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의 끝을 찾아서

할리우드가 오리지널리티를 버리고 리메이크와 리부트 등에 열중하고 있다는 건 이제 말하는 것조차 지겨운 사실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크 나이트>나 <혹성탈출> 같은 영화가 간간이 나오니 탄력을 받아서 멈추질 않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의 넘버원은 단연 일본일 것입니다. 할리우드와 다른 게 있다면 좀처럼 좋은 작품은 나오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한번 히트하는 작품이 나오면 골다공증으로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사골을 우리고 또 우립니다. 최근에 극장판으로 명예를 일부 회복해서 망정이지 괜히 <사골게리온>이라는 비아냥이 난무하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일본 작품은 워낙 한정적이라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주온: 끝의 시작>도 그런 일본영화의 불명예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1999년에 <주온>이 제작됐을 때는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극장 개봉이 아닌 비디오 버전으로 시작했던 <주온>은 예상 외의 반응을 얻자 몇 년 후에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됐습니다. 이 이전부터 국내에서도 <주온>의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법적으로 일본영화의 수입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으나,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누군가 자막을 입힌 비디오테잎이 퍼졌을 만큼 화제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링>도 같은 경로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극장판은 비디오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여전히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선조인 <링>이 그랬던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했던 <그루지>는 더 대단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시리즈는 여기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주온>도 그렇고 <그루지도>도 그렇고 속편을 거듭하면서 작품은 점점 망가졌습니다. 급기야 2009년에 개봉했던 <주온: 원혼의 부활>은 최후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걸로 토시오와 가야코에게 성불을 빌어줄 법도 하건만, 기어코 <주온: 끝의 시작>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죽어서도 편히 쉴 수 없는 이 가엾은 귀신들의 운명은 왜 이런 걸까요?

구관이 명관이고 썩어도 준치일까?

<주온: 끝의 시작>의 토시오와 가야코는 선배 귀신인 사다코를 따라서 <링>의 전철을 밟습니다. 여기까지만 읽고 벌써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이상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주온: 끝의 시작>은 다 죽어가는 시리즈에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나 심장이 멈추자 심폐소생술을 하고 그걸로도 부족해 제세동기까지 동원한 형국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링> 시리즈처럼 제세동기로도 부족해 아드레날린 주사를 심장에 꽂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온: 끝의 시작>은 <사다코 2>까지 이어지면서 누더기로 전락한 <링> 시리즈보단 낫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주온: 끝의 시작>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다코 2>는 이게 지금 공포영화인지 신파영화인지 모를 지경이던 것에 비하면 <주온: 끝의 시작>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합니다. 다시 말해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것에서 만큼은 비교적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싹하고 기괴한 분위기로 압도하는 힘은 여전합니다. 문제는 각본의 구성과 그것으로 이뤄진 전체적인 패턴이 전작들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온: 끝의 시작>도 당연히 그 집이 주요 배경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새하얗게 분장한 토시오와 가야코도 어김없이 등장하며,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묻지도 따지지지도 않고 장의사로 보내버리는 것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덤으로 가야코의 그 불쾌한 신음소리와 불쑥불쑥 나타나는 토시오의 행태 역시 그대로입니다. 심지어 <주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도 고스란히 <주온: 끝의 시작>에 주입했습니다.

말했다시피 이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세월이 흘렀고 힘들게 부활한 영화니 변화를 주길 기대했다면 여지없는 실망만 가득 안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를 주긴 줬는데, 이마저도 이젠 식상할 대로 식상한 전개라서 새롭긴커녕 역효과만 일으킵니다) 반대로 다시 예전의 공포를 어느 정도 전달한다는 것에서는 반길 수 있겠습니다. 사실 <주온: 끝의 시작>의 지금과 같은 선택은 예상 가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제작했던 <주온: 원혼의 부활>은 토시오와 가야코를 뒤로 빼고 스핀오프처럼 내세웠다가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습니다. 아마 이것을 거울 삼아서 과거로의 회귀를 택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관객을 다시 만난 <주온: 끝의 시작>은 결국 모 아니면 도의 결과로 나타날 확률이 다분합니다. <트랜스포머 4>가 그랬던 것처럼 질릴 대로 질렸다면 보면서 콧방귀나 뀔 것이고, 조금이나마 향수를 가지고 있다면 반색하는 기미 정도는 보여줄 수도 있겠습니다. 후자가 많다면 <그루지>처럼 리부트하는 데 신호탄이 되겠네요.

★★★

덧) <링> 시리즈와 <주온> 시리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본 사회의 반영인 건지 여자와 아이는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학대에 시달리고, 인간에 대한 환멸과 증오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타인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의 만연을 비판하고 싶다는 것 같으며, 그 원한이 얼마나 깊으면 부활이나 환생을 동원해 대업을 이루려고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주온> 시리즈에서는 그걸 풀어주려고 시도하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그냥 막 죽어나갈 뿐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