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게 하기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면서 찰리 채플린이 남긴 그 유명한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서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사건의 본질을 얼마나 깊이 자세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감하는지의 여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같은 사건이 닥쳐도 그 당사자가 나라면 악몽 같았을 일도 남에게 일어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방귀를 뀐 것 때문에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이건 남자에게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지만 둘의 이별에 얽힌 사연을 듣는 주변인에게는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재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강동원과 송혜교가 주연한 <두근두근 내 인생>은 관람이 다소 꺼려졌던 영화입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제게는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신파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이 영화는 의외로 첫 시작부터 저를 당황시켰습니다. 원작을 따른 건지 어떤 건진 모르겠으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시작부터 밝은 영화였습니다. 불과 17세의 나이에 임신을 했지만 두 청소년에게는 불안과 걱정과 공포가 없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신지 끝내 낳아서 기른 아들은 조로증에 걸려 16세의 나이로 죽을 운명을 안고 있지만, 이것에서마저 비극은 별로 엿보이질 않았습니다.

덕분에 <두근두근 내 인생>은 보는 데 부담이 덜하다는 뚜렷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병 때문에 단 한번도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 아름이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심지어 이웃 할아버지까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다들 워낙 유쾌한 캐릭터라서 "과연 이게 곧 죽을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인가?"라는 의문마저 생길 정도입니다. 이것을 발판 삼아 <두근두근 내 인생>은 뻔한 이야기로 점철될 수도 있었을 신파의 함정을 피해 따뜻한 드라마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허무맹랑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연출입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물을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비극만이 아닌 희극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걸 알린 영화는 더러 있었습니다. 근래만 해도 <50/50, 한공주, 안녕 헤이즐> 등이 그랬습니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살고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시간의 일부마저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건, 우리가 가진 막연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애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막연한 동정이나 그것이 어린 시선보다는 '배려는 하되 우리와 동등한 자격의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사고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근두근 내 인생>은 자칫 우리가 간과했을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멀리서만 보게 하기

구태여 비극을 비극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 장치는 동시에 커다란 문제점도 안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로 들었던 세 편의 영화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했으면서도 <두근두근 내 인생>만이 실패했습니다. 다른 영화와 달리 <두근두근 내 인생>은 관객을 마냥 멀리 밀어내기만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 명의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관객이 있을 가능성마저 부정하고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종종 작위적인 연출까지 더해지면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라는 이야기가 금세 사라지거나 미약해집니다.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소년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결말부에 다다르면 정점을 치고 있지만 워낙 감정선이 가파르게 올라간 탓에 나머지와의 대비가 상당합니다. 마치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을 정도였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한 것까진 괜찮았으나 그 와중에도 영화의 중심에 있었어야 할 전제는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관객을 밀어내더라도 이야기의 본질에 묶은 실을 쥐어주고 보냈어야 하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것마저 잊은 채로 더 멀리 떨어지기만을 요구했습니다. 이 영화는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죽어가는 소년과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를 등장시켰지만 세 사람이 가진 고통과 울분의 색은 옅기만 합니다. 아니, 옅은 정도가 아니라 이재용 감독은 어두운 색을 밝은 색과 어우러지게 하지 않고 지우는 데만 열중한 것 같습니다. 수박 겉핥기나 구색 갖추기처럼 간간이 던지는 아픔은 영화가 원하는 바를 윤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원천적으로 <두근두근 내 인생>이 강동원과 송혜교를 캐스팅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지만 두 배우는 지나치게 아름답습니다. 연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비현실적(?)인 외모 때문에 관객에게서 더 멀어졌습니다. 예컨대 두 배우는 <두근두근 내 인생>이 철저한 판타지 영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걸 상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옳지 못한 것인지 어떤지는 함부로 속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소재가 가진 성질이 과연 근사한 동화처럼 꾸며지기만 하는 데 적합한지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일면 최근 유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관심과 더불어 기부도 이끌어내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데 반해, <두근두근 내 인생>은 과연 일시적 동정과 값싼 눈물 외에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연출과 더불어 각본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두근두근 내 인생>이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에 기인한 힘이 클 것입니다. 이 영화는 조로증 소년과 그 부모의 시점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매끄럽게 연결시키지 못해 더 산만하지만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데는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아무래도 원작의 힘이 절대적일 것 같은데,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는 아주 짧고 단순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좀처럼 몰입하기 쉽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도 눈물샘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짐작컨대 <두근두근 내 인생>의 원작은 인물들이 놓인 특수한 상황에 빗대 자식과 부모의 상호작용 내지는 상관관계를 그렸을 것 같습니다. 영화도 이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것은 같으나 그 깊이가 꽤 얕아지고 말았습니다.

★★★

덧) 강동원과 송혜교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연출의 톤에 맞추느라 종종 오버한 감이 있지만 이건 배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동원은 점점 더 '아름다운 남자'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로증 소년으로 출연한 조성목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 역시도 연출 때문인지 큰 울림을 전달하진 못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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