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장소심(윤여정 분)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부처다. 12년 전 전 허리를 다쳐 꼼짝도 못하는 시아버지 봉양에, 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는 자식들과 시동생들 뒷바라지. 거기에 천하의 난봉꾼이었던 남편 강태섭(김영철 분)의 첩 하영춘(최화정 분)과 영춘의 몸에서 난 강동희(옥택연 분)까지 껴안고 살아간 소심은 상당히 지쳐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소심의 절규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절대 이혼만큼은 안 된다며 강경 모드로 나서다 끝내 자기가 소심 대신 집을 나가겠다고 짐을 꾸리는 태섭을 말리며 소심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다 좋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가겠다는데 내 말 못 알아듣겠냐”면서 말이다. 그렇다. 소심이 집을 떠나겠다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태섭을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소심은 지극정성으로 자식들과 시동생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냈다. 동옥이와 쌍둥이 남매인 둘째 아들 동석(이서진 분)은 검사다. 그리고 시동생들, 큰아들, 둘째 아들 모두 결혼을 했고, 소심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동옥과 동희도 만나는 사람도 있고, 각자 제자리들을 잘 찾아가고 있다. 이제 시동생들과 동탁의 말대로 아무 걱정 없이 자식들의 효도 받아가면서 편히 살 날만 남은 것 같다. 그런데 소심은 이 좋은 것을 마다하고 기어이 집을 나가겠단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집에 들어온 태섭으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할 기회를 주기 위해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소심의 선택.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았던 소심의 지난날을 비추어보면 그리 뜬금없는 행동은 아닌 듯하다. 소심은 언제나 자신보다 가족의 행복을 중시했고, 행여 자신의 불만 때문에 분란이 일어날까봐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은 소심을 답답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위한 그녀의 희생을 당연히 여겨왔다. 마치 소심은 김밥 꼬투리와 생선 머리를 좋아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손자 동원이처럼 말이다.
동석과 해원이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 이혼하겠다는 소심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소심을 위해서였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서 산 만큼, 이제라도 가족들 걱정을 뒤로하고 그녀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진실한 바람에서 말이다. 그런데 소심은 자신이 아닌 오래 전에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집에 나간 철없는 남편을 위해서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말로는 이제 가족들이 지긋지긋하다고 하나, 여전히 소심의 머리와 가슴은 가족을 향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서 집까지 나가겠다는 소심의 희생과 헌신은 과거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어머니상이다. 아니 <참 좋은 시절>의 장소심은 그녀들보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가족까지 평생 자기 속만 썩였던 남편에게 양보하겠단다.
옆에 있는 누군가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자기 잇속만 중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현재, 가족조차 이해관계에 의해 와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끈끈한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소심의 몸부림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오히려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역들이 소심보다 더 현실적이다. 차라리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이혼을 하겠다는 설정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정도이다.
가족들 때문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면서도, 그럼에도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물려나주겠다는 장소심. 자기보다 가족이 좋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이 없다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보여주는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최종 선택이 진심으로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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