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제주도로 출항했던 세월호는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7월 24일, 오늘은 그 참사가 일어난 꼭 100일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의 실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돌연 변사체로 나타나, 책임 소재를 따질 중요한 인물은 사라졌다. 쇄신하겠다던 인사는 참사로 이어졌고, 국가대개조는 깃발만 나부끼더니 재보선 이후 쑥 들어갔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라고 쓰인 현수막 (사진=미디어스)

지난 5월, 대통령은 세월호 특검과 특별법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야는 참사 100일이 되도록 지루한 공방만 이어갔다. 결국, 당초 약속했던 6월 임시국회에서도 ‘4·16 특별법(세월호 특별법)’ 제정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문도 모른 채 아이를 잃은 것도 답답한데, 이번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제도 마련에도 국가는 적극적이지 않다. 애끓는 건 유가족의 몫이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4·16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21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24일까지 (특별법 제정 합의가 안 되면) 7월 30일까지 보고, 7월 30일까지 안 되면 8월 15일까지 보고. 8월 15일까지 또 안 되면 그 이후까지 보고. 저희는 (끝까지 가겠다는) 그 각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 있었다”며 “단지 저희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 세월호 유가족들이 24일 도보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23일부터 이틀 간 진행되는 도보 행진은 그 굳은 ‘의지’에서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이라는 특별법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잊지 말자는 법률 제정의 초심으로 100리길을 걷는다. 23일,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안산 합동분향소에서부터 광명시민체육관까지 걸었다.

24일 오전 10시부터 광명시민체육관 앞에서 도보 행진 이틀째의 일정이 시작됐다. “우리 모두를 위해 박수 한 번 치고 시작하자”고 운을 뗀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다행히도 비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잦아들고 있다. 아무래도 하늘이 우리하고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오늘은 세월호 100일이다. 세월호 100일째인 오늘 저녁에는 4·16 특별법 제정의 기쁜 소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함을 갖고 걷도록 하자”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전명선 부위원장은 “가족분들, 어제도 정말 수고가 많으셨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무사히 걸었다”며 “이런 가족분들이 있기에 4·16 특별법은 반드시 만들어지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저희들과 함께 하시어 안전 사회를 만드는 특별 법안이 만들어지는 데 최대한 힘을 실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 도보 행진에 나선 한 참가자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우산을 들고 걷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걷고, 또 걷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가족들은 힘든 기색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발이 아프면 중간에 쉬면서 파스를 붙이고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어제의 피로가 다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다들 힘차게 걸었다. “오늘은 속도가 상당히 빠른데?”, “아따 왜 이렇게 빨리 가”라는 농담을 주고받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유가족들이 입법 청원한 4·16 특별법은 △진실규명 △재난방지 및 대응책 수립 △피해자 지원 △희생자 기억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은 유가족들이 의사상자 지정, 대학 특례입학 등의 막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의사상자 지정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이며, 대학 특례입학은 ‘수사권’과 ‘기소권’ 논의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가 거의 유일하게 합의한 부분일 뿐이다. 유가족이 낸 법안에는 애초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그래서일까.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도보 행진을 하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모두가 4·16 특별법의 진짜 내용을 알리는 데 애썼다. “성역 없는 수사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특별법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주세요”, “수사권이 없으면 특별법이 아닙니다” 등의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도, “대통령님 진상규명 약속을 지켜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도 모두 유가족들의 ‘진의’ 그대로였다.

▲ 광명 시민들이 도보 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와 서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시민들도 도보 행진을 하는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특별법 제정 꼭 되길 바랍니다!”,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힘내세요!”라고 격려하자 유가족들은 고맙다는 인사로 화답했다. 야당 정치인들도 도보 행진에 동행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영선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과 당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일부 정의당 관계자들도 참여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도 합류했다.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도보 행진 때, 학생들이 △뉴스타파 △오마이TV △한겨레 △JTBC 4곳의 공식 취재만 허락한 것과 달리 이번 유가족 도보 행진에서는 그런 제약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아 왔던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은 또렷이 구분됐다. 취재진이 유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와 유가족이 취재진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 이날 도보 행진에 참가한 한 유가족은 “유가족은 진실을 밝힐 특별법을 원한다. 언론은 잘못된 보도 멈춰라”라며 4·16 특별법의 취지를 왜곡하는 언론 행태를 꼬집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이날 행진에서는 언론과 유가족 사이에 특별히 마찰이 빚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일부 유가족들은 MBC 취재진에게 “찍어만 가지 말고… (방송을 해라)”, “찍어 가서 뭐하게? 박물관에 보관해 두려고?”라는 말을 했다. “유가족은 진실을 밝힐 특별법을 원한다. 언론은 잘못된 보도 멈춰라”라는 손팻말로 '언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유가족도 있었다.

광명에서 출발한 유가족들은 오후 1시 40분 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와 단식 농성 중인 다른 유가족을 만났다. 뜨거운 박수와 무사히 국회에 입성했다는 환호가 울려 퍼졌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위원장은 한 명 한 명 유가족들의 손을 잡으며 반겼고, 유경근 대변인도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 24일 오전 10시, 광명시민체육관에서부터 도보 행진을 시작한 유가족들은 오후 1시 4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유가족들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유경근 대변인은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죠”라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바다 속에서 외롭게 고통을 겪으며 죽어간 우리 아이들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 힘까지 최선을 다하실 수 있죠?”라는 그의 물음에 유가족들은 저마다 큰 목소리로 “네!”라고 외쳤다.

유가족들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4시부터 국회에서 출발해 서울광장에서 도보 행진을 마무리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 등도 이날 도보 행진에 함께 했다. (사진=미디어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현수막을 들고 유가족들의 도보 행진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지난 12일부터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가족들이 23일~24일 양일 간 긴 도보 행진을 하고 국회에 입성한 유가족들을 반기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100리를 걷는 유가족들의 도보 행진 및 유가족들 간 상봉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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