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윤종빈

여러분이 <군도: 민란의 시대 (이하 군도)>를 기다리신 이유는 뭔가요? 아마 적지 않은 분들이 하정우와 강동원의 조합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오매불망이었을 것 같습니다. 남자배우는 '아웃 오브 안중'인 제게 있어서는 단연코 윤종빈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범죄와의 전쟁>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던 기세를 <군도>에서 또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군도>를 앞두고는 두 가지 우려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윤종빈 감독이 과연 사극도 잘 해낼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고, 둘째는 최근 성공적이지 못했던 멀티 캐스팅 영화가 지닌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의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스틸과 예고편은 걱정을 꽤 달랬으나 당연히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멀티캐스팅이란 산을 넘은 <군도>

웨스턴의 토양에 무협의 씨를 뿌린 <군도>는 로빈후드나 홍길동 같은 의적을 다루면서 공감대 형성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출발했습니다. 아무래도 근자처럼 흉흉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관객의 이입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다행 중 불행인지 <군도>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갈리는 영화입니다. 제가 윤종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기로 가득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표현을 빌자면 '막 잡아올린 생선이 팔딱팔딱 뛰는 것'처럼 살아있습니다. 캐릭터를 워낙 잘 다루고 배우의 호연이 더해지는 데다가 전제적인 리듬을 잘 살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리얼하게 다가오곤 했습니다. <군도>도 비슷했습니다. '지리산 추설'이라는 의적단을 소개하는 경쾌한 프롤로그는 초장부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왜 평이 저조하다고 하는 건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캐릭터 설정과 한데 어우러진 액션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역시 정두홍인가!?"라는 감탄사를 토하고 싶을 만큼 <군도>의 액션은 돋보였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국내 영화 중 그토록 선을 잘 살리는 무협 액션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특히 <형사>에서 이미 엿봤던 강동원의 액션은 <군도>에서 한층 유려해졌습니다. 아마도 칼을 그렇게 잘 다듬어진 동작으로 쓸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돌무치가 곧고 화통한 상남자라면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은 곱고 사악한 미남자입니다. 자연히 둘의 액션은 차별화를 뒀고 각각의 캐릭터 특성이 액션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돌무치와 조윤만이 아니라 <군도>는 다른 캐릭터 하나하나에게도 저마다의 특성에 따른 병기를 주면서 액션을 다양화시켰습니다. 이런 분배와 배합은 <군도>의 이야기와 볼거리를 풍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얼마 전에 개봉했던 <역린>과 달리 멀티 캐스팅의 난제를 그럭저럭 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윤종빈 감독답게 돌무치와 조윤을 중심으로 둔 <군도>는 땡추, 노사장, 이태기, 천보, 마향 등의 주변 인물들에게 저마다의 개성과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이들이 간직한 사연도 간결하게 풀면서 공공의 적이자 공통의 목적을 심었고, 이것을 함께 부여잡고 하나로 집결하면서 <군도>의 멀티 캐스팅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군상을 이뤘습니다. 이리하여 <군도>는 캐릭터를 살리면서 멀티 캐스팅의 난제를 해결하고 수준급의 액션을 보여주고 있으나, 다른 방면에서 커다란 구멍을 남겨놓고 마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역린>이 안고 있던 폭탄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과도한 애정에 걸려 넘어진 윤종빈

짐작하시다시피 <군도>의 과오는 방대한 이야기에 있습니다. 프롤로그의 활기가 맘에 들면서도 내레이션의 개입에 당황했던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즉 137분이라는 적지 않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군도>가 각본의 잠재적인 이야기를 원활하게 담을 수 없다는 걸 윤종빈 감독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쓴 장황한 내레이션은 중반부까지 끊임없이 극에 개입하면서 몰입을 방해하고 리듬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눈 것 역시 <군도>가 내러티브를 충실하게 전개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역린>의 그것과 동일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린>의 문제가 멀티 캐스팅에서 오는 것이었다면 <군도>는 그걸 비교적 잘 극복했으면서도 정작 다른 데 욕심을 내면서 자승자박에 빠졌습니다.

<군도>를 묶어 넘어뜨린 밧줄은 바로 조윤입니다. 한참을 생각해도 이건 조윤이라는 캐릭터를 향한 윤종빈 감독의 지나친 애정이 투영된 결과인 것 같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2>가 악역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치부했다면, <군도>는 과욕이 지나친 나머지 영화의 절반이 마치 조윤을 위한 항변처럼 보이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이런 사심은 의도치 않게 다른 캐릭터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면서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영화 전체의 초점은 거의 조윤에게 맞춰져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테면 비중을 절반씩 나눴을 때 이쪽의 50%는 돌무치와 나머지 패거리에게 분산시켰다면 저쪽의 50%에는 오직 조윤만 있습니다. 당연히 무게중심은 조윤에게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정우의 카리스마와 능청스러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졸지에 들러리로 전락하고도 남았습니다. <군도>에서의 강동원이 좋지 않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반작용으로 인해 하정우의 능력이 더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조윤에게 가진 윤종빈 감독의 애착은 더 나아가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군도>의 내러티브까지 해쳤습니다. 앞에서 <군도>가 관객의 이입을 끌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했습니다.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광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를 <군도>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기어코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봐도 이렇다 할 대리만족이나 카타르시스 같은 게 전해지질 않습니다. 정작 영화의 중심에는 지배세력의 횡포와 착취에 시달리는 민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릴 대신한 건 악역이라기엔 참 아름답고 우수에 찬 조윤입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고 예민한 내면을 가졌다는 건 인정하나,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을 밖으로 내몰고 다른 캐릭터를 희생하면서까지 조윤에 집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돌무치가 대의보다는 사적인 복수심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은 일종의 안티 히어로로 받아들 수 있었지만, <군도>는 결코 조윤의 초상화에 그쳐선 안 되는 영화였습니다. 그의 그림을 그리는 데 조금만 덜 수고했다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 것 같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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