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로부터 8년

<타짜2>가 개봉하기까지 전편으로부터 장장 8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시리즈 영화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길 바라는 입장이지만 이건 길어도 너무 길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통용하던 말입니다. 지금은 기다리다가 지친 관객이 혼자 '시나리오 쓰고 자빠졌어도' 남을 만큼 긴 시간입니다.​ 최근 북미에서 개봉한 <씬 시티 2>도 9년의 시간을 애달프게 하다가 속이 까맣게 탄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그래도 강형철 감독이라면 <타짜2>를 ​한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희망은 있었습니다. 전작인 <과속 스캔들>과 <써니>를 한국 코미디 영화의 표준으로 삼고 싶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강형철 감독의 연출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조차도 버팀목이 될 수 없게끔 <타짜2>를 우려하게 만든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굳이 여기서 구구절절 안 써도 여러분이 금세 눈치를 채고도 남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화제가 된 '신세경 엉덩이'였습니다. 뻔하잖아요? 개봉 전부터 노출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영화가 어떨지. 어째 감이 안 좋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타짜2>가 벌써부터 '신세경 엉덩이'라는 (나름) 극강의 카드를 미리부터 빼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형철만의 색깔 입히기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가겠습니다. <타짜2>를 보기에 앞서 전편과 비교하려고 한다면, 감히 장담컨대 그건 매우 과도하게 지나친 욕심입니다. 막말로 조승우 VS 최승현, (이수경까진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김혜수 VS 신세경과 이하늬, 김윤석 VS 곽도원, 백윤식 VS 유해진, 이렇게 대충 짝이 맞는 배우로만 구도를 맞춰도 상대가 될 수 없을 패를 갖고 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야 합니다.

분명 강형철 감독도 이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짜2>의 연출을 완전히 다르게 가지고 가면서 코미디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게 강형철 감독의 특기기도 하지만 어차피 비슷하게 만들어서 붙어봤자 승산은 더 낮다는 걸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이 판단 자체는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강형철 감독은 도입부부터 굉장히 빠른 전개와 유머로 <타짜2>를 자기만의 색깔로 형형색색 물들이고 있습니다. 재치 넘치는 대사는 여전히 톡톡 튀고 그걸 소화하는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도 제법 괜찮습니다. 촬영과 편집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일찌감치 관객의 혼을 빼놓으려고 합니다. 이건 흡사 "내 영화에서 최동훈 감독의 <타짜>를 찾지 마라"고 하는 일종의 과감한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강형철 감독은 <타짜2>에서 화투판에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타짜>가 고니의 말마따나 "싸늘하다"면 <타짜2>는 화기애애합니다. 영화 전체를 코미디 영화라고 보는 게 맞을 만큼 밝은 분위기가 주도하고, 최승현이 연기한 대길이는 삼촌인 고니보다 더 순정파에 로맨티스트입니다. 일단 각본부터가 그래서 신세경을 캐스팅했을 겁니다. 그런고로 최동훈 감독이 로맨스를 갈등의 발판으로 삼았다면 강형철 감독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선택이 더 나았는지를 말하는 건 무의미하겠으나 결과를 보면 <타짜2>의 완패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패를 갖고 있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시끌벅적하고 현란한 연출로 수를 놓았던 건, 우리가 영화를 통해 배웠던 화투에 비유하면 "아름다운 여자의 팬티를 보여주고 정신을 빼앗는" 수법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먹히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채 1/3을 지나지 않아서 약발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번 비유하면 <타짜2>는 두 시간 반짜리 롤러코스터입니다. 처음 얼마간이야 재미있지만 계속 타면 누구라도 구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거나, 아무리 열광하는 사람이더라도 결국 계속되는 반복으로 인해 지루해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리한 깔맞춤

일차적인 원인은 각색의 완벽한 실패에 있습니다. 용단을 내리면서 원작을 단호하게 축약하고 각색했던 <타짜>와 달리 <타짜2>는 왠지 모르게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를 구태여 모조리 우겨넣으려고 아둥바둥하다가 자멸합니다. 따라서 두 시간 반이라는 다소 긴 상영시간마저 부족하다는 걸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역력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중구난방입니다.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캐릭터의 존재감은 일정 수준 이상 드러나기 힘들게 됐고, 특히 대길이의 감정선은 크게 흐트러져서 몰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알고 보면 각본에서 <타짜>와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타짜2>는 판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이미 실패한 그림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연출에서는 제아무리 코미디에 힘을 실어주려고 했더라도 상황이 아닌 캐릭터에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시시각각 바뀌는 배경(무대)로 인해서 여러 캐릭터의 성격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단적인 예가 리듬을 깨뜨리면서까지 오글거림을 선사한 대길이와 미나의 로맨스입니다. 신세경에게는 미안하지만 <타짜2>에게 있어서 미나는 팜므파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 남자를 유혹한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곽도원 특유의 연기까지 무색하게 만들어 그의 캐릭터는 매력을 잃고, 마지막엔 오로지 '엉덩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타짜>와 비교하는 건 과도한 욕심"이라고 했으면서도 정작 제가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결국 <타짜2>가 적잖이 기대고 있는 것은 전편이기 때문입니다. 초반부를 지나면 고광렬을 등장시키면서 전환점을 꾀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연계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흥미를 유발하거나 쓴맛을 보고 나락으로 떨어진 대길이의 절치부심으로 그려지기에는 유머와 로맨스가 과했습니다. 설상가상 비극까지 더하고 있으니 연출의 톤이 대길이 처한 상황과 어우러지기에는 적절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에 다들 기대하고 계실 회심의 일격도 마찬가지입니다. 멍석을 깔고 아예 대놓고 패러디까지 하면서 전편의 뒤를 쫓아가면서도 연출은 고집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건 십분 이해하지만 각색과 연출에서 정녕 이 방법 외엔 없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판국에는 김윤석이 아니라 연기의 신이 온다고 하더라도 <타짜2>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아귀도 혓바닥이 길어진 영화에서는 빛이 바래고 말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 두드러지는 캐릭터긴 하나 차라리 고광렬과 아귀를 제외하고 철저하게 새로운 판을 짜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전편의 캐릭터들을 보면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무모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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