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Walker

구태여 <통제불능 범죄구역>이라는 거추장스런 부제까지 주렁주렁 달고 개봉한 <브릭 맥션>은 비극적인 사고로 생을 마감한 폴 워커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영화입니다. (아시다시피 <분노의 질주 7>은 촬영 중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볼 관객에게는 더없이 좋을 영화입니다. 단, 관람포인트는 순전히 폴 워커에게만 두어야 합니다.

<브릭 맨션>은 미국의 관객들조차 할리우드의 리메이크를 반기지 않는 근거로 쓰이기에 제격입니다. 냉정하게 결론을 짓자면 이건 그냥 '복사'하고 '붙여넣기' 수준입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직무유기로 비판을 해야겠으나 더 큰 문제는 원작인 <13 구역>이 나오고서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았을 10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브릭 맨션>에도 출연한 데이빗 벨은 나이를 열 살이나 더 먹어 40대 초반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파쿠르의 창시자 중 한 명답게 실력은 여전하지만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브릭 맨션>은 데이빗 벨의 파쿠르보다는 자동차 추격전을 비롯한 폴 워커의 액션 스타일을 어필하는 것에 더 중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이니 할리우드식 액션을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For Detroit

이와 더불어 무대가 미국의 현실 속 디스토피아로 떠오른 디트로이트고, 데이빗 벨의 동생이 여자친구로 바뀐 것 정도를 제외하면 <브릭 맨션>은 거의 전부 <13 구역>과 동일합니다. ​왜 한참이 흐른 후에 리메이크를 하려고 한 건지 궁금하다는 데는 아마 디트로이트가 배경이란 것을 대답으로 들려줄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최고의 공업도시였다가 자동차 제조업의 극심한 부진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급기야 작년에는 최악의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올해 초에 개봉했던 <로보캅> 리메이크도 디트로이트가 배경이었고 놀랍게도 폴 버호벤의 오리지널도 그랬습니다.

<브릭 맨션>은 바로 그런 디트로이트의 현실을 조금 과장시킨 세상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제작할 가치가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당연히 그것만 가지고 영화를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브릭 맨션>은 파쿠르의 비중이 적어지면서 원작의 매력이 격감했고, 설상가상 설렁설렁 보여주는 수준의 액션에 그치면서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단순히 <13 구역>을 이미 봐서 그런 게 아니라 카밀 델라마르 감독의 연출이 참 가볍습니다. 물론 소재와 배경이 가진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길 바란 건 아닙니다. 얼마든지 살리고 유지할 수 있었던 액션의 긴장을 외면했고, 건물을 타고 다람쥐처럼 질주하는 파쿠르의 매력이 현저히 적어진 마당에도 그걸 보상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외적인 완성도로는 그럭저럭 감내할 만했던 <브릭 맨션>은 결말에 치달으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인내심의 기둥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안 그래도 긴장이라곤 눈곱만큼도 얻기 어려웠던 영화가 마약을 주무르던 악당을 난데없이 개과천선한 인물로 아주 손쉽게 변신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3 구역>과 달리 <브릭 맨션>은 디트로이트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싶었던 건지 갑자기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는 악당을 보니 김이 새는 걸 넘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진지하게 다룰 것이 아니었다면 현실적인 문제를 가볍게 건드리지는 않는 게 현명했을 것 같습니다.

★★☆

덧) 그래도 이 영화를 용서할 수 있다면 순전히 폴 워커 덕분일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괜히 좀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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