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르노빌의 봄>의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 씨가 지난 12일에 열린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외치는 플래시 몹에 참여하였다.

지난 13일 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의 막이 올랐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와 함께 한국의 양대 만화 축제인 BICOF는 비록 SICAF에 비하면 1년 늦게 시작되었고 한동안은 SICAF에 밀린다는 인상을 들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SICAF가 여러 사정에 휘말려 점점 답보하는 사이 BICOF는 2009년 행사를 관리하는 기관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부천영상문화단지에 새롭게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BICOF는 전시 기획과 만화 관련 업체들의 홍보 부스, 시민 참여 행사는 물론 심도깊은 컨퍼런스와 함께하는 새로운 만화 축제의 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만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지만 이 중 눈여겨 볼 프로그램은 14일 진행되는 ‘스페셜 대담 1’이다. <만화, 실재를 그리다 : 르포 혹은 미시사>를 주제로 진행된 이 대담에는 <체르노빌의 봄>의 엠마뉘엘 르파주, <어느 아니키스트의 고백>의 안토니오 알타리바(▷ 관련 리뷰), 그리고 <사람 냄새>의 김수박과 <먼지 없는 방>의 김성희가 참여한다. 이들 작가의 공통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르포 만화를 그렸으며, 한국에 출간된 이래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엠마뉘엘 르파주 작가의 경우 이번 BICOF에서 한국에 출간된 두 번째 작품이자, 작년 부천만화대상에서 해외작품상을 받은 작품 <체르노빌의 봄>의 단독 전시회가 같이 열려 그의 작품 세계를 더 가깝게 알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르파주 씨는 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 녹색당 당사에 들려 당직자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세월호 유가족들과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이 담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이 벌어지는 광화문 광장에 들렀다. 그는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농성 중인 천막 안에서 유족들에게 드리기 위한 크로키를 그렸다. 그 크로키에는 한 소녀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를 특정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아이들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문득 <체르노빌의 봄>이 전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체르노빌의 봄>이 어느 봄 안전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원전이 이상을 일으키며 고통을 전한 파국을 그렸다면, 세월호 사건 역시 국민이 가지고 있던 신뢰와 안전에 대한 믿음에 파국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가 한국에 방문한 것에는 그러한 필연이 있지 않았을까. 농성장 방문을 마치고 나서 르파주 작가와 만나 인터뷰를 나누었다.

▲ 한국에서 <체르노빌의 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프랑스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주 씨.

한국의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나는 만화가이고, 30여 년 전부터 만화를 그리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르포르타주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 2011년 출간된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씨네21북스 발행)로 처음 소개되었다.

책에 기재된 약력을 보니 13세부터 <스피루와 팡타지오> 시리즈 등 유명한 만화에 참여했던 장-클로드 푸리니에의 문하생으로 활동을 했다고 나와있다. 상당히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게 된 셈이다. 어떻게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는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림은 우리의 내면적인 삶을 표현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리기를 멈춘다. 나는 단지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그렸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클로드 푸리니에 작가의 문하생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만화를 주로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그의 만화를 좋아했고 마침 그와 같은 도시에 살았기에 편지를 보내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렇게 그의 문하에서 배우게 되었다.

<체르노빌의 봄>의 주된 소재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은 1986년, 그리고 당신이 19세가 된 해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었나.

제일 먼저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체르노빌 사고로 발생한 방사는 구름은 프랑스를 지나갔고, 그 공포는 당연히 프랑스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그 사고가 단순히 프랑스 바깥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감싼 사고라는 것을 그 때 깨닫게 되었다. 반핵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니 그 공포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답했다. 체르노빌 사건 전까지는 그렇게 큰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렇게까지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고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다. 그 이전에 핵폭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매우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건 이후로) 이제 우리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체르노빌 사건은 프랑스에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원전이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뿐만 아니라 많은 프랑스인들은 체르노빌 사태를 국가 권력이 국민에 대한 거짓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정부는 방사능 구름이 프랑스를 지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프랑스에서 체르노빌에 대한 컨퍼런스를 할 때마다 한두 명씩 원전 사고의 구름이 프랑스를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존재한다. 아무튼 프랑스에서 원전에 관련된 것은 사회적인 거짓말이라 여기고, 사람들은 정부가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믿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은 정부가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원전에서 대해서 정보를 알리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말을 하듯 어떻게든 안심을 시키려고 들기 때문이다.

작품은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체르노빌을 방문하는 모임을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나.

첫 번째 계기는 참여작가연대(작품 참고)에서 체르노빌에 대한 크로키를 그릴 것을 목적으로 두 사람의 작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기구는 다른 기관과 연대되어 있는데 그 기관에서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에 사는 아이들이 그 환경을 빠져나와 좋은 환경을 체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수익은 그 활동을 위해 쓰인다.

두 번째 계기는 편안한 아틀리에를 벗어나 현실을 그리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현실을 직면하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싶었다.

작품은 시종일관 흑백의 톤으로 진행되다, 특정한 장면에서만 색이 입혀진다. 어떤 효과를 의도하고 이렇게 연출하였나.

이 작품을 흑백으로 만든 이유는 나에게 있어 체르노빌은 흑백으로 밖에 비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그곳을 음울한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체르노빌에서 직접 가고 나서야 그곳에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부분에 한해 색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색은 삶을 상징하고 곧 그것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듯이 말이다. (불어로 삶과 생명력은 같은 단어이다.)

▲ 지난 12일 엠마뉘엘 르파주 씨는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 중인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버님’ 김영오 씨와 만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작품은 표면적으로 당신이 체르노빌이 다녀와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그린 것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두 가지의 중요한 점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아이러니’이다. 인간의 삶을 위해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렇게 죽음으로만 가득찰 줄 알았던 땅에는 뜻밖에도 삶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땅에는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마당이다.두 번째로 느낀 것은 작품에 묘사된 건물의 이미지들이다. 건축을 전공을 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작중에 묘사된 프리피야트(체르노빌 발전소 주변에 존재하던 도시) 시내와 그 주변의 건물의 모습들은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차이를 들게 만든다. 프리피야트에 버러진 건물들은 본래 인간을 위한 공간이고 웅장하지만 매우 차갑고, 반면에 그 주변에 사는 이들이 거주하는 집은 초라하지만 삶이 샘솟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작품을 만들 때 어떤 것들을 전하고 싶었나.

거기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체르노빌에 삶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 곳에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삶과 생명력이 있지만 인간이 설 자리가 없고, 자연은 아름답지만 인간에겐 공포스러운 곳이다. 마치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내쫓은 셈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핵 에니지와 인간은 자기 스스로 땅에서 추방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건축물의 이미지에 대해 말을 했는데, 나는 어떤 종류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할 때 건축물의 이미지는 물론 작품을 구성하는 이미지와 서사를 생각한다. 나의 느낌에 부합하는 서사와 이미지를 찾고,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며 이미지와 기법을 고민한다. 건축물을 그릴 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기법은 건물을 바라보는 구도에 있다. 건물을 위에서 보느냐, 밑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건축물의 이미지는 변형되고 그러한 변형을 통해 나는 건축물에 활기를 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의 생명력을 주는 예술적인 그래픽 기법인 것이다. 나는 프리피야트 시내를 그릴 때 그 안에 죽음의 의미를 주기 위해 그렸다. 그 때 사용한 방법은 바로 아무런 변형을 주지 않고 그리는 것이다. 프리피야트 시내를 그린 장면들을 보면 이 건물을 거의 변형시키지 않고 도시의 평행 구조를 그대로 살려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면서 죽음의 분위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이 담긴 그림에는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이 죽음의 이미지만 남는다.

반면 사람이 사는 집을 그릴 때에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선을 흔들고 평행되지 않게 그린다. 시점을 중심으로 약간 왜곡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력을 불어넣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집의 골조만 그렇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집의 내부 사물 등을 그릴 때에도 나는 약간 왜곡해서 그린다. 그것이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시각적인 응답이다.

체르노빌 취재는 2008년에 끝났다. 그리고 3년 뒤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체르노빌을 뛰어넘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

사실 2년 전에 이미 후쿠시마에 찾아갔다. 그리고 작년 후쿠시마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을 그렸다. 나는 후쿠시마에서 강한 분노를 느꼈다. 방사능 물질로 가득찬 금지구역을 두 번째 보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후쿠시마를 보며 느꼈던 것은 인간이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인상이었다. 내가 후쿠시마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체르노빌의 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후쿠시마에서 듣고 본 것은 체르노빌과 동일한 죽음과 동일한 거짓말이었다.

현재는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가.

다음 책은 북극을 배경으로 오존층 파괴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 르파주 작가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를 만난 농성장 천막 아래에서 유가족에게 드리기 위한 크로키를 그렸다. 작가는 그 크로키에 그려진 소녀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세월호 침몰로 희생당한 모든 아이들을 상징한다고 뜻을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