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업계획서 미이행을 이유로 방통위가 종편4사에 부과했던 3750만 원의 과징금을 전부 취소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합의제 행정기구의 처분을 무력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정형식)는 지난 24일 TV조선과 JTBC, 채널A, MBN 종편4사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 2013년 8월 21일 종편4사에 공통적으로 △2012년 콘텐츠 투자계획 중 미이행 금액과 2013년 계획한 투자금액을 12월말까지 이행, △2013년 재방비율 준수 등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 후, 방통위는 종편4사가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자 2014년 1월 28일 각 사별로 과징금 3750만원을 부과시켰다.

그러나 법원은 과징금을 취소해달라는 종편4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종편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마저도 법원이 무력화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원 판결문을 따져보면, 오히려 문제는 방통위의 ‘시정명령’ 내용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계획서 이행이 단순 권고?…종편4사의 아전인수와 법원판결의 의미

이번 법원 판결문을 보면, 종편4사는 방통위의 ‘사업계획서를 성실히 이행해야한다’는 사업 승인조건을 단순 ‘권고’의미로 해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종편4사가 방통위의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과징금' 부과에 대해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주장한 내용(판결문 중)
종편4사는 자신들이 사업계획서로 제출했던 ‘콘텐츠투자계획’에 대해 “(사업)신청 당시 예측보다 실제 선정된 사업자 수의 증가”와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심화로 인한 수익감소”, “매출액과 납입자본금, 재무거전성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재방비율’ 또한 “종편 채널의 특성과 시장상황 변화를 고려했을 때 이행 불가능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밖에도 종편4사는 “시정명령 내용이 이행 불가능함에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콘텐츠 투자금액을 늘리고 재방비율을 줄이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종편4사의 주장은 그야말로 사업 승인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다. 종편에 대한 사업 승인 심사가 사업계획서 이행을 전제로 진행됐고 이에 맞춰 종편 사업권을 내줬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편사들이 방통위가 승인조건으로 내세웠던 ‘사업계획서를 성실히 이행해야한다’는 문구를 단순히 권고적 해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법원 판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법원은 먼저 ‘사업계획서를 성실히 이행해야한다’는 승인조건은 ‘권고’라는 종편4사의 주장에 대해 “방통위의 승인조건은 단순히 ‘권고적인 의미’가 아니라 <방송법> 제99조(시정명령등)에 따른 승인조건이라 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종편4사가 사업계획서상 콘텐츠투자계획과 재방비율을 지키지 않은 것은 승인조건을 위반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 종편4사의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소송 제기 근거에 대한 법원의 판단
법원은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원고들(종편4사)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내용이 심사과정에서 반영돼 종편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보인다”며 “또, 보도·교양·오락 등 종합편성을 하려는 사업자들은 방통위의 승인을 받도록 더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종편 도입의 정책목표(방송의 다양성 제고 및 경쟁활성화,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행해야 되는 사항에 대해 별도로 승인조건을 부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 종편4사가 2012년과 2013년 사업계획서상 콘텐츠투자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법원의 판결
법원은 또한 2012년과 2013년 콘텐츠투자계획 이행에 대해서도 “방송의 다양성 제고와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라는 종편 도입에 비춰 사업계획서상의 콘텐츠투자금액의 이행은 사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라고 판단했다. 이어, 종편4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수익구조와 납입자본금, 재무구조, 사업환경 변화 등에 대해서도 “<방송법>에 따른 시정명령 시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투자금액 부분은 이행가능성이 결여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과징금 전부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종편4사에 대해 과징금 전부취소 결정은 내린 데에는 방통위가 종편4사에 부과한 시정명령 중 ‘2013년 재방비율 준수’ 부분이 문제가 됐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 종편4사에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2013년 재방비율 준수’를 요구했다. TV조선의 2013년 재방비율은 43.5%로 사업계획서 23.8%보다 월등히 높았다. JTBC의 재방비율은 62.2%(사업계획서상 16.9%), 채널A 46.2%(22.6%), MBN 48.7%(29.2%)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법원은 종편4사가 사업계획서상 2013년 재방비율을 준수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TV조선에 대해 “현재까지 재방송시간은 147630분으로 사업계획서상 2013년 재방송시간인 125093분(23.8%)을 초과했다”며 “이는 당사자들 간(종편-방통위) 다툼이 없으나, 원고들(종편4사)에게 산술적으로 법률적으로 이행가능성이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결정했다. JTBC와 채널A, MBN 역시 같은 논리가 적용됐다. 법원은 이어, “시정명령 중 재방비율 부분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종편4사의 “남은 기간(9월 이후~`1월) 동안 재방송을 한 번도 하지 않고서도 달성할 수 없다”는 부분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시정명령은 과거의 위반행위로 야기돼 현재에도 존재하는 위법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라면서 “시정명령은 상대방이 이행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행 불가능한 시정명령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과징금 3750만원 ‘전부취소’ 이유에 대해서도 “시정명령 중 재방비율에 관한 부분이 위법해 무효가 된 이상 (그에 따른)과징금 처분도 하자가 승계된다. 이 사건에서 (시정명령 대상으로 인정된)콘텐츠 투자금액 부분만의 미이행을 이유로 한 과징금 액수를 산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원은 종편4사가 과징금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 수많은 이유 중 사실상 일부만을 인정한 것이다. 오히려 법원은 종편4사가 사업계획서를 단순 ‘권고’라고 주장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2012년과 2013년 사업계획서 상의 콘텐츠 투자를 이행해야한다는 시정명령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그런 점에서 법원의 이번 판결은 종편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2013년 재방비율 준수’하라고 명령한방통위의 시정명령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종편은 아전인수로 이를 해석하고 있지만 법원은 종편이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킬 수 없는 시정명령을 한 방통위의 결정이 문제가 있으므로 그에 따른 과징금 처분만을 취소한 것이다. 결국, 방통위의 잘못된 시정명령이 그들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

※관련기사
○방통위, 승인조건 미이행 종편4사 '시정명령'(▷
링크)
○TV조선, 콘텐츠 투자 계획 16% 이행…과징금 3750만원(▷
링크)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