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클릭)에서 청계천 상인 안규호씨의 육성을 통해 청계천 복원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청계천 상인들이 서울시와의 협상을 통하여 가든파이브로 이주를 결정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당선 직후 갑작스럽게 진행된 청계천 복원 사업은, 당시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사업을 모범적인 갈등 관리의 사례로 내세웠을 만큼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청계 상인들의 합의를 거쳐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청계 상인들의 빠른 합의 이면에는 우선 공사부터 끝내놓고 보자는 서울시의 무책임한 속셈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무책임한 자세는 청계천 복원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이주단지로 제시되었던 가든파이브가 개장한지도 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규호씨의 회고를 통해 드러난다.

청계천 복원 사업,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그런 상황에서 청계천 복원 공사는 급하게 진행 된거야. 이명박 시장 당선된지 1년 동안 협상을 끝내버리고, 2년 만에 공사를 끝내고 2005년 10월 1일 청계천 복원 통수식을 했거든. 일본의 롯본기힐 같은 경우엔 14년 동안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3년 동안 공사를 했었단 말이야. 개발 이후에도 롯본기힐에는 이전 상인들이 400여 가구 정도 장사를 하고 살고 있거든. 그런데 우리 나라는 개발을 할 때 주거 환경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사실 가진 사람들의 이권을 더 주려는 사업이었지. 거기서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서,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살게 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단 말이야.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짜고,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잖아. 전부 다 떠나보내고 물갈이 싹 되잖아. 이런 것들기 과연 삶의 질을 높이고 서민을 위한 정책이었나...

황학동이 옛날에 2000년도만 해도 외국 사람들한테, 서울에 다시오면 다시 가보고 싶은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1위가 명동이고 2위가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었어. 막 근대화가 되고 이러면서 집에 박혀있던 토속적인 물건 같은게 황학동 시장으로 다 흘러오고. 외국인들이 오면 그런걸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그땐 황학동에 있으면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거야. 한국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아무 것도 안사고 그냥 구경만 해도 재미가 있었던거지. 그런데 청계천 복원 사업 이후엔 특성이 하나도 없는, 그냥 아스팔트 공간이 된거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운치 같은게 다 사라져버리고. 시각적으로 깔끔해졌을지언정,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은 아니게 된거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청계천이 가지는 역사문화적 의미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사업 추진 당시부터도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공사 과정에서 조선 시대 석축 구조물이 발견 되었을 때는 공기를 무리하게 맞추기 위해 유물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초 청계천 복원의 목표 중 하나였던 생태 복원의 실패, 청계천의 고유성을 드러내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청계 광장 조성 등 청계천 복원 사업을 둘러싼 논쟁들은 박원순 시장이 재복원을 시사 하는 등 아직까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 2005년 12월 30일, 청계천복원추진본부 해단식을 앞두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왼쪽 세번째)과 장석효 행정2부시장(오른쪽 두번째) 이 현판을 내리고 있다. 청계천복원추진본부가 해체된 후, 2006년 동남권이주사업추진단이 꾸려져 청계천 상인 대책을 담당하였으나, 오세훈 시장 집권기에 들어 담당 업무가 ‘도심활성화 및 지역균형발전사업’을 담당하는 균형발전추진본부로 이관되며 상인 대책 전담 기구가 사라지게 된다. (연합뉴스)

"이 정도 규모의 공사가 이명박 시장 취임 1년만에 시작된건데, 그때 청계천 복원 사업이 환경이라던지 역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나 모르겠다는거지. 공사하는 와중에 유물도 나오고 그랬는데도, 그냥 옮겨버리고 밀어버리고 그랬다고 하는데. 요새 박원순 시장이 재복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야기를 한건, 그만큼 당시 청계천 복원 사업이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것을 서울시가 인정하는거고. 또 졸속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그 사업으로 인해서 특수를 누린 사람들은 엄청 많지. 청계천 복원 사업 추진 본부장 했던 양윤재씨가 부시장이 되고, 그 다음 본부장으로 장석효씨가 왔고. 또 장석효씨가 부시장이 되고.. 장석효씨는 4대강 하면서 TF팀장도 되고 했던걸 나중에 뉴스에서 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튼 청계천 복원 사업해서 특수를 누리다보니까... 4대강도 밀어만 붙이면 잘 되었을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4대강을 내가 잘 모르지만 국세만 날라가지 않았나 싶어. 양심적으로 정말 어떤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를 봐야되는데, 뭐 세간에 떠도는 소리가 다 (이명박 전 시장) 측근들이 건설 사업들에서 뭐 수의계약 비슷하게 하면서 챙기지 않았냐 뭐 이런... 언론에서도 많이 나왔던거고."

안규호씨의 말대로 양윤재 전 부시장은 청계천 주변 재개발 비리와 관련하여 수뢰 혐의로 실형을 살았고, 후임인 장석효 부시장 역시 4대강 관련 뇌물 수수로 실형을 받았다. 이명박 시장 재임 당시 청계천 복원 사업과 관련되었던 서울시 관료들, 그리고 청계천 복원 사업에 찬성한 전문가들은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 4대 강 사업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참고 링크 : 청계천 복원에서 4대 강 까지 메뚜기처럼 움직인 연구자들)

이명박 대통령의 저버린 약속

"아무튼 그렇게 가든파이브로 이주단지가 결정 되었는데, 나도 나름대로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니까 이 '특별분양'이라는게 나이롱 잣대라는 말을 하더라고. (명확히 문서로 특별분양가를 적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분양에 대한 우선권, 먼저 분양 받을 수 있는 자격 정도만 줘도 특별분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가격에서 특별분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거지. 그래서 서울시 관계자들에게도 물어보고 이래도 명확한 답변이 안나와. 2005년 10월 1일날 청계천 복원 통수식을 했거든. 노무현 대통령도 오고 그랬지. 그래서 그 전에 서울시가 특별분양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 라고 서울시에 요구를 했어. 그런데 서울시가 그걸 안들어줘. 자꾸 그렇게 나오니까 내가 10월 1일날 통수식을 하면, 우리는 종묘 공원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맞불을 놨지. 그래서 9월 25일에 집회 신고도 내고. 이렇게 막 준비를 하니까 그제서야 서울시에서 날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

▲ 2009년 12월 30일, 이랜드리테일과 가든파이브 관리단, 가든파이브 사업단이 이랜드 아울렛 입점 MOU 체결을 맺고 있다. 가든파이브 관리단은 입주자 대표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입주영세상인들에 대한 대책 마련보다 사실상 서울시와 SH공사의 이해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주정책사TF)

나는 이명박 시장을 직접 만나야겠다, 그리고 나만 만나면 안되고 청계천 36개 상인단체장들을 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 그러니까 세운상가에 있는 한성관인가 거기서 9월 26일 점심에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여기 이명박 시장이 오니까, 국장이니 과장이니 다 오잖아. 그런 상황이 되면 또 상인들이 높은 사람들하고 얘기하니까 아부도 하게 되고 그런게 있어요. 그러니까 서울시에서도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그래서 내가 녹음기를 가지고 갔어. 이명박 시장 근처에 앉아서 얘기를 하면서, 녹음기를 꺼내면서 시장님, 하늘을 봐도 부끄럽지 않다면 녹음을 왜 못하겠냐, 이랬지. 그러니까 국장 과장들 얼굴이 파래지더라고. 그러면서, 특별분양에 대해, 분양가 산정 방식을 문서화해달라고 분명히 얘기를 했어. 지금도 녹음이 다 되어있어. 이명박 시장이 이때 나는 말로 한 약속을 지켜보지 않은 적이 없다. 거기에 더 보태서 해주겠다. 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더라고. 명확한 가격은 역시 얘기 안했고... 그래서 내가 분양가 산정에 대해 더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있는 다른 상인들이 이명박 시장 말을 들으면서 하하하 웃더라고. 그러니까 말빨도 안서고.. 상인 대표라는 사람들이 그냥 웃고 마니까. 그 사람들도 시장 눈치를 보는거지. 이명박 시장이 바쁘다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붙잡지도 않고.. 상인대표라는 사람들이 그냥 시장을 만났다는 것에 만족을 하고 믿었던 거지. 근데 결국 청계천 복원 사업 끝난 후에는 상인 대책 전담팀도 없어지고.. 휴지조각이 된거지."

"사실 청계천 상인 대표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많았는데. 내가 원래 처음에는 서울시 계획에 협조하자, 이주하자라고 말했던 사람인데 서울시가 자꾸 명확한 약속을 미루니까 강경하게 나선거지. 근데 원래 황학동에서 (대책위) 참모로 일하던 사람이, 하극상을 일으켜가지고 내가 밀려나잖아. 내가 너무 강하게 나가니깐, 서울시에서도 그 사람한테 힘을 많이 주고... 처음엔 특별분양가가 비싸면 우리 상인단체장들은 가든파이브에 계약하지 말자, 회원들에게도 이야기해서 계약하지 말고 서울시에 (분양가를 낮추라고) 항의를 하자, 이렇게 얘기해놨었는데, 그래서 나도 특별분양 때도 안들어가고 그랬던 건데 나중에 상인대표란 사람들이 먼저 계약해버리고, 그 사람들이 지금은 가든파이브 관리단을 해먹고 그렇게 된거야. 그런 상인들의 이면을 내가 다 보게 된거지. 예전에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지만, 친일파들은 지금도 잘살고 수구보수가 된거잖아. 결혼 같은 것도 자기 집안들끼리 하고.. 자기들끼리 결속이 엄청 잘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이 참.. 백년 천년 사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은.. 인생이 과연 동물처럼 아귀다툼만 하다가 사라지는게 맞느냐, 만물의 영장이면은 불의를 보면 지적하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자긍심으로 살아야되는데,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없는 세상이 되버린거야. 그런것들을 내가 청계천 상인들 사이에서 너무 많이 봤어. 의인은 언젠가 빛을 본다는 말이 있지만은."

▲ "제가 돌아가면 시청 공무원들 모아놓고 여러분들의 뜻을 더 보태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상인 : "청와대 입성하시면 서울시장 입장이랑 틀려집니다. 오늘 말씀하신내용을 담당자에게 잘 전달해주세요") 저는 말로 한 약속은 지켜요" - 한국경제TV가 공개한 이명박 전 시장의 육성 녹음 내용. 안규호씨가 이야기한 면담 녹음 파일은 한국경제TV <경제매거진 0100> '이명박 대통령의 저버린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12월 19일 방송되었다. 해당 보도 영상은 현재 한국경제TV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어 확인하기 어렵다. 안규호씨는 해당 보도를 담당한 기자가 보도 이후 "고통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 캡쳐 화면)

"나는 우리 상인들의 뜻을 반영해서 일을 해야한다, 사실 나도 청계천 복원으로 인해서 장사가 거의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지. 원래 노점상도 했었고, 나중에 점포 들어와서 상가 번영회장도 하고 그랬단 말이야. 회장을 하는 와중에 청계천 복원이란게 화두가 되서 내가 관련이 된건데.. 사실은 내가 멍청했지. 그때 다른 사람이 하게 놔뒀어야 하는데... 내 일만 했어야 되는데. 내 가게에 일하는 애들도 몇명 있고 했는데 대책위 일하면서 관리가 안되니까 누수도 많아지고. 물건 들어온거보다도 마이너스가 많고. 수금도 안되고... 거의 장사를 못했던거지.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에서 청계천 상인들한테 3천만원 이하까지는 수의 계약을 해주겠다 뭐 이런 얘기를 했어. 그런데 나는 공테이프 50장인가 팔고 말았지 뭐. 어쨌든 장사를 못하는 와중에도 황학동에서 가게를 계속 가지고 있다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이러니까 주변도 다 재개발이 될 것 아니야. 그래서 결국 2007년에 권리금 1억 5천 주고 들어왔던 가게를 이사비용 3백만원 받고 제 발로 나갈수밖에 없었지. 재개발조합에서는 어차피 서울시에서 이주단지 주기로 한거 아니냐, 그게 보상이니까 그냥 나가라 이렇게 나왔고. 그래서 내가 가든파이브로 들어간건 2009년에 가장 마지막 분양할 때 들어간거에요. 분양가가 너무 비싸니까, 상인 100여명하고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분양가가 서울시의 약속이랑 다르다, 하고 집회도 계속하고 싸우기도 계속 싸우고 그랬지. 그러다가 별 소득 없이 맨 마지막에야 들어가게 된 거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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