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김희선이 드라마 프로포즈로 일약 신세대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며 화제가 되었던 때의 일입니다. 당시 읽었던 잡지의 사례는 김희선을 디스하는 듯 찬양하는 것 같은 모호한 어감으로, 어쨌거나 당대 최고의 절세가인 김희선의 ‘미인이라서 이로운 몇 가지 이유’를 사례를 들어 설명해 두었었죠.

지금도 김희선의 지인이나 주변 연예인의 입에서 회자되는, 당시 참 거만하고 프로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던 과거 김희선의 태도는 쉬쉬할 이유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김희선을 찬양하는 이 잡지 페이지에서마저도 그녀의 멘탈을 지적하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했었으니까요.

프로페셔널의 기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 약속 관념이 거의 없었던 김희선은 시간이 금인 촬영 현장의 발목을 잡는 브레이크였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김희선만 도착하면 되는데 그녀의 지각으로 촬영에 지장을 주자 “오기만 해봐라. 내가 구워삶으리.”라고 씩씩 대던 스텝들은 저 멀리서 까르르 웃으며 달려오는 아름다운 김희선의 얼굴에 감히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현장공개 행사에서 에프엑스 설리 ⓒ뉴스1
최근 공식적으로 발표된 SM의 ‘설리 활동 중단 선언문’의 전문을 읽으면서 저는 문득 과거 김희선의 사례를 지금의 설리와 겹쳐보았습니다. 소속 가수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은 SM이 ‘아티스트의 심신을 보호하기 위해’ 솔로도 아닌 그룹으로 활동하는 f(x) 에프엑스의 멤버 설리를 공식 선언까지 하며 공개적으로 쉬게 해준다는 발상이 와 닿지 않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최근 설리는 유야무야 쉬어도 될 널널한 처지가 아닙니다. 여름은 댄스가수와 아이돌에게 있어 상인의 추석 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즌이니까요. 지난 16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부터 시작된 설리의 방송 불참으로 에프엑스는 완전체 그룹의 활동이 거의 중단된 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f(x)의 멤버가 아닌 개인 활동에서도 설리는 단체의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는 일감을 맡았었습니다.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 ‘해적’은 설리 혼자 만드는 작품이 아니었으니까요. 아이돌 스타의 출연이라는 선입견 또한 무시하지 못할 판국에 이토록 불미스러운 사태만을 쌓아두고 떠난 설리는 제대로 작품 홍보를 해주지 못한 것은 물론, 도리어 활동 중단 배우가 참여한 작품이라는 찜찜한 앙금만을 남겨버렸습니다.

‘멤버 설리가 지속적인 악성 댓글과 사실이 아닌 루머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등 심신이 많이 지쳐있어 회사에 당분간 연예활동을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이에 당사는 신중한 논의 끝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함은 물론 아티스트 보호 차원에서 활동을 최소화하고,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공지 일부)

자사의 이익이 최대 가치일 연예 기획사에서 소속 그룹의 활동에 제약을 걸면서까지 아티스트의 활동 중단을 인정한다는 결정은 분명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 너그러운 관용에 박수를 치고도 싶고 악성 댓글에 심신이 지쳐있을 설리를 위로해주고 싶은 측은지심 또한 생겨납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마음껏 그녀를 격려해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애처롭다 싶다가도 삐죽한 불만이 튀어나와 버립니다. 네티즌에게 상처받아 그만 활동을 중단하고 싶다는 설리의 하소연이 어쩐지 와 닿지가 않습니다.

분명 최근 들어 설리가 크게 민심을 잃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습니다. 악성 댓글도 많았고 질 나쁜 루머가 퍼뜨려지기도 했었죠. 어느 연예인은 설리만큼 속상하지 않겠느냐고 따져 물어본들 사람마다 경험에 비해 고통을 느끼는 강도는 다 다른 법이기에 상대평가 또한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마음을 달래 봐도 “설리는 예뻐서 참 쉽네.”라는 못난 마음이 뾰족이 얼굴을 들이미는군요. 그건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설리의 최선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애초에 설리는 특출 나게 목소리가 고와 그룹의 메인 보컬로 활동하는 것도, 현아 뺨치게 춤을 잘 추는 댄스 가수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별다른 재능이 눈에 띄지 않는 멤버였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노력 또한 그녀의 재능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부턴가 무대 위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설리는 매번 설렁설렁한 대충의 안무와 무대 매너로 네티즌의 질타를 받곤 했었습니다. 재능도 노력도 없는 설리가 그럼에도 연예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녀의 예쁜 얼굴 하나 때문이었죠.

때로는 복사꽃 같고 때로는 복숭아처럼 아리따운 설리는 사진만 봐도 향기가 날것처럼 독보적인 미모를 갖고 있는 아이돌이었습니다. 보통의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만 예쁘지 그 밖의 공간에서는 또 실망이라고 비아냥을 듣지만 연기 경험이 먼저였던 설리는 아이돌의 외모를 뛰어넘었었죠.

▲ 에프엑스 설리 ⓒ뉴스1
폴 매카트니가 내한한다고 해도 열의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엉망의 무대로 구성된다면 그 누가 그를 천상의 아이돌이라 극찬하겠습니까. 결국 프로의식이 결여된 스타의 능력은 계륵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오로지 예쁘다는 이유로 부족한 재능과 심각한 나태와 비뚤어진 태만을 용서받았던 설리가 몇 번의 방송 펑크를 내더니 급기야 그 모든 문제를 네티즌 탓으로 돌리며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데 당하는 쪽은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아이돌이 억울한 루머와 악성 댓글에 속이 상해 활동 중단을 외친다면 아무리 매몰찬 네티즌이래도 그 순간만큼은 위로하고 또한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기분파에 가까운 무성의한 행동들이 마일리지처럼 쌓여있는 설리의 활동 중단 사유가 심지어 내 탓이라는데 고깝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리가 받은 악성 댓글은 분명 그녀의 직업이 연예인이라서 겪는 고충일 것입니다. 연예인이라서 겪지 않아도 될 고초를 치르는 그녀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심신이 피로하다고 수시로 무단조퇴를 하고 심지어 잠정 결근까지 선언하는 사회인을 받아들여줄 사회가 연예계 말고 존재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로군요.

그녀의 고충 또한 연예인이라서 겪는 아픔이겠지만 설리가 취하는 권리 또한 오직 연예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 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