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시연 학생의 어머니 윤경희 씨 (사진=미디어스)
세월호 참사 130일째인 23일 오후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기소권을 가지는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기 위해 시민들은, 오늘도 거리로 나왔다.

참사 이후 수차례의 집회가 열렸지만, 영문도 모르고 가족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들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참사 초기에는 아이를 잃은 아픔 때문에 슬픔을 걷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정부와 어떤 진전된 합의도 이루지 못하는 정치권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울먹인다.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시연 학생의 어머니 윤경희 씨는 광장에 나온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아이를 잃고도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거리를 떠도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같이 힘을 보태주기를 요청했다. ‘세월호’를 지겹다고 하기보다는 싸움에 함께 나서 달라는 부탁이었다.

“통상 배가 15도 정도 기울면 퇴선 명령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90도가 기울 때까지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내보내 자기들은 다 살아 돌아왔고 저희 아이들은 믿고 기다리다가 다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중략) 우리 엄마아빠는 정말 기다렸습니다. 믿고 기다렸고 팽목항에서 울부짖으며 매달리고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고 거짓말만 했고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중략) 저희는 거기서 그렇게 힘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와서는 전국으로 서명운동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청와대로, 국회로, 광화문으로 나갔고 유민아버님은 단식까지 했습니다. 팽목항에서는 힘이 없던 부모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사실 집에 있는 아이들도 돌봐야 하는데… 물론 저희 엄마아빠들도 생존한 아이들도 많이 힘들지만 같이 자란 형제자매들도 지금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도 굉장히 심하고요. 그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저희 엄마아빠가 밖에서 특별법 제정해달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겹다 지겹다 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수사권과 기소권 있는 특별법 제정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전재숙(고 이상림 씨 부인) 씨는 여전히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전재숙 씨는 “이 정부와 싸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저희는 지금까지도 외치고 소리치고 싸우고 있다, 누구 하나 귀 기울여주는 사람 없지만…”이라면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힘내시기 바란다. 저희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에게는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못한 열 분과 그 가족들, 지금 여기의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함께 힘을 모아주시고 안아주시고 목소리 높여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계속 관심과 애정을 쏟아줄 것을 부탁했다.

▲ 23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 '청와대는 응답하라'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시와 편지로 유가족 아픔 어루만지는 문학인들
청와대 항의 행진으로 힘 보태는 대학생들

황규관 시인은 <지금은 서정시를 써야 할 시간>이라는 시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했다.

황규관 시인은 “눈을 감을 수 없는 꽃봉오리들아. 이제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도록 했다. 그런 낭만으로 슬픔을 더 이상 치장하고 싶지 않구나”라며 “기도 따위로 시퍼런 절망이 아문다는 건 너희를 삼킨 파도에 대한 모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갑갑한 교복 차림으로 살아오지 말거라”라며 “서정시 한 편으로 와서 새 울음 같은 음악이 된 다음에 떠나거라 우리와 함께 영영 떠나거라”라고 말했다.

이시백 소설가는 “세월호와 함께 희생된 어린 영혼들과 아직도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바친다”며 편지를 낭송했다.

어린 배를 태웠던 배가 탐욕의 짐을 내려놓았더라면
배를 지키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사람의 양심을 지녔더라면
해경과 관리기관들이 조금만 더 성실했더라면
바다에 쓰러진 배를 위해 이 나라가 조금만 더 서둘러 달려갔더라면
달려가 물 속의 제 아이를 구하듯 배 안으로 달려들어갔더라면
기울어진 배 안에서 가만히 있던 너희들에게 어느 어른 한 사람만이라도 가만히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했더라면 너는 지금 차가운 물에 있지 않아도 되었으리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했더라면 너는 지금 차가운 물에 있지 않아도 되었으리

네가 가라앉던 배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이 시간에 이 나라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철문을 손톱이 닳도록 긁어대던 그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과 어른들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

▲ 이경환 서울대 총학생회장 (사진=미디어스)
서울대, 경희대 등 소속의 대학생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및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며 오는 25일 서울대 정문에서 한강대교를 거쳐 청와대까지 4시간 동안 행진을 하고 광화문 광장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난다는 계획이다.

이경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참사 이후 대한민국을 전반적으로 바꾸자고 대통령이 말했는데도 정부와 여당, 심지어는 야당까지 가세해서 이것을 뭉개고 넘기려고 하고 있다”며 “저희는 민교협, 총학생회, 민주동문회 등과 함께 학교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자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경환 총학생회장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을 대통령이 결단하고 여야도 이 마음을 받아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이것이 유가족만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하고 있단 걸 보여주기 위해 정문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을 가려고 한다”며 “9월에는 전국 대학생들이 움직여 청와대까지 가는 판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뜻을 같이 하는 각계의 시도와 참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대학생들의 청와대 행진이 열리고, 29일에는 4대 종단 성직자들이 서울광장에서 법회와 기도회를 연 후 청와대로 행진한다. 30일까지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을 경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31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한편, 이날 범국민대회에는 세월호 유가족, 시민들뿐만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서 2년째 장애인 등급 폐지 및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장애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천호선 의원, 박원석 의원과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 노동당 이용길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 윤관석 의원, 이학영 의원 등도 자리를 같이 했다. 범국민대회가 끝나고 이들은 유가족들이 이틀째 농성 중인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로 이동하려 했으나 경찰병력에 막혀 저지됐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석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이날 오후 7시에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2주년 맞이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앞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대회에 모인 장애인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 23일 세월호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유가족들은 2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을 공식 요청했고, 답을 들을 때까지 청운동 동사무소 앞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사진=미디어스)

▲ 범국민대회가 끝난 후인 오후 6시 15분 경, 시민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청운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수많은 경찰병력에 막혀 결국 저지됐다. 노동당 이용길 대표,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 (사진=미디어스)

▲ 경찰은 청운동을 향해 평화적으로 행진하려는 시민들을 막아서며 "선동 행위를 중단하라", "미신고 불법 집회다", "불법행위를 중단하라. 많은 시민들이 현재 불편을 겪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에 시민들이 항의하며 길을 비키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집회 참석 후 청운동으로 가려고 했던 한 장애인이 수많은 경찰병력들 사이에 고립돼 있다. (사진=미디어스)

▲ 이날 범국민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온 취재진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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