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내 탓이오’가 화제다.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업무보고를 하던 도중 소위 ‘비선’ 논란과 인사 실패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김기춘 비서실장이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책임론은 그간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제기돼왔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직하는 사람으로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 국무총리 인사 실패 등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및 여당 관계자 등은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언론 등에 계속 흘려왔다.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은 소위 ‘비선’이 주도한 것이라는 게 이런 소문의 실제 내용이다.

즉,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사 문제에 대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론과 비선의 인사 개입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물론 비선의 인사개입이 있었다 하더라도 김기춘 비서실장 역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지만 일단 논쟁의 지형이 그렇다는 얘기다. 국무총리 인선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에 책임이 있다면 이른바 비선은 인사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되고, 비선의 인사 개입이 사실이라면 김기춘 비서실장이 마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논리가 정치권 일부에 성립돼있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도 비판할만한 일인데, 그러한 비판의 기회는 다음으로 넘기는 것으로 하더라도 이 날 국회 운영위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썩 맞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인사 문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안대희,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인연 등이 인선에 영향을 미친 바 없다고 강조했다.

▲ 김기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춘 비서실장의 주장은 항간에 떠도는 ‘서울고 출신’ 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한 설을 언급한 것이겠지만 이외에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의 추천 과정 등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바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인사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사람이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 과정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 후보자 쯤 되는 인선이면 김기춘 비서실장의 무슨 아랫사람이 인선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인사 파동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한 결과였다고 봐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당 인사를 추천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특히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경우 ‘수첩인사를 벗어난 인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결국 ‘비선’에 대한 의혹은 줄어들지 않는다.

모든 걸 양보해서 인사문제에 관여하는 비선의 존재가 사실무근이라면 인사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되는 게 명백하므로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적절한 방식으로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인가?

이 날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 중 의심을 가져볼만한 대목이 한 군데 더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대통령에게 서면보고가 올려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청와대의 모든 것을 총괄하며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행방을 몰랐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가능성은 셋 중의 하나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업무를 태만히 했거나, 대통령의 행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다고 했거나, 아니면 김기춘 비서실장이 몰라야만 하는 자리에 대통령이 갔던 것이거나. 비선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상황들이다. 그 똑똑하다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런 것을 모를리 없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항변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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