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김보성보다 빛나는 의리의 아이콘은 바로 이국주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여자 이국주는, 김보성의 해묵은 콘텐츠 '의리'를 들고 나와 새삼스레 전국구 유행어로 등재시켰다. “아빠가 왕년에~” 같은, 다소 지긋지긋한 이미지였던 의리를 세련된 유머코드로 승화시켜준 이국주의 김보성 패러디는 새삼스레 올드 스타 김보성을 젊고 감각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원조 김보성조차 살리지 못한 의리를 콘텐츠로 다듬어준 이국주 덕분에 늦깎이 CF스타가 된 김보성은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형국이었다. 오리지널 의리는 김보성이래도 유머 코드로서의 의리는 이국주가 진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김보성이 한참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차츰차츰 대세로 떠오르는 이국주야말로 진정한 의리녀라고 호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요즘 대세 이국주’가 tvN의 SNL 코리아에서 갖은 장기를 뽐내며 역대급 SNL 출연자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패러디에 일가견이 있는 이국주라서 패러디의 집합체인 SNL은 어쩌면 그녀와 딱 들어맞는 무대였는지도 모른다. 이국주는 영화 ‘타짜’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그리고 가수 현아의 ‘빨개요’ 등을 재해석하며 무궁무진한 이국주표 패러디를 선보였다.
‘SATURDAY NIGHT LIVE’ snl의 로고가 지나가고 밴드 합주에 맞춰 사회자의 “이국주!”라는 호명이 떨어지자 마치 휘장을 찢듯 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히고 등장한 그녀.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며 손가락을 입에 넣고 깨물며 씩하고 웃는 모습이 그럴 수 없게 매력적이다.
거칠게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 그녀는 빨개요의 멜로디와 함께 너울너울 리듬을 타더니 별안간 객석 반응을 유도한다. “이국주가 섹시하면 소리 질러!” 관객은 물론 밴드까지 큰 호응을 하게 이끈 최고의 카리스마! 이후 본격적으로 빨개요를 추기 시작하는 이국주의 능숙한 댄스 실력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국주는 분명 뚱뚱한 사람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의 무대에서는 오히려 이국주의 살집 있는 몸이 오히려 매력으로 비추어질 지경이었다. 능숙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볍고 유연하며 날렵하기 그지없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방금 공기를 불어넣은 고무공처럼 탄성이 느껴진다. 한 번씩 뒷머리를 넘겨주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표정 관리에도 소홀히 하지 않은 그녀의 디테일은 진정한 프로였다.
“SNL 역사상 가장 진귀한 장면을 전 본 것 같아요. 지금. 실은 이게 현아의 빨개요잖아요. 완전히 사뭇 다른.” SNL이 아닌 유희열의 스케치북 사회자다운 스타일로 무대를 평하는 유희열에게 넉살 좋게 받아치는 이국주의 재치는 또 어떠한가.
“사실 여기 선배님들도 많을 텐데 처음 SNL호스트로 단독으로 딱 섭외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신동엽의 질문에 그녀는 곧 진중해졌다. “사실 기분이라기보다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새삼 섭외 전화를 받은 날의 감동을 반추하듯 살짝 떨렸다.
“내가 호스트로 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무대가 워낙 크고 부담이 굉장히 많이 되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실 거절도 할까 했는데요. 그래도 제가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습니까. 여기 있는 분들과 제가 파이팅 넘치게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려 왔습니다. 파이팅!” 초대한 제작진이며 옆 자리에 선 대선배 신동엽 모두를 흐뭇하게 하는 그녀의 예쁜 멘트.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오늘의 호스트, 이국주!” 이국주의 빨개요가 끝나고 신동엽은 그녀를 호명하며 크게 감명 받은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박수를 쳤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도도하게 무대를 휘어잡던 이국주가 객석을 향해 배꼽인사를 하는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현재의 인기와 기회를 자만하지 않고 허비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다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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