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는 대한민국 최상위 2%만의 세금이었다. 올해 초를 기준으로 종부세를 내는 가구는 28만6354가구로 전체 가구의 2.1%만이 여기에 해당 됐다.

현행 종부세의 틀은 내용은 몰라도 누구나 이름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8·31 부동산 대책>(2005년)때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종부세를 바꾸는 일은 헌법을 바꾸는 일 만큼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어릴 적 어른들 말씀이 세상사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니랬다. 정권 바뀐 지 딱 6개월 만에 박살났다. 그것도 첫 번째, 정기국회에서 말이다.

이명박이 이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이겼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래서 그렇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98% 부족하다. 왜냐면, 종부세가 헌법만큼이나 바꾸기 어려울 것이란 2005년의 확신에는 정권은 교체될 수 있고, 국회 역시 한나라당이 장악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확실하다.

그래서 부족하다. 결론은 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정부의 확신은 유통기한 3년짜리 공수표가 되고 만 것일까? 그 확신의 1차적 박살자는 바로 참여정부 자신이다. 참여정부는 조중동의 값을 너무 작게 잡았고, 조중동과 이명박 조합의 화학적 최대치를 알지 못했다. 수에 서툴렀다. 그들이 성과라며 내세우는 장치들이 대체로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 조선일보 23일치 3면 머릿기사
그리고 조중동이다. 조중동은 모든 것을 박살내는 단독자이다. 권력은 바뀌어도 언론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끝내, 조중동이 이긴다. 지난 2년간 종부세를 내던 2%들은 총궐기하여, 사력을 다해, 틈날 때마다 종부세를 흔들어댔다. 창구는 조중동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중동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조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종부세를 '세금 폭탄'이라고 했다.

여긴 정말, 조중동을 위한 나라, 2%를 위한 정부이구나 하다가 신기한 산수를 발견했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계산에 따르면, 서울에서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숫자가 딱 2%란다. 시사IN 41호에 따르면, 조선일보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4%인데 이 신뢰도를 서울로 한정하여 역산하면,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비율은 대략 2%도 채 안 된다는 분석이다. 통계의 입장에서 정밀함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정치의 입장에서 정확한 지형 분석이 아닌가 싶다.

우석훈의 계산을 빌자면, 종부세를 박살 낸 그 막강한 힘의 물리적 실체는 고작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서울 인구의 2%이다. 그것도 종부세를 내는 2%와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2%가 겹쳐있는 2%이다. 실제로 종부세 내는 2%들은 100% 가까이 서울 인근에 살고 있을 것이고, 확신하건대 그들의 거의 100%가 조선일보를 지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2%들은 헌법보다도 바꾸기 어려울 것이란 일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해낼 수 있는 것일까? 결론은 하나다. 그들이 '프레임(frame)'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확고한 자신들의 세계 안에 나머지 98%를 가두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쓴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구제(relief)'라는 단어의 프레임을 생각해봅시다. 구제가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 받는 자가 있고, 그 고통을 없애 주는 구제자가, 다시 말해 영웅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영웅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구제를 방해하는 악당이 됩니다. '세금'이라는 말이 '구제' 앞에 붙게 되면,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은유가 탄생합니다. 세금은 고통이다."

"종부세='세금폭탄'", 그것은 지난 2년간 세상을 말하고 해석하는 프레임의 핵심이었다. 한국 언론의 정신적 구조의 영혼의 차이를 갈라 치는 칼이었다. 현실은 아니되 누구나 꿈꾸는 욕망이었다.

'세금폭탄'의 원조 격인 '세금 구제(tax relief)'를 만들어냈던 부시와 공화당은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는 정치학의 오랜 명제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리고 그 유사재인 '세금폭탄'이란 프레임으로 BBK 등 갖은 악재를 극복하고 이명박과 한나라당도 역시 이겼다. 역사는 반복되고, 모방은 누가 뭐래도 창조의 어머니이다. 미국 보수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한 비극의 방정식이 강부자를 웃게 만드는 공식으로 풀렸다.

확실한건 대개 '프레임'은 사실도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강력한 무엇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창조되었을 때는, 생각을 한없이 단순하게 고착하는 악덕을 지니는 무엇이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사실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사실을 정반대로 끌어가는 편이 많다. "종부세=세금폭탄"의 프레임을 만들어낸 조선일보의 기사가 스스로 그것을 잘 보여준다. 부동산 세제 관련 논쟁이 한창 이던 2002년 9월 6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을 읽어 보라.

▲ 2002년 9월 6일자 조선일보 3면
이렇듯 조선일보가 세상을 작동시키기 위해, 하나의 프레임을 관철시키기 위해 들이는 염치불문과 사악함의 진정성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이슈가 정리되기 전에 또 다시 그보다 더 큰 일을 던지는 이명박 스타일과 흐트러짐 없는 기가 막힌 '호흡'을 이루고 있다.

그 '호흡'은 세상을 조작해내는 '운동'이다. 2%의 이익에 98%의 존재가 몰입되는 세상. 자신보다 자신이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을 더 지지하는 세상, 객관적 현실보단 조작된 판타지가 더 현실적인 세상으로 가는 뜀박질이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동조하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반대자들조차 뜀박질을 멈추라는 소리만 지를 뿐, 뜀박질 외에 다른 '운동'을 보여주지 못 하면서 모두가 2% 세계관, 그 세계의 덫에 걸려 버렸다는 점이다.

미국이 망해간다는데도 종부세를 하릴없이 쓰러뜨렸고, 이제 앞으로 '성장', '실용', '규제' '영어' 등 많은 지겹도록 주입된 무시무시한 유사 프레임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이제 어찌해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해병대 스타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이왕 탑승한 거 어쩔 수 없이 폭탄을 앉고 지옥행 급행열차에 오른 스릴을 만끽하다 죽는 것일까? 그 전에 우선, 해병대 스타일로 머리라도 자를까.

촛불 때문에 잠시 지체되었던 열차가 드.디.어. 출발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국회민생특위 발언)란다. 안전띠가 없다는 소리다. 김정권 한나라당 대변인은 KBS 사장 교체가 "세상이 바뀌었다는 신호"란다. 브레이크마저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쐐기를 박았다. "학원비 종합대책"을 세우겠단다. 당신들이 강남에 살긴 글렀으니 그나마 애들 교육에나 절망에 가까운 희망을 걸어보라는 안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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