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으로 수많은 스포츠 스타를 배출한 스포츠 분야 유일의 국립대학 한국체육대학이 논문표절, 연구비 횡령 등 심각한 연구 부정이 만연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타파>는 최근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체대의 연구부정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에 대한 취재를 벌인 결과 제보의 내용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교수채용 등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부정의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됐다.

▲ 뉴스타파 보도 화편 캡쳐
<뉴스타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청 핸드볼팀을 이끌고 있는 임오경 감독은 한체대 대학원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모티브로 [구술사를 통해 본 스포츠 영화의 팩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중심으로]라는 제하의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임 감독의 논문은 지난 2011년 2월 한체대 하웅용 교수의 지도로 작성이 됐고, 대학원 측의 논문심사를 통과했다.

그런데 임 감독의 논문이 나오기 3개월 전인 2010년 11월 한국체육학회지에 임 감독의 논문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학술논문이 발표됐는데 제목이 같은 뿐만 아니라 본론의 일부 내용도 베껴서 쓴 듯 똑같았다.

문제의 논문을 제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 감독의 지도교수였던 하웅용 교수였다. 제2저자로 기재된 사람은 임 감독이 선수시절 임 감독과 올림픽을 제패했던 스승이었던 정형균 교수였다. 정 교수는 임 감독의 논문을 심사한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임 감독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하웅용 교수가 자신과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와 같은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논문은 어느 석사이건 박사이건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논문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그러나 자신의 말 한 마디가 두 교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음을 우려하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하웅용 교수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고,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논문의 제2저자 정형균 교수는 자신이 실제로 논문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시인하면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연구처장은 한국체육학회에 실린 하 교수의 논문을 보며 “이건 너무 했다. 이해할 수 없다”며 하 교수의 논문에 대해 “이건 임오경 감독이 제출한(석사논문) 초안을 강탈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 뉴스타파 보도 화편 캡쳐
<뉴스타파>가 한체대 교수 95명이 1993년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논문 251편을 검증한 결과 그 중 120편의 논문이 제자들의 학위논문을 재활용한 것으로 밝혀진 반면, 제자 논문을 요약, 발췌했다고 밝힌 논문은 단 1편에 불과했다.

김종욱 전 총장의 경우 조사대상 논문 가운데 지도교수로서 제자의 연구실적을 가장 많이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총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행태가 당시 한체대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관행화되어 있던 일임을 강변하면서, 이런 취재가 스승과 제자, 학교와 사화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오히려 취재진을 비난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뉴스타파>의 취재결과 한체대 교수들 상당수가 논문 표절 문제 뿐만 아니라 연구비 횡령에도 연루되어 있었다.

특히 한체대는 교수 임용과정이나 연구비 지급에 있어 해당 교수와 전혀 다른 종목에 대한 연구논문에 대해 연구실적을 인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논문들을 근거로 교수채용이 이뤄지고 연구비가 집행됐다는 말이다.

이런 비리의혹에 연루된 한체대 교수 가운데는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이거나 특정 종목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과거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들이 척척 대학 강단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 운동만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대학에서 요구하는 요건에 맞춰 석사와 박사를 하고 교수에까지 임용되는지 신기했던 적이 있다. 결국 그와 같은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와 같은 체육계의 비리가 비단 한체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논문 표절이 들통 난 문대성 IOC 선우위원의 모교는 국민대이고, 스포츠팀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도 스포츠 스타 출신 교수를 임용할 때 한체대와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체육 분야 대학의 연구실적과 교수임용 등 전체적인 학사운영은 온통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 뉴스타파 보도 화편 캡쳐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는가? 과연 해당되는 교수와 학자를 징계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결코 일벌백계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이 평생 운동만 해온 사람들을 학생들에게 실기를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교수로 임용을 하면서 교수임용 요건으로 완벽히 투명하고 깨끗한 석.박사학위 논문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스포츠 평론가 최동호 씨는 자신의 SNS에 “그래도 대학교수는 교수”라면서도 “예체능에선 실기도 당연히 중요하다. 대학이 끝까지 메달을 포기할 수 없다면 교수가 아닌 다른 명칭, 다른 자격 기준을 부여하고 실기에만 전념케 하자. 논문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이들의 성과를 측정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대안이고 제안이다.

한체대는 한국 스포츠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학교다. 특히 비인기종목을 육성하는 데 있어 한체대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런 위상을 지닌 학교다.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개혁해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번 연구 부정 보도로 인해 한체대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맞지만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좋은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이 한체대에겐 재도약의 적기인 셈이다.

한체대 내부로부터는 물론 정부 차원의 합리적 대책 마련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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