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밀당녀 육지담은 ‘쇼미더머니3’의 천사일까? 아니면 악마일까?
“회사와 밀당을 하는 나, 힙합 밀당남. 몰라. 나도 그냥 마음대로 올릴 거야.” 래퍼 산이(San E)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신곡 ‘바디랭귀지’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면서 쇼미더머니3(Show Me The Money3)의 출연자 육지담의 즉흥 랩을 패러디해 화제다.
육지담과 산이는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에 참가자와 심사위원으로 동시 출연중인 고정 멤버다. 이날 육지담은 “육지담!”이라는 호명에 자축을 하듯 자진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잔다르크처럼 모자를 뒤집어쓰고 문을 나섰다. 갖은 논란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은 자신감만큼은 래퍼의 면모에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저는 누구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저를 무시했던 모든 분에게 여고생의 패기를 보여드릴 거예요.” 호언장담하고 등장한 육지담은 무대 위에 서서 “안녕하세요. 저는 십팔!(18) 살인 육지담입니다.”라는 당당한 인사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뒤를 이은 육지담의 디스 같은 폭로전에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사실 현역 래퍼들도 많으시고 랩을 하신 분도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어리고 경력도 1년도 안 되니까 되게 조금 약간 무시하는 게 있어요. 그걸 이겨 낼 거예요. 제가 여기서 증명을 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증명이 된 것 같으면 소리와 환호를 마음껏 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넘치는 자신감이 불안을 감추기 위한 그녀의 위장이었을까. 첫 소절 만에 무너진 육지담은 웅얼거리는 리액션으로 비어버린 가사를 대체했다. 언론은 이 에피소드를 가사를 잊어버린 실수라 명명했으나 실상은 가사 뿐만이 아닌 터져 나온 불안감에서 비롯된 패닉 상태로 보였다.
래퍼가 수습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비트, 휘두르던 손을 어디 둘지 몰라 멎어버린 관객의 팔. 이 얼토당토않은 분위기에서 육지담은 “제가 많이 틀렸는데 마지막으로 무반주로 하겠습니다.”라고 떠난 비트를 붙잡았다.
심사위원의 평가 포기 상태를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가 “나는 이 무대 위해 밤새웠지. 계속 밤새웠지. 그리고 오늘 또 밤새고 나는 증명했지.” 시들어버린 나는 증명했지이- 에서는 정말 TV로 볼뿐인 나조차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으니까.
객석의 차가운 반응만큼이나 쏟아지는 심사위원들의 독설은 얼음장과도 같았다. “꼴등이겠다. 바로 견적이 나오니까.” 도끼는 낙담했고 산이와 스윙스는 그 이상의 혹평에 조소를 실었다. “지담이는 무조건 탈락이에요. 무조건 (팀 내) 3등이고 무조건 꼴등인데.”라는 산이의 순수를 비웃듯 호언장담하는 스윙스의 예언. “근데 이러고 꼴등 안 한다? 잘 봐.”
석연치 않게 여고생의 패기를 증명하게 된 육지담의 승리가 마냥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를 달래고 또한 분노하는 선배 래퍼들의 계산되지 않은 순수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가여울 만큼, 실력이 아닌 논란으로만 대중의 이목을 끄는 까마득한 후배 육지담을 향한 대선배 타블로의 충고와 권고는 눈물겨울 만큼 순수하기 짝이 없었다.
육지담의 실패한 무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사를 통째로 잃어버린 그녀보다 더 망연자실한 얼굴을 한 타블로였다. 그는 마치 나정이처럼 모자를 반듯하게 돌려쓰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육지담을 향해 위로와 충고를 동시에 권했다. “끝까지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건 좋아. 근데,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리얼리티 쇼, 그 중에서도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바로 마녀의 존재 유무다. 시청자가 한 마음 한뜻을 모아 타도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따라 그 프로그램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육지담의 존재는 민폐를 가장한 쇼미더머니3의 수호천사라고 해도 다름이 아니다.
육지담은 분명 이 프로그램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가 수차례 보아왔던 리얼리티 쇼에서 얻은 닳고 닳은 경험이 선사한 스포일러다. 그러나 시청자의 야유를 받는 그녀의 존재가 또한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하는 자극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또한 그녀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게 하는, 육지담은 분명 ‘힙합밀당녀’다.
더군다나 육지담은 타블로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다. 타블로와 마스타우의 독설에 육지담의 멘토 허인창은 ‘충격 받아 멘붕에 상처 받은 애를 토닥여주진 못할망정 시침 뚝 떼고 같이 손가락질하네.’라고 분노했다. 어찌 보면 발 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의 부족한 실력이 뻔히 보이는데도 본인이 뽑아 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적절한 지지를 유지하다 시청자의 분노를 샀던 지난 심사위원들의 사례를 상기하면 타블로의 발 빼기는 오히려 래퍼의 양심으로 비추어진다.
"지담아. 네가 9위야. 지담이 대단한데? 랩을 안 하고도 기리보이를 이겼네."
육지담의 그러고도 9위. 그리고 탈락한 기리보이를 놓고 타블로가 던진 뼈아픈 독설은 다정한 말투에 실은 비아냥이라 더 냉혹했다. 육지담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소 매정하리만큼 잔혹했던 타블로의 비난은 분명 그녀에게 필요한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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