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가득했던 입사 3년차 신출내기 여기자 한 명이 결국 자신의 블로그 글 하나로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입고야 말았다. ‘가해자’는 그를 퇴출시킨 중앙일보뿐만 아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를 외쳐대며 그에게 응원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도 결과적으로는 그의 상처를 깊게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같은 편을 자처한 이들이 그를 내쫒은 신문사보다 더 많은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병아리기자를 이용하려 했을 뿐이지 진정으로 그의 아픔과 장래를 걱정해주지는 않는 듯해 씁쓸함을 지울수 없다.

이모 기자에게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은 지난 5월 블로그에 올린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로 인해 시작됐다. 당시 이 글은 미디어다음 메인에 노출되면서 수만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 글은 촛불민심을 지면에 반영하지 않던 자사의 지면에 다소 비판적인 소회를 담았기 때문에 논조에 있어 중앙일보와 대척점에 서있던 언론들에게는 더 이상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한겨레> 6월 7일 보도) 반대로 중앙일보 내에서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많은 선배 기자들이 이 기자의 행동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 이 기자의 다음 블로그 ‘중앙일보를 떠나며’
그래서일까. 계약직이었던 이 기자는 결국 지난 8월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중앙일보로부터 재계약이 거부돼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PD저널>은 지난 8일 ‘중앙일보, 자사 비판기자 퇴출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이로 인해 이 기자는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이 기자는 16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26일경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PD저널 기자가 불쑥 전화를 걸어와 아직 기사화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못박았다”고 한다. 그는 또 “당시 PD저널 기자는 기사화를 늦출 것처럼 대답해놓고 예고 없이 기사화했다”며 PD저널 보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이 기자는 또 “PD저널의 보도 뒤 중앙일보로부터 전화가 너무 많이와 다른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도 했다. 결국 이 기자는 지난 9일 오전 7시 “타의에 의해 공개됐지만 중앙일보를 떠난 사실이 공론화된 이상 그간의 경위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며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포털에도 있었다. PD저널의 기사와 이 기자의 블로그 글이 뜨자마자 포털 사이트 다음은 뉴스 메인페이지 오른쪽 중간 블로그 뉴스 코너에 “중앙일보를 떠나는 이OO입니다”라는 제목을 뽑아 이 기자의 블로그 글을 노출시켰다. 블로그 본래의 제목은 ‘중앙일보를 떠나며’였지만 미디어다음 편집자에 의해 제목에 이 기자의 실명이 사용된 것이다. 이 블로그 글을 본 PD저널은 ‘중앙일보에서 너무 많은 전화가 온다’는 제목의 후속보도를 통해 이 기자의 얼굴 사진이 실린 블로그 캡처 화면과 함께 본문에 실명을 게재했다. 이 기자의 얼굴사진과 실명이 인터넷 공간에 여지없이 공개돼버린 것이다.

▲ 이 기자의 실명을 제목으로 뽑아 노출시킨 미디어다음
양심의 소리를 블로그에 풀어놨던 이 기자는 ‘지못미’를 외치는 이른바 같은 편에 의해 또다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기자가 철저히 이용당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이같은 보도에는 이 기자 개인이 겪을 심적 고통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식으로 이용되기만 한다면 조선, 중앙, 동아일보 내에 또 다른 기자들이 어떻게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양심선언’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며 어렵게 낸 양심의 소리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자사 이익을 위한 제물로 사용해선 안될 일이다.

현재 PD저널의 기사에는 사진과 실명이 모두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기사를 읽은 한 네티즌이 댓글을 통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후 수정된 것이다. 네티즌도 지적할 정도의 기본적인 사안을 언론 비평지를 자임하고 있는 PD저널이 몰라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다. PD저널은 이 부분에 대해 이 기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사과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도 마찬가지다. 이 기자가 입장을 밝힌 ‘중앙일보를 떠나며’라는 다음의 블로그 글은 이날 오후부터 “권리침해신고 접수에 의해 임시 접근금지 조치된 글입니다”는 메시지만 뜨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음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 44조의 2(정보의 삭제요청 등)에 따라 30일 동안 이 게시물에 대해 임시 차단조치를 취한다고 밝히고 있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제목까지 임의로 바꿔가며 메인 페이지에 적극적으로 노출시켰던 다음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