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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죽은 자와 맞서 싸워야 하는 고단한 신데렐라[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4.09.15 11:26

동화 속 여성은 사랑하는 남자와 인연으로 맺어지기 전까지 갖은 고난을 겪는다. 심지어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고는 죽음의 문전에 노크할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 다다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의 인연을 맺는 순간부터 그녀를 둘러싼 모든 고초는 눈 녹듯 사라지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미사여구로 선남선녀의 남은 인생을 압축하여 표현한다.

<레베카>의 초반부는 이런 동화의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돈을 벌기 위해 반 호퍼 부인으로부터 다양한 모욕적인 언사를 겪어야 하는 ‘나’는 맥심을 만나면서부터 인생 역전이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잣집 킹카’ 맥심을 만남으로, 비루했던 인생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평생을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신데렐라 이야기로 보기 쉽다.

   
▲ ‘레베카’ 임혜영,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하지만 <레베카>가 어디 멜로이던가. <레베카>의 장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로맨스물이 아닌 스릴러물이다. 극의 성격이 이러하다 보니 <레베카>는 남자 잘 만나 인생역전을 이룬 ‘나’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안착하기를 거부한다. 도리어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판타지에 어깃장을 놓는다. ‘나’가 맥심의 가문에 마나님으로 입성하는 순간부터 신데렐라 스토리는 휘발하고 그 빈자리는 ‘나’의 ‘인정 투쟁기’로 돌변한다.

뜬금없이 부잣집 마나님 ‘나’의 ‘인정 투쟁기’라니? ‘나’는 엄연히 맥심 가문의 마나님이다. 마나님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나’는 맥심 가문의 집사 댄버스 부인과 맥심 가문의 하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존재가 아닌 ‘끼인 돌’에 불과하다. 맥심 가문의 사람들에게 있어 진정한 마나님은 ‘나’가 아니라 지금은 고인이 된 맥심의 전부인 레베카이기 때문이다.

맥심 가문의 마나님 ‘나’가 전부인 레베카의 유품을 깨뜨려놓고 댄버스 부인의 눈치를 본다는 건 ‘나’가 아직은 레베카의 지위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나’의 과제는 부잣집 귀부인이 되었다는 신데렐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레베카가 자리잡은 ‘아버지의 법’을 뛰어넘음으로 진정한 마나님의 반열에 등극하는 ‘인정 투쟁’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레베카>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안착하기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법과 싸워야 하는 ‘나’의 인정 투쟁 가운데서 스릴러를 펼쳐나간다.

   
▲ ‘레베카’ 옥주현-임혜영,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하지만 이런 심각한 이야기 구조 가운데서도 이번 <레베카>는 1막에서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웃음 폭탄을 선사한다. 이는 김희원이 연기하는 반 호퍼 부인 덕이다.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는 신영숙이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아들레이드 역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는 게 믿어지는가. 신영숙의 바통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이번 <레베카> 재연에는 김희원이 1막에서 의외의 웃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사전에 히치콕의 영화를 관람하는 건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 1940년의 영화를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영화의 반전이 너무나도 기가 막힌지라 영화를 먼저 관람한 후 뮤지컬을 관람하면 뮤지컬의 반전이 ‘매우’ 밋밋해지는 부작용을 겪게 되고 만다. 초연에 넘버로 은근슬쩍 넘어가던 반전 요소는 이번 재연 들어 강화되기는 했지만 히치콕 원작 영화의 반전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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