 서는 행운을 얻지만, '외국인으로 진짜 트로트 가수를 하려면 한국인의 100배의 노력을 하든가, 일찌감치 그만두라는' 문희옥의 혹독한 평가에서 주춤거린다.

아디와 로미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국어가 능숙하고, 그에 비해 다비드는 몇 마디 말은 해도 알아듣는 건 영 젬병이지만, 그들이 머무는 곳 어디서나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한국인의 주식 쌀밥만 먹으면 장이 탈이 나는 아프리카인 아디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어 홀로 점심시간을 보내는 등 한국 사회의 인간관계에 서투르다. 로미나도 마찬가지다. 위계질서가 '군대'보다도 엄정한 트로트 가수 사회에서 로미나는 자칫 예의를 모르는 그저 화제꺼리의 파란 눈의 아가씨로 보이기 십상이다. 일단 언어로 소통이 안 되는 다비드는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하면 눈만 껌뻑껌뻑 귀머거리가 따로 없다.

이렇게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나도 이방인의 경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알렉스가 특별한 미션을 내민다. 그 특단의 미션 덕분에 아디는 자신을 싫어한다던 직장 상사가 사실은 그저 과묵한 경상도 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로미나는 이방인인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한국인들의 호의와 관심을 얻었다. 다비드는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지만 아내 없는 하루를 견딜 용기가 생겼다.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세 사람 중 아디의 말은 각별하다. 한국 사회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고. 글로벌 코리아에서 이방인은 여전히 한국이라는 꽉 짜여진 틀 안에 맞물려 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우선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디에게 사람들은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아디가 한국의 전형적인 직장 생활에 맞춰 적응해주기를 바란다. 케냐인 아디가 아니라, 외형은 아니라도 문화적으로는 한국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레스토랑을 여는 과정에서 다비드가 사사건건 부딪힌 사안도 바로 이탈리아를 알리기 위한 그의 취지와 한국의 실정인 것처럼.

로미나 역시 마찬가지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진짜 한국의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한 벽은 생각보다 높다. 글로벌 코리아라고 하지만, 정작 글로벌은 한국화된 조건 한에서만 코리아의 일원일 수 있다.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선배들에게 인사하기인 것처럼, 우리 사회는 글로벌을 품기에는 아직은 강고하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에 익숙해진 외국인들을 마주하다 <리얼 한국정착기-이방인>을 통해 마주한 우리나라의 외국인들의 삶은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신선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만, '글로벌 코리아'를 내건 우리 사회의 융통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아직도 이방인의 경계선에 있는 케냐, 이탈리아, 독일에서 온 세 사람. 그래도 이들은 이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머물 것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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