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4일 째 되던 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법정에 단원고 학생들이 출석해 4월 16일 벌어진 일을 말했다.

학생들은 “사고 이후 배에서 나오기까지 안내방송으로 대피하라는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해경이 왔지만 ‘빨리 탈출하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해경은 나가는 친구들을 받아서 보트에 태우기만 했고 배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주는 건) 없었고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등의 발언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선원들을 믿고 기다렸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곧 해경도 온다는 방송이 나와서 우리를 끌어줄 것으로 알고 계속 기다렸다”고 전했고, “선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너나없이 “네”라고 답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다수 학생 입에서 나온 말은 한결 같았다.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만 나왔을 뿐, 해경과 선원의 도움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초기 대응 당시 해경과 선원들이 구조에 무관심했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누구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골자로 하며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하는 4·16 특별법(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여야는 공방만 벌일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에서 생존자들이 처음으로 한 ‘공식적인 진술’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뉴스는 이들의 발언보다는 유병언 일가와 관계자들에 대한 보도에 더 공을 들였다.

단원고 생존자 증언 누락한 SBS, 단신 처리한 MBC

SBS <8뉴스>는 28일 톱 뉴스를 <은퇴 못 하는 사회…젊은이 없는 '2100년의 한국'>으로 뽑았다. 낮은 출산율로 인한 인구 고령화 시대의 명암을 짚는 기획보도를 2개의 리포트로 처리했다.

3~7번째 뉴스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측근들 소식이었다. 유병언 전 회장의 도피 계획을 총괄한 김엄마 김명숙 씨가 자수해 주요 인물들 중 운전기사 양회정 씨만 남았다는 점, 도주 우려가 있어 유병언 씨 장남 유대균 씨와 조력자인 박수경 씨를 구속수감했다는 점, 시신에 붙은 유충을 통해 사망 시기를 조사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차례로 보도됐다.

▲ 28일자 SBS 8뉴스 보도. 8뉴스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법정 증언을 누락했다.

<8뉴스>는 <'유 씨 일가 비리-세월호 침몰' 증거찾기가 핵심>, <세월호 증인 선정 난항…쟁점은 '김기춘 실장'> 등의 리포트로 타사에서 선보이지 않은 보도를 했지만, 향후 진상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가 될 세월호 생존자들의 법정 증언은 누락했다.

▲ 28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증언을 27번째로 단신 처리했다.

28일 MBC <뉴스데스크> 역시 단원고 생존 학생의 육성을 27번째로 보도했다. 단신이었기에 “구조를 기다렸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짧은 언급밖에 담기지 못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보도하는 데 가장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뉴스데스크>는 이날도 유병언 측근 뒤를 쫓는 뉴스에 열을 올렸다. <버림 받은 장남 유대균? 아버지와 달랐던 '초라한 도피'>, <박수경 "어머니, 유대균 보필이 사명이라 교육"> 등 구속된 유대균 씨와 박수경 씨 관련 소식이 개별 리포트로 처리됐다.

▲ 28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

<뉴스데스크>는 유대균 씨가 머물던 오피스텔에는 2천여만원만 발견됐다며 유병언 전 회장의 도피자금 13억과 큰 차이가 나는 점,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아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점, 도피 행적이 단순한 점 등을 상세히 열거했다. 박수경 씨가 조각가를 높여 부르는 ‘조백’이라는 호칭으로 유대균 씨를 부른 점, “유대균 씨를 보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들었다는 점 등은 다분히 신변잡기적인 내용이었으나 주요 보도로 나갔다.

단원고 학생들의 발언을 리포트로 엮은 곳은 지상파 3사 중 KBS <뉴스9>가 유일했다. <뉴스9>는 <세월호 생존 학생 “승무원·해경 도움 없었다”> 리포트를 3번째로 보도해, 지상파 3사 중 가장 앞부분에서 해당 소식을 전했다. <뉴스9>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연거푸 나와 탈출이 지연됐던 점, 학생들 스스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복도로 나가 탈출한 점, 선원과 해경의 도움이 없었던 점, ‘탈출하라’는 지시만 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점 등 법정에서 나온 주요 발언이 소개됐다. 하지만 세월호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를 단순히 여야의 공방이라는 시선으로 접근했고, 유병언 측근들로부터 참사의 진상규명과 관련된 증거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방향의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 28일 KBS 뉴스9는 3번째로 '세월호 생존 학생 “승무원·해경 도움 없었다”' 뉴스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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