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닌 인간 이지아로 처음 마주한 그녀의 첫 인상이 그랬다. 얼마 전 출연했던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거장 김수현이 그녀의 캐릭터 은수를 만들 때 딱히 손댈 필요도 없었겠다 싶었다. 이지아가 곧 은수였다.

우아하지만 애처롭고 사근사근하지만 묘하게 신경질적인. 그리고 그녀 주위를 공기처럼 둘러싼 어떤 외로움. ‘외로움’. 캐릭터라는 가면, 그리고 기사 위에 적힌 텍스트가 아닌 인간 이지아를 직접 대면한 첫 느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었다.

위인의 삶 이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위인의 연인이다. 도대체 그(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위대한 인간의 뮤즈가 되었을까. 익숙한 가곡, 포스터의 ‘금발의 제니’는 금실 같은 머리칼을 넘실대며 시냇가를 거니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녹여냈다.

“한 송이 들국화 같은 제니. 바람에 금발 나부끼면서 오늘도 예쁜 미소를 보내며 굽이치는 강 언덕 달려오네.” 나는 이 향수 같은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160년 전 제니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궁금해 했다.

그러니 현재 이지아의 치부로 회자되는 그녀의 두 가지 열애설 또한 이지아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랑거리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서태지의 전 아내, 정우성의 전 연인. 물론 현재진행형이 아닌 사랑은 아픔이다. 하지만 세기의 스타와 손에 꼽는 진짜배기 슈퍼 미남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상처 이상의 영예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지아는 ‘마지막 결혼은 나와 함께!’를 선언하며 남자를 버리고 나에게 반지를 선물했던 오은수처럼 결코 자신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날 나는 90퍼센트 이상이 이지아의 연애사로 기록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영화 제목을 그녀와 겹쳐 떠올렸다. ‘누구의 여자도 아닌 이지아’. 문화 대통령 서태지를 이야기하고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완벽한 피사체, 정우성과의 사귐을 말하면서도 그녀는 쭉 혼자였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모태 신비주의 전략의 서태지와 네티즌 수사대마저 포기한 묘령의 여인 이지아가 실은 ‘결혼했었던’ 사이라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따돌린 채 둘만의 사랑을 개척했을까. 이 놀라운 썰을 푸는 이지아의 입에서 애석하게도 ‘로맨스’는 없었다. 그저 후회와 증오만 남아있었을 뿐.

이날 이지아는 제 이야기가 아마 끊어진 다리 같을 것이라고, 그 모든 과정을 속 시원하게 불어버릴 수 없는 내 한정된 자유를 이해해달라고 첨언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시켜 이지아가 말하지 않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상상은 제압되지 않는다. 그래서 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고 또 위험한 것이다.

"저는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살만 더 많았어도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성년자와 성인의 교제, 그리고 부모님조차 만날 수 없었던 ‘다람쥐에게도 숨겼어야 했을 사랑.’ 어린 날의 판단 미숙으로 서태지의 손을 잡은 이지아가 그토록 가학적이고 비정상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서태지의 슈퍼 갑질을 참아줬던 것은 그게 바로 그녀의 사랑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태지의 비밀을 감추어주는 것이 내 사랑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어린 바보였다.

이날 이지아는 직접적으로 서태지를 부르지도 못했고 ‘감금’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도 않았었다. 그때의 생활이 어떠했더라하는 구구절절하고 구차한 디테일 또한 생략되어 있었다. 하지만 절반이 은유로 구성된 이 두루뭉술한 문장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서태지를 ‘성인이 되어 지난날을 크게 후회할 만큼 판단 능력이 없었던 어린 아이를 7년간 감금한 나쁜 사람’으로 둔갑시켜놓았다.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커지는 의혹에 서태지 측 또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진화 작전이 아닌 도리어 기름을 붓는 형국이었다. 서태지 컴퍼니 측은 이지아가 던진 수수께끼를 확대 재생산 시킨 네티즌의 두 가지 주장 -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자와의 결혼, 자유가 억압된 감금의 결혼 생활- 을 반박했다.

“1. 두 사람은 여느 평범한 가정의 남녀와 같이 양가의 부모님도 서로 왕래하며 정식 허락을 받고 교제를 하였습니다. 2. 두 사람은 미국에서 여행도 다니고 쇼핑, 외식도 하며 지냈습니다.” - 서태지컴퍼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이지아, 자유를 위해 미국을 선택했다는 서태지.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유’의 범위에 대한 가치관이 부딪힌 오해인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신비주의의 끝판왕이었던 두 사람의 결혼이라니. 다람쥐에게조차 숨겨야만 했던 사랑이라는 말만큼은 엇갈린 양측의 주장 속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일 테니까.

쌓여가는 오해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 싶은 억울한 발동동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다. 허나 비록 흘러간 과거의 사랑일지언정 세상을 버리고 능욕할 만큼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일체의 배려 없이 그저 할퀴고 물어뜯는 폭로전만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지아와 서태지의 진흙탕 싸움은 옛 연인과 뮤즈를 향한 배려는 물론 현재의 아내인 이은성과 팬들을 향한 배려 또한 상실되어 있어 입이 쓰다. 비밀리에 연애를 해야 했을 두 사람의 심경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결국엔 두 사람은 세상을 속인 것이고 팬을 기만한 것이다.

능욕 당했다는 배신감을 애써 팬심으로 버티고 있을 그들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의 나날들을 상기시켜주는 두 사람의 폭로전은 일체의 배려를 찾을 수 없어 잔혹하기 짝이 없다. 팬들에게 형식적인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두 사람의 이기심. 한 달여의 출산 예정일을 앞둔 서태지의 아내 이은성이 있는데 하필 이 시기에 힐링캠프에 출연한 잔혹한 이지아와 사무적이기 짝이 없는 서태지의 태도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힐링캠프가 이지아를 기다린 것처럼 같은 이유로 환영을 받았던 어느 날의 무릎팍도사 게스트 정우성. 그야말로 폼이 아이덴티티였던 그에게 세상을 뒤집는 연인의 이혼 소식은 폼을 잃은 적이 없었던 남자 정우성에게 세기의 다시없을 상처였다.

이런 정우성에게 무릎팍도사 게스트석은 힐링캠프의 이지아처럼 폭로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정우성은 오히려 그것을 용서와 포용의 시간과 맞바꾸었다. 정우성의 입에서 되새겨진 이지아는 위인의 연인처럼 오로지 사랑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있는 인간처럼 여겨졌었다. 이 방송을 통해 정우성은 끊임없이 이지아를 용서했고 위로했다.

이지아는 벌써 정우성의 배려와 용서를 잊어버렸나. 물론 놓쳐버린 청춘에 대한 회한이 서태지를 향한 원망으로 돌변했을 그녀에게 같은 강도의 너그러움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기의 사랑’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두 사람의 관계를 스스로 흙탕물 가십과 연예인 스캔들로 하락시켜버린 참을성이 미치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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