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수 경찰청장의 한 마디가 유모차 부대를 이끈 엄마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지난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어 청장은, "아무런 자유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시위에 끌고 온 것에 대해서 아동복지법의 학대 행위로 한 번 재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범래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아동학대죄 부분 적용 여부는 면밀히 법률적 검토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시 어 청장은 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을 한 것이기는 하나, 촛불 시위에 참여한 유모차 부대에 대한 그의 인식 수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촛불시위 때 자유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끌고 온 것이 아동복지법의 학대행위가 된다'는 인식을 지난 22일 오전,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서울 차 없는 날 2008' 기념식으로 옮겨 적용해보면 어떨까?

▲ 지난 22일 오전 11시, 보신각 앞에서 '서울 차 없는 날 2008'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다. ⓒ송선영
만약 이 의원과 어 청장이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차 없는 날' 기념식을 봤더라면, 기념식장 한 편에 마련된 좌석에 맥없이 앉아있던 아이들을 봤더라면, 쉽사리 유모차 부대에 '아동 학대'라는 죄명을 갖다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 지난 22일 '서울 차 없는 날 2008' 행사로 광화문 근처 도로가 텅 비어있다. ⓒ송선영
'서울 차 없는 날 2008'은 자가용 이용을 줄임으로써 대기오염, 소음, 교통체증을 줄이고 자동차 유발 대기오염 기여도를 낮춤으로써 궁극적으로 청정도시를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청정도시 만들어 나가자는 서울시의 취지, 좋다. 이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나만은, 이날 영문도 모른 채 좌석을 꾸역꾸역 채워야 했던,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쩔 것인가?

'차 없는 날' 행사가 진행되던 오전, 종로 분위기가 어떤지 알기 위해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갔다. '생각보다 행사를 구경하는 시민이 없다'고 깨달았을 즈음, 저 멀리 한 편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보신각 앞에 마련된 좌석에는, 그들이 앉은 의자보다 훨씬 작은 덩치의 유치원생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물론 곳곳에 어른들이 있긴 했지만, 몇몇 어린이집에서 동원된 유치원생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한 듯했다.

그 가운데에는 꾸벅꾸벅 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지루함에 온몸을 배배 꼬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옆에 있는 친구들과 계속 장난을 치는 아이도 있었다. 제 아무리 장난치기 좋아하는 '미운 7살'이라지만, 이들 표정에서 드러나는 저 지루함은 어쩔 것인가.

▲ 지난 22일 오전,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서울 차 없는 날 2008' 기념식에 동원된 아이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송선영
이런 아이들을 앞에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차 없는 날의 효과'에 대해 한 말씀 하셨다. 여러 어른들도 무대에 올라 '차 없는 날'에 대한 소견을 말했고, '차 없는 날 선언문' 발표도 이어졌다. "지난 해, 차 없는 날 행사로 서울시 교통량은 22%, 대기 중 오염물질은 최대 19%까지 줄었다"는 말이 유치원생들에게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다. 지루함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봐야하는 나조차 참 힘들었다.

'차 없는 날' 행사에 아이들을 동원한 것을 두고 '아동 학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이 의원과 어 청장이 주고받은 질의와 답변에서처럼,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끌고 온 것이 학대 행위에 속한다면, 이날 행사에 아이들을 동원한 것도 학대행위다. 차라리 기념식 좌석이 아닌, 도로 한 가운데 펼쳐진 '차 없는 날 공동 그림그리기'에 아이들을 참여시켰더라면, 뭐 씹은 듯한 저러한 표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지난 6월 2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어린이가 바람에 불이 꺼질까봐 조심스레 촛불을 잡고 있다. ⓒ송선영
유모차 부대 엄마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온 아이들은 적어도 '괴로운'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여기 저기 켜진 '촛불' 자체를 신기해했고, 그들 스스로가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다뤘다.

어청수 청장과 이범래 의원이 두 곳 아이들의 표정을 비교해 보고 나면 뭐라 말할까. 그들의 절대 미감(美感)과 '아동 학대'에 대한 초절정 인권 감수성의 끝이, 나는 무척 궁금하다.

>>‘차없는 날’ 주최 쪽 반론과 <미디어스>의 재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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