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그리스로 여행을 온 체스터와 콜레트는 우연히 라이달을 만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아쉬움을 안고 헤어진 직후에 체스터에게 뜻밖의 일이 닥칩니다. 용케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이 때문에 라이달은 두 사람과의 악연을 이어갑니다. 체스터는 그가 돈을 탐하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콜레트와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 체스터가 저지른 일이 악화일로를 거듭하게 되면서 점점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호세인 아미니

<1월의 두 얼굴>은 비고 모르텐슨, 오스카 아이작, 커스틴 던스트와 같은 출연진만큼이나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극찬했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와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 47 로닌> 등의 영화를 각색했던 호세인 아미니의 장편 연출 데뷔작입니다. 그가 첫 작품으로 택한 건 다름 아닌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입니다. 추리소설로 굉장히 유명한 여성작가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1999년에 리메이크가 되기도 했던 <리플리>를 비롯해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과 끌로드 샤브롤의 <올빼미의 울음> 등의 원작을 썼습니다. 고로 <1월의 두 얼굴>은 저명한 작가가 쓴 원작을 각색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첫 연출한 영화란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첫 소설이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간택됐던 것처럼 <1월의 두 얼굴>은 요즘 보기 쉽지 않은 고전적인 스릴러 영화와 닮았습니다. 호세인 아미니가 의식했던 건진 알 수 없으나, 한 마디로 말해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풍미가 곳곳에 배인 인물과 이야기와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자산관리사며 부유한 체스터와 그의 젊은 부인인 콜레트 그리고 사기꾼 기질이 있는 가난한 라이달의 관계부터가 <다이얼 M을 돌려라>의 그것을 절로 연상케 합니다. (재미있게도 비고 모르텐슨은 <다이얼 M을 돌려라>를 리메이크한 <퍼펙트 머더>에서 지금과는 반대의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

치정극과 그리스/로마 신화

<1월의 두 얼굴>은 겉으로 보면 치정극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더 복잡하고 진지한 이른바 알레고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도 흔히 쓰는 방식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의 두 얼굴>이 이야기로서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건 그리스/로마 신화를 상당수 녹였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알레고리(Allegory)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리스어기도 하고, 이 영화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일어났다고 쓰여진 신화를 적극적으로 인물과 이야기에 스미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보는 '1월(January)'부터가 로마 신화에서 문의 신이자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 전쟁과 평화 등의 상반되는 성질이 한 몸에 있어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하는 야누스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1월의 두 얼굴>에서 체스터와 라이달은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인 동시에, 개개의 인물로서도 두 가지의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유하고 중년인 남자와 가난하고 젊은 남자로서 대립하지만 나중에는 이 두 사람이 각각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제목과 더불어 영화의 첫 장면이 눈속임(착시)를 염두에 두고 건축한 파르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이를 내포한 것입니다. 둘 사이에 낀 콜레트야말로 '1월의 두 얼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겪는 인물입니다. 바꿔 말하면 콜레트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1월의 두 얼굴이 성립된 것이기도 하고, 라이달이 먼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은 콜레트가 아닌 체스터였다는 것에서 각 인물의 관점에 따라 여러모로 다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조차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도입부에서 <1월의 두 얼굴>은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치고 돌아오던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실수로 그만 아버지이자 왕인 아이게우스의 죽음을 초래한 비극을 들려줬습니다. 이것은 결말이 어떨 것이라는 걸 암시하면서 이야기의 큰 테두리가 테세우스의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체스터는 아이게우스이자 미노타우르스입니다. 전자에 대입할 경우에는 또 다른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 오이디푸스까지 끌어들이면서 체스터와 콜레트 그리고 라이달의 미묘한 관계를 함께 다루게 됩니다. 특히 라이달은 친부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체스터에게 투영하면서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욕망을 품고 말았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체스터를 1960년대에 일었던 직접투자의 붐이 발생시킨 암연과 같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로 인식하게 합니다. <1월의 두 얼굴>은 이것에 신화 속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의 이야기를 엮기 위해 미궁이 있었다고 하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유적지로 가서 재현하는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비록 직접 읽은 건 아니지만 각색으로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답게 호세인 아미니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나쁘지 않게 다듬은 것 같습니다. 도입부에서 짧은 시간 동안 관객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인 이야기의 근간을 전달했습니다. 세 사람의 관계도 그 거미줄 위에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놓았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알프레드 히치콕이 중시했던 서스펜스가 떨어지고,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다루지 않은 탓에 후반부는 다소 김이 빠집니다. 체스터와 라이달의 관계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콜레트와 라이달의 그것은 등한시한 것도 아쉽습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 좋았으나 더 미묘하게 끌어올려서 여운을 남길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신 결말은 원작 덕분인지 전형적인 것 같으면서도 극적으로 매듭을 잘 지었습니다. 덕분에 <1월의 두 얼굴>에서 진짜 매력적인 인물은 악당인 줄 알았던 체스터였습니다.

★★★★

덧 1) 오래 전에 인상 깊게 봤던 <주드>의 각색도 호세인 아미니가 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덧 2) 비고 모르텐슨을 볼 때마다 미안해집니다. <반지의 제왕> 때만 해도 이 시리즈가 끝나면 연기자로 성공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폭력의 역사>를 보고 생각을 완전히 바꿨고 이번에도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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