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싱어 시즌3 첫 회는 이선희를 섭외한 것부터 이미 대박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어찌됐던 간에 상관없이 이선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 오래 간직할 소중한 선물이 됐다. 과거 불후의 명곡에 이선희가 출연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수와 모창자를 겨루게 하는 이 못되고 장난기 심한 프로그램에 이처럼 큰 감동이 있을 줄 몰랐으며, 또한 이선희의 30년 중 족히 30년을 모두 팬이라 자부하던 사람들에게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으니 어르고 뺨친다는 것이 딱 이런 것이리라.

굳이 패널들이나 판정단 이야기를 할 것 없이 내 자신부터 그랬다. 노래방을 자주 다녔던 시절에도 항상 내 레파토리의 절반은 이선희의 노래였다. 남자가 부르는 이선희 노래는 시작부터 한계가 극명했지만 하도 부르다 보니 제법 이력을 붙어 결국에는 잘 한다 소리를 듣기에 이를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이선희가 나오니까 볼 뿐이었고, 이선희를 찾아내는 일에 적극적일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혹시나 헷갈릴까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패널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서의 프로그램들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경우 패널들의 이선희에 대한 언급은 애정경쟁, 충성경쟁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이선희를 사랑하고, 누구도 이선희를 따라하지 못할 거라는 전제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긴 30년을 들었으면 고작 모창에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확신은 겨우 1라운드에서 흔들리고 말았다.

물론 이선희를 찾아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이선희와 같지 않은 모창자를 걸러내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진짜 이선희를 선별하고 결정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까지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 놀라웠다. 절대 복제불가의 목소리라고 여겨왔던 이선희의 모창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해낸 것도 믿기 어려운데, 가창력까지 갖춘 것에 혹시 방송사에서 립싱크를 시킨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병까지 들 지경이었다.

스스로 이선희 광팬이며, 듣는 귀를 가졌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굴욕이었으리라. 그것이 히든싱어의 묘미이자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프로그램 아니 이선희 편에는 굴욕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주 여러 가지 색깔의 감동들이 시청자와 그리고 이선희 본인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그 점에 또 놀라고 심지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예능이란 것이 즐거우면 그만인데 감동스럽고 그래서 또 고맙기까지 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고마운 것은 이선희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선희에 대한 모창자들의 사랑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열렬하되 광적이지 않은 참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특히 슈퍼스타K 예선에 합격하고 슈퍼위크를 기다리던 김원주양의 사랑은 참 뭉클했다. 25살의 나이는 추억보다 꿈이 우선일 때다. 그런데 그 꿈을 잠시 미루고 자기 엄마의 추억과 자신의 사랑을 찾아 히든싱어에 나오고, 그토록 바라던 이선희와의 대면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참 순수해 보였다.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도 숭고한 행위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 사랑에 빠질 수는 있어도 오래 지속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히든싱어 이선희 편에서의 최고 감동은 그 오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팬의 사랑에 이선희가 받은 감동은 정말 커보였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의 이선희는 이 경험이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지탱할 힘이 될 거라 수줍게 고백할 정도였다. 히든싱어 이선희 편은 최근 예능을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흥분에 빠지게 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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