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는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에 맞아떨어지는 영화기도 한 동시에 의외로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 여름 개봉하는 한국영화 '빅 4'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야기 그리고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어우러져서 <해무>를 한 편의 참사로 만들었습니다. 더 세게 밀어붙일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흥행을 염두에 둔 탓인지 자제하고 있습니다. 만화로 만들었더라면 파격적인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겠습니다.

<살인의 추억>으로 각본상을 받았던 심성보 감독의 연출은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습니다. 이야기와 그 속의 인물들에 걸맞게 좀 더 서슬 퍼런 연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발단을 지나서 급격한 전환이 이뤄지는 부분부터 각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다루지 않은 탓에 감정선에 단절이 생기는 건 가장 큰 단점입니다. 비록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사태인 건 틀림없는 데다가 주제와 부합하는 바이긴 하지만, 별달리 특이한 구석이 없어 보이던 인물들이 너무 갑작스레 변질된다는 건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겠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방해를 받은 관객이라면 이후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마 <해무>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는 이 지점에서 확연하게 갈라질 겁니다.

빅 4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 취향과 선호도에 따른 주관적 판단이고, 다른 세 영화와 비교해서 <해무>는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 확률이 꽤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시종일관 암울하고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두고 오락용 영화라고 하기는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이걸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서 넣은 듯한 박유천과 한예리의 로맨스는 사실 도입부부터 다소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에필로그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차라리 두 인물 사이에 이성관계가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이거나 보편적인 감정을 넣었더라면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해무>는 원작 연극이 있더군요. <살인의 추억>과 <왕의 남자>의 원작을 상연했던 '연우무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걸 본 봉준호 감독이 영화화를 기획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해무>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영화라서 곱씹는 재미가 있습니다.

★★★★

덧) <해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도입부입니다. 김윤석을 비롯해서 어쩜 그리도 자연스런 연기와 연출이 나오는지...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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