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살만 더 많았어도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을 통틀어 이지아만큼 신묘한 연예인이 또 있을까. 스쳐지나가는 행인1의 행적조차 샅샅이 파헤치는 네티즌이 유일하게 과거의 한 끄트머리조차 찾아내지 못했던 사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도민준만큼이나 아리송했던 그녀의 과거가 무려 신비주의 전략의 대부였던 서태지의 전 아내라니. 이거야말로 신비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다름 아니지 않은가.

대중을 쌍으로 농락한 이 역대급 커플의 관계가 놀라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서태지-이지아 결혼이 아니라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중이라는 정황. 두 사람의 결혼은 이미 한참 전 과거의 이야기고 호적 정리를 끝마친 상태라니. 결혼 소식을 알기도 전에 이혼부터 접해야 했던 대중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지아가 토크쇼 힐링캠프에 나왔으니 제작진은 21세기 가장 맛있는 먹잇감을 덥석 물게 된 셈이다. 친일파의 손녀라는 이유로 비호감의 반열에 오른 이지아를 대중은 욕하면서도 한편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서태지-이지아 커플 중 어느 누구가 두 사람의 썰을 알아서 풀어준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에 들떴다. 그것은 방송이 끝나고 하룻밤이 넘어가게 온통 실시간 검색어를 휩쓴 관련 검색어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유명인과 함께 숨겨진다는 것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기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더라고요. 머리카락 한 올까지 감춘다는 것.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그런 수위의 노력이 아니에요. 사소한 것 하나 하나까지도 다 자유롭지 못했죠.”

그리고 방송 내내 이지아는 친절한 깍쟁이 같은 모양새로 사뿐사뿐 지난 이야기들을 영리하게 풀어줬다. 서태지와 인연을 맺고 무려 7년간 가족과 소통할 수 없었다는 이지아의 고백은 차라리 그것에 알고 싶다에 나와야 더 적절한 멘트가 아닐까 싶었다.

이지아에게 된통 당하고도 원망의 보답은커녕 오히려 대중에게 외면 받는 그녀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포장해준 정우성을 향한 립서비스였을까. 전남편 서태지를 향한 가시 돋친 반응과 다르게 정우성을 회고하는 그녀는 마치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분위기 같아 더 흥미로웠다.

연예인 중의 연예인인 서태지, 여성의 이상형이자 남성의 이상향인 정우성을 동시에 전 연인으로 가져봤던 이지아. 이런 그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과거지사는 할머니의 옛날 옛적에 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십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도 문득 “이거,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몸에 나쁜 불량식품을 먹는 것처럼. 세기의 신비주의 스타를 까발리는 토크쇼였음에도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체증에 걸린 기분이 들었다.

“힘들기도 했고 인내도 했고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고요.”
“제가 선택한 사랑은 산에서 내려온 다람쥐한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종류였어요.”

이지아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분명 서태지는 잔혹한 연인이었다.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리분별이 잘 되지도 않는 어린 나이의 이지아에게 선택권이란 존재했다 쳐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채 청춘을 맞이하기도 전에 서태지의 여자라는 그늘에 갇혀 그림자의 연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태지의 신비주의 전략을 따라야만 했었다. 다람쥐에게도 숨겨야만 했던 사랑이라니.

“그때는 정말 더 이상 혼자일 수도 없게 혼자였죠.”
“아, 제가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죠.”

강요한 것이 아니라도 오로지 일방적인 희생만이 사랑인 줄 알았던 어린 이지아에게 차선은 없었다. 사회 활동을 시작하고 머리가 좀 커진 그녀가 새삼스레 서태지에게 반감을 품게 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제 이야기가 아마 끊어진 다리 같을 거예요.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이런 이지아의 사정을 차치하고 또한 서태지의 인격을 한없이 의심해본다 한들, 이지아가 이 무대를 ‘복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이은성이라는 새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일군 서태지는 아내의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에 애 아버지가 될 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태다.

“그때 제가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했던 것은 그분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고 저는 그게 제 사랑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렸잖아요. 많이 무모할 만큼 순수하고 무지했으니까.”

"저는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 살만 더 많았어도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 서태지가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가수 활동 또한 목전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의도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이지아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시기가 하필 서태지가 은퇴 이후 컴백을 발표한 날인 8월 11일이라는 점도 기가 막힌다.

힐링캠프 방영일인 8월 11일이 어긋난 타이밍인 것은 뒤통수를 맞은 서태지만이 아니라 대중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4일 뒤면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찾은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은 ‘광복절’이니까.

이지아의 우매한 이미지 메이킹 헛발질 덕분에 밝혀진 조부의 이름, 김순흥. 김구 선생으로부터 숙청 대상 1위로 지목되었던 그가 이지아의 조부라는 사실은 친일파 숙청이라는 과제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사실 그녀가 안방극장에 출연한다는 사실부터가 후손으로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연기를 하고 예쁜 미소를 짓는다 해도 풀리지 않을 찜찜함으로 남아있는 이지아. 드라마라면 캐릭터로 위장한 가면에 묻혀 인간 이지아를 잠시 잊어볼 수 있다쳐도, 토크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계인이다, 트랜스젠더다, 사실은 CG다!는 헛된 소문이 퍼질 만큼 신비주의 전략으로 자신을 꽁꽁 싸맸던 그녀가 시청자와 정식으로 첫인사를 하는 타이밍이 광복절을 4일 앞둔 날이라니. 옛 연인을 향한 적개심에 소위 작정하고 나온 것 같은 이지이의 출연 시기가 더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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