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남녀가 만나 가상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프로그램만 해도 벌써 몇 개째인가? MBC <우리 결혼 했어요>가 화제를 끌기 시작하더니, 케이블에서는 글로벌 편이라 하여 일본과 대만의 연예인들과 우리 아이돌들이 신혼을 꾸린다. 그런가 하면 jtbc의 <님과 함께>에서는 돌싱과 상처를 한 사람에게까지 '재혼'의 혜택이 주어진다. 결혼의 혜택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jtbc의 <대단한 시집>에서는 젊은 여자 스타들에게 시집살이를 미리 시켜보기도 하고, 연예인들끼리 가족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 일반인 가족 속에서 며칠을 사는 <우리집에 연예인이 산다(MBC every1)>까지 있으니, 남남북녀의 결합에 남한의 언니와 북한의 동생이란 조합이 그리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다하다 이젠 '탈북자'까지 예능에 끌어들이나 싶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추석 특집으로 마련된 <한솥밥>은 남북한 화합 프로젝트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의 말처럼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새터민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장막을 한 겹 들어내는 데는 영향을 미친 듯하다.

'탈북자'는 공식 명칭이 아니다. 1997년 제정된 법률은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에게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고, 2005년에 보다 긍정적 의미를 강조한 '새터민'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공식 명칭이 된 ‘새터민’을 아직도 관습화된 단어 '탈북자'로 방송 내내 지칭하는 것처럼, 추석 특집 <한솥밥>의 경우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진의 마련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출연하는 새터민도 그렇다. 김정일 앞에서 가무를 선보이던 소품조 출신의 아기 엄마 한서희와, 평양 영화음악 방송단 가수 출신 명성희는 말이 새터민이지, 외모며 출중한 노래실력이 우리나라 연예인 저리 가라다. 일반적인 새터민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연예인과 남한의 연예인이 만나 가상 가족을 이루고, 가상 결혼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맞아 보인다.

하지만 '가족'과 '연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정서가 그러하듯, 그들이 북한의 연예인이건 남한의 연예인이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빚어내는 화학적 작용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런 선입견의 장벽을 스르르 무너지게 만든다. 의지가지없는 남한에서 여전히 북한의 육아 방식을 고집하는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언니'가 절실한 한서희의 슈네 1박2일과,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남으로 내려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명성희의 장동민네 시집살이는 남과 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주는 감동을 만끽하게 한다.

아이에게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고, 간식으로 문어 다리를 쥐어주는 엄마에게 질색하는 한서희에게, 요즘 귀염둥이 딸들로 인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슈네 집 방문의 기회가 주어졌다. 남한식 육아에 대한 기대로 부푼 마음을 안고 슈네 집을 방문한 한서희. 하지만 쌍둥이에 유치원생 남자 아이를 둔, 자유방임형의 육아법이 그녀에겐 문화 충격이다.

세 아이를 둔 슈는 그녀의 '말대로' 일일이 먹여줄 수 없어서 비닐을 쫘악 깔고 음식을 늘어놓은 채 아이들이 스스로 손을 이용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송편을 만드는 과정 등에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맘껏 참여하게 만든다. 당연히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과정은 먹는 거 반 흘리는 거 반, 심지어 밟고 깔고 앉기까지 한다. 말이 송편이지 그야말로 쌀가루 범벅이다. 하지만 이것을 슈는 오감 체험법 육아라 주장한다.

그에 반해 한서희는, 집에서 그랬듯이 직접 수저를 들고 떠서 아이에게 먹여준다. 남북의 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서희가 이전의 우리네 엄마들의 육아법에 가깝고 슈가 이른바 요즘 최신식 육아법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밥알 한 톨이라도 흘리는 것을 아까워한다는 한 마디가 새삼스럽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음식을 흘리는 것이 큰 흉이 되어, 아이들이 먹다 흘리면 그것을 엄마가 주워 먹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풍족해져서 지천에 음식을 흘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서희의 그 지적은 북한에서는 물론 아프리카에서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 세상에서 뼈저리다.

그런 식이다. 이제는 대놓고 우리보다 못 사는 북한에서 온 한서희가 문화 충격인 듯 받아들이는 슈네 최신 육아법에서는, 변화된 '남한'의 문화와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아깝지 않은 먹을거리도 그렇고, 예절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먼저인 육아의 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주도성과 긍정성을 얻는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얼마나 잘 살게 되었으며, 때로는 자유로움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 중심의 세상을 꾸리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그런 '슈'네 집 최신 육아방식이, 남한의 문화가 갈급했던 한서희에게는 오아시스 같아 보인다. 아마도 집에 돌아간 한서희는 북한식, 아니 어찌 보면 우리네 전통의 육아 문화를 고집하는 엄마와 더 치열하게 전쟁을 벌일 것이다.

문화적 충격으로서의 육아 전쟁과 달리, 명성희가 찾아 들어간 장동민의 대가족은 시종일관 훈훈함을 놓치지 않는다. 이상형으로 현빈과 송승헌을 꼽은 명성희가 장동민을 보고 받은 정신적 충격도 잠시, 이제는 이방의 신부라 하는 게 더 어울릴 북한의 명성희를 품은 장동민의 가족은 넉넉한 품을 보여준다.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아버지였지만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북한식의 꾀고리 발성법으로 주체사상만을 노래하는 그곳이 싫어 평양 상류층의 생활을 마다하고 엄마와 둘이 남한으로 넘어온 명성희에게 부모님은 물론 누나와 조카, 심지어 아는 동생들까지 함께 사는 그 기묘한 가족 구조가 신의 한 수로 작용한다.

만나자마자 2세를 계획하는 섣부른 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것과 달리, 우리가 예능을 통해 알던 막말을 마다하지 않는 '무뢰배'였던 그의 캐릭터와 달리,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장동민은 명성희에게는 푸근한 보호자 같았다. 상견례 자리에서 시집살이, 시누이살이의 걱정을 자아내던 대가족은 그녀가 머무는 1박2일 동안 그녀에게 잊었던 가족의 정서를 한껏 발산한다. 시아버님은 그녀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할 테니 마음 놓고 기대라 하고, 어린 조카들은 이쁜 숙모에게 사랑이 담긴 스케치북 공세를 마다하지 않는다. 성격 좋은 하숙생들은 마음 넉넉한 시동생들 같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등장했던 명성희의 다소곳한 반전도 흥미롭다. 장동민의 외모에 충격을 숨기지 않으며 결혼을 해도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던 강단 있는 의사 표현과 달리,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자기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새벽잠 포기하기를 마다치 않는다.

'탈북자'라는 말하기도 어색했던 어감의 젊은 엄마 한서희나 새신부 명성희의 1박2일은, 가장 이질적인 그들이 아닐까라는 우려와 달리 그 어떤 외국인보다도 친근한, 우리와 다르지 않는 같은 민족임을 깨닫게 해준다. 오히려 '금강산'을 부르며 이슬이 맺히는 한서희의 눈가와 생일 파티를 준비한 가족들에게 감동한 명성희의 촉촉한 눈빛에서, 고향을 잃은 또 다른 실향민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훈훈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 추석 특집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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