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드라큘라>는 한 여자를 끔찍하게도 사랑했던 루마니아의 영주가 어떻게 신을 등지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되었나를 이야기하는 ‘괴물 탄생 설화’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4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오직 한 여자만을 잊지 못하고 살아온 ‘뱀파이어의 순정’을 보여주는 서사이다.

드라큘라 백작이 400년 동안을 살면서, 여자들이 오직 먹잇감으로만 보였기에 가능한 일일까? 드라큘라 역시 괴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엄연히 남자였다. 생전의 여인 엘리자베스를 대신하고 싶은 여성이 400년 사이 드라큘라의 눈에 띄었다면 드라큘라는 그녀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는 엘리자베스를 대신할 뱀파이어로 만들고도 남았을 텐데, 드라큘라는 400년 동안 그의 곁에 있어줄 뱀파이어 피앙세를 찾지 않는다.

이는 400년 전에 죽은 여인 엘리자베스에 대한 순정과 사랑이 생전의 드라큘라 백작에게 그만큼 뼈에 사무쳤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의 순정을 젠더만 고스란히 바꿔놓은 ‘뱀파이어 버전 망부석’에 다름 아니다. 알고 보면 드라큘라만큼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도 없는 셈, 피를 빨아먹는 귀신이 인간 남자보다 ‘순정 마초’가 된다.

드라큘라의 순정 마초적인 성향은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이 연기한 도민준이라는 캐릭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민준 역시 조선시대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400년을 다른 여성과 만나지 않은 채 살아온 외계인 아니던가. 인간 남자는 한 여성에게 뼈를 묻을 만큼의 헌신적인 사랑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흡혈귀와 외계인은 10~20년도 아니고 무려 400년 동안이나 한 여자를 잊지 못한다고 하니, 세상에 둘도 없는 지고지순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인간 남자가 아니라 해도 말이다.

귀신과 외계인이라고 해도 이들의 외향은 여성이 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김수현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할 여성은 없으며, 쭈글쭈글한 김준수의 드라큘라가 조나단의 피를 빨아먹고 난 다음에는 짝 달라붙는 가죽 바지를 입은 매력적인 이십대의 청년으로 탈바꿈하니, 외적으로도 인간 남자보다 나으면 나았지 부족함이 없다.

▲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드라큘라와 도민준의 매력 포인트 한 가지를 더 꼽으라고 한다면 이들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섣불리 자신의 세상으로 초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의당 자신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설사 이것이 프러포즈라 해도 말이다)은, 앞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한평생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드라큘라와 도민준은 미나와 천송이에게 자신의 세계를 선뜻 열지 못한다. 도민준이 천송이에게 차가운 말로 상처를 주고 일시적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것도, 드라큘라가 미나에게 말뚝을 건네준 것도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들의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걸 두려워하는 귀신과 외계인의 배려 아닌 배려다.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남자의 위험한 세계로 사랑하는 여인이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건, 감언이설로 사랑하는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고는 결혼 후에 정작 여성의 행복에는 귀 기울지 않는 몇몇 남자에 대한 판타지적 경종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사랑하는 여자를 남자의 세계로 초대할 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남자들은 드라큘라를 보며 헤아릴 줄 알아야 하리라.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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