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 주인공 모리(카세 료 분)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일본인이다. 전 여친 권(서영화 분)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모리는 권이 사는 집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문다. 그곳에서 모리는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카페주인 영선(문소리 분)과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윤여정 분), 그녀의 조카 상원(김의성 분)과 교류하면서 권을 기다리며, 권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남긴다.

<자유의 언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근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영화감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선의 남자친구 (이민우 분)가 영화, 뮤지컬 프로듀서로 등장하지만, 영화감독 겸 영화과 교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전작들에 비해 그리 비중이 높지 않다. 대신 여자친구와의 재회를 꿈꾸며 한국에 잠시 들른 일본인이 그 과정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채워진다.

한국이 낯선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이미 이자벨 위페르 주연 <다른 나라에서>(2012년)에서 다뤄진 바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에서 철저히 이방인이었던 이자벨 위페르와 달리 <자유의 언덕>의 모리는 스스럼없이 다른 한국인들과 어울린다. 모리가 만난 사람들은 소수의 몇 명 빼고 모두 영어에 능통한 터라 의사소통에 있어 아무런 지장이 없다.

모리와 영어로 대화를 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이질감을 느끼는 쪽은 관객들이다. 분명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문소리, 윤여정, 김의성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자막으로 그들의 대화를 파악해야 한다. 한국인 못지않게 외국인 관광객을 마주치고, 한국어보다 중국어, 일본어가 더 많이 들리는 요즘 북촌의 일상적인 풍경처럼 말이다.

때문에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영화에 종종 등장하였던 북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홍상수 영화 특유의 카메라 워킹과 장면 전환도 여전하지만 상당히 이국적이고 낯설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영화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분명 권을 만나기 위해서 한국을 찾았지만, 권을 만나는 것보다 자신이 그녀를 찾고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리는 새로 만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한국에서 모리의 2주일은 그리 연속적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권을 만나고 싶은 꿈을 안고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모리는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꿈속에서 헤맨다. 그런데 모리가 한국에서 실제로 겪은 현실과 꿈에서 본 것들이 불분명하다.

영선과의 술자리에서 모리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우리가 흔히 아는 탁자 같은 물건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은 그의 말마따나 현실과 꿈의 불분명한 경계에 놓인 모리의 편지를 통해 그가 간절히 열망하는 권과의 재회의 꿈을, 그리고 영선에게 은연중에 품었던 엉큼한 마음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일본의 연기파 배우 카세 료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음은 물론,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빠짐없이 본 관객들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북촌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독특한 묘미가 숨어 있다. 2014년 제 7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오리종티경쟁부문에 출품하였다. 9월 4일 개봉.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