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들른 바닷가, 대가족인지 계모임인지 모를 수십 명의 사람들이 놀이마당을 펼친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음이 울려 퍼지고,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트롯트. 한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도, 딱히 들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도 너무나 잘 아는 트로트, 전통가요라 불리는 곡들이 불려진다. 그 노래를 듣던 아이가 말한다. '그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가나 노래만 부르면 결국 트로트구나'라고. 그렇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노래방을 가면 결국은 흥이 오를 즈음에 한껏 편하게 불러 제끼는 건 트로트, 전통 가요다.

추석날 <힐링캠프>엔 바로 그 전통 가요만 55년을 부른 이미자 씨가 출연했다. 아니, 이분이 <힐링캠프>에 아직도 나오지 않으셨던가. 그간 출연할 만한 사람은 다 나와서 출연자 고갈론이 솔솔 지펴지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이미자 씨가 이제야 나왔다니. 트로트의 여왕답게 정말 모처럼 이미자 씨의 목소리로 듣는 동백 아가씨나 섬마을 선생님이 새롭다. 왜색이 짙다 방송 금지곡이 되어 내 어머니의 흥얼거림으로나 익숙했던 그 노래를 저렇게 들으니, 괜히 감개가 무량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 어느 때보도다 이미자 씨의 노래가 흘러간 추억처럼 들척지근하다.

이미자 씨의 노래인생 50년을 추억하는 노래 '나의 노래'로 시작을 연 <힐링캠프>는, 엘레지의 여왕 대신에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하며, 55년 노래 인생을 살아온 이미자 씨의 삶을 역추적한다. 이미자 씨를 둘러싼 숱한 소문들 중 애교로 여겨지는 것들이 다시 등장하여, 그것을 통해 소녀 이미자가 국민 가수, 나아가 민족 가수 이미자로 살아왔던 인생 역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마치 그 시절 '대한 뉴우스'를 보는 기분으로 노래자랑만 하면 달려가 1등을 했던 소녀 이야기, 그 상품으로 양은 냄비, 세탁비누 등을 받았다던 이야기부터, 연락을 받기 위해 다방 앞을 전전하거나 선배 연예인의 머릿속까지 긁어주다 서러워 '주반도주'를 해야 했던 연예 초년생의 고생담이 비록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의 이야기지만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새록새록 전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살아온 55년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노래자랑만 하면 나가서 1등을 했던, 그녀의 삶에서 2등의 삶을 이해해야 할 시간이 거의 없었음을 자부심 반 당연함 반으로 내세우던 이미자의 삶이 방송 말미, 그녀가 전하는 아주 소박한 '성실성'에서 비롯되었음은 아이러니한 반전이다. 그저 아침 먹고, 점심 적고, 저녁 먹고, 삼시 세끼 챙기듯 그렇게 사는 삶이, 뜨개질을 시작하면 모자를 백 개도 떠내고, 조끼를 칠십 여개도 떠내버리는 진득함이, 바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55년 동안 구성해온 삶의 내력임을 짧은 시간의 토크를 통해 엿보게 해주었다.

또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패티김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며, 팬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기다린다면 무대에 서야 한다는 남편의 말을 빌어 아직 은퇴의 염이 없음을 밝히는 노년의 가수에게서는 여전한 무대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55년을 버티어 온 성실성의 또 다른 진지함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 국민이 노래방에 가면 결국 마이크를 들고 트로트를 불러 제끼는 현실에서도, 아이돌들의 노래가 범람하면서 전통 가요의 자리가 위축됨을 안타까워한다. 랩 등의 장르가 인기를 끌며, 자신처럼 또박또박 가사를 전달하고 그 정서를 올곧이 전달하는 방식이 한편에 밀려남을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없다는 말로 안타까움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한번도 애써 배워보지 않았음에도 어린 시절 어른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것만 보고 자란 것만으로도 '황성 옛터'란 노래가 가끔은 울컥하게 느껴지고, '동백 아가씨'가 정겨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저 어머니가 좋아하던 가수 이미자가 아니라, 55년을 한결같은 성실성으로 아직도 전성기 못지않은 가창력을 뽐내는 이미자에게 이젠 새삼스레 친근함이 생긴다. 또한 그녀의 55년을 구성해왔던 시간을 이해하면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모처럼 추석의 정서가 제대로 되살아난 <힐링캠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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