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산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단식하다 죽어라.” “새끼 잃었다고 발광한 네X”이라는 인면수심의 언어폭력과는 사뭇 다른 정중한 표현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예의를 갖춘 표현에 깃든 한 마디, 한 마디는 자기 연민과 생떼로 일관되어 있어 해명이 아닌 변명에 가까웠고 욕설을 내뱉지 않았을 뿐 논지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산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족들의 광화문 단식장에서 찍은 셀프 카메라와 함께 강한 어조로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를 포함한 세월호 유족들을 꾸짖었다. ‘세월호의 진실, 당연히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견해가 너무 다릅니다.’ 그러나 그의 해명대로 견해차를 설파한 것이라고 말하기엔 수위를 넘어선, 비판이 아닌 원색적인 비난과 저속한 욕설에 저주를 담은 인신공격성 망언일 뿐이었다.

이에 ‘황제 단식’이라는 조롱의 동조 댓글을 단 동료 배우 정대용은 자신의 출연 영화 해무 보이콧으로 이어진 네티즌의 분노에 30년 배우 생활을 내려놓은 장문의 사과문을 썼다. 분명 그의 실언 또한 네티즌의 공분을 사기엔 충분했으나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선 인면수심의 욕설로 즐비한 이산의 막말에 비해 그저 댓글 하나였던 정대용이 받은 처벌은 가혹하다는 의견 또한 있었다.

단역 출연이 대부분이라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은 아니지만 그 또한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인간극장-내 인생에 조연은 없다’편에서였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큰돈을 벌지 못해도, 비록 단역에만 만족해야 해도 그저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배우 정대용의 소망을 절절히 그려냈었다.

무대 아래서 소년처럼 들떠 행복해하며 “죽을 때까지 두근거릴 것 같다”던 정대용이었기에, 단역의 출연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 보이던 배우 정대용이었기에, 그가 30년의 배우 생활을 내려놓는다는 결정은 사사로운 치기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의 힘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분노였기에 배우 생활을 내려놓는 것으로 성의를 표현해야했던 정대용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다시 배우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생겼다. 댓글 하나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 또한 민심을 빙자한 갑의 횡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황제 단식’이라는 댓글의 수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죽어라!’를 외쳤던 문제의 근원 이산은 도리어 본인의 욕설을 받은 피해자 김영오 씨를 지목하며 ‘조건부 사과’를 내걸어 재차 대중을 기함하게 했다. "김영오 씨! 역사상 '한민족 최초로 최고통수권자 앞에서 쌍욕한 당신' 대통령께 먼저 사과하면, 당신께 사과하겠습니다.“

이산의 조건부 사과, 공개 비판은 김영오 씨를 포함한 세 명의 대상을 향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해무 보이콧’의 피해를 덩달아 보고 있는 선배 배우 문성근을 향해 일침을 놓았다. “배우는 세상의 객관자요, 심판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선배님도 '셰익스피어의 광대들'을 기억하시겠죠?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 사사로운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저의 무례함의 대가, 달게 받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 여러분을 호소하며 친형과 부모를 잃어버린 슬픈 가족사를 전했다. '국민 여러분!!! 저도 내 친형을 불과 보름 전, 49재 치르며 세상 떠나보냈습니다. 형은 죽은 지 열흘여 만에 발견됐습니다. 비명횡사였지요. 형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돼 있었습니다. 전 국가에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죽음, 자식의 죽음, 형제의 죽음, 모두 가족인데 아픔의 크기가 다릅니까?’

연달아 가족을 잃은 슬픔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공황장애와 뇌경색을 앓고 있다는 이산의 사연은 그의 모진 말에 결부시킬 필요가 없을 만큼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산 자신이 세월호 유족을 저주한 핑계로 가족의 죽음을 논하는 것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망자의 넋 또한 모욕하는 꼴이다.

이산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어찌하여 세월호 유가족에게 언어폭력을 해도 될 이유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월호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그 또한 인지했듯이 ‘세월호의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국가 차원의 수습이 절박한 현 시대의 당면 과제이기 때문이다.

▲ 단식 36일째를 맞은 세월호 유족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교황 이한에 즈음한 유민아빠의 입장표명 기자회견'에서 상의를 걷어 마른 몸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김영오 씨는 방한 기간중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를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연합뉴스
형의 죽음을 국가에 책임지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산이지만, 개인이 수습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나라의 재앙이라면 이산 또한 국가에 진상 규명을 요청하고 책임을 바라는 것이 옳다. ‘세월호의 진실, 당연히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견해가 너무 다릅니다. 부디 세월호 정국이 돌파구를 찾아 합의돼 국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되길 빌어봅니다.’

본인조차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당사자인 가족의 진상 규명 촉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색적 폭언을 퍼부으며 사과문에서조차 ‘조건부 사과’를 운운하는 것은 해명 아닌 변명이며 세월호 유족을 향한 어처구니없는 생떼쓰기에 그저 언어도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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