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친구의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가가 꿈이면, 포탈 웹툰 사이트로 데뷔해야 하는 거야?”라고 묻자, 친구는 자신의 꿈은 ‘출판 만화’이며, ‘단행본 작업’을 하고 싶지, 웹툰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이후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해나갔지만, 이제는 웹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하기도 한다. 더는 채널과 방식이 개인에게 선택 불가능한 시대, 콘텐츠 제작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던져진 큰 고민이다.
디지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기술은 매우 직접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자면 미디어스처럼 심층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매체의 경우, 독자들로부터 “뭐 이리 길게 썼냐”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단행본 포맷에 맞춘 콘텐츠들이 웹 환경에서 소비되기 시작했고, 불행하게도 이 과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이제는 웹 환경에 따른 수용자의 감각뿐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서의 변화를 인지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었고, 사람들은 더욱 많은 작업을 PC를 켜지 않은 채 하기를 원한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는 현존하는 최고의 전자책 단말기로 알려져있는 아마존 ‘킨들’을 개발한 아마존의 연구소, 랩126에서 일한 ‘킨들’의 책임개발자 제이슨 머코스키가 쓴 콘텐츠의 미래에 관한 책이다. 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는 전자책 신봉자라기보다는 콘텐츠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 가깝다. MIT에서 물리학과 이론 수학을 공부했고, 이커머스 분야에서 많은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수학책부터 SF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책벌레이자 4000권 정도의 종이책을 소장하고 있고, 온갖 이북 단말기를 수집해 사용하는 진정한 의미의 독자이기도 하다. 현재 리딩2.0을 구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형태로서의 전자책보다는 ‘콘텐츠의 전달 방식’으로서의 책이라는 매체다.
“엔지니어들과, 그들이 매달 출판사에 대금을 지불하거나, 다운로드를 관리하거나, 사용자 라이브러리에 있는 책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암호는 모두 킨들이라는 빙산의 꼭대기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존 직원들이 매일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많은 책을 주문하는 토끼굴 같은 칸막이 방들이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있는 빙산의 거대한 부분이다. 실제적인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아마존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영미 출판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이 ‘악의 축’이라는 것이다. 숫자에 밝은 비즈니스맨 출신의 제프 베조스는 온라인이 책의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예측했고 세계 최대 서점을 구축해 온라인 환경에 대응했으며, 마침내 모바일/타블렛 환경에 대응하는 킨들을 내놓았다. 그들은 출판사를 압박하고, 가격을 강제로 할인하게 하며, 자신의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마존 독립 출판 플랫폼 기능을 제공해 높은 수익률을 안겨주는 것처럼 광고한다. 그렇게 아마존이 홍보한 저자들이 독립출판의 스타가 되어 아마존의 출판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성장을 안겨준다. 적어도 킨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전자책 디바이스며, 전자책에 대한 회의론자들도 킨들 디바이스의 뛰어난 구현 수준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아마존이 만든 것은 ‘한 때는 특권 계급에만 허락된 책’을 아무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독서의 매력은 일반인들이 엘리트 계층을 모방할 수 있게 만든 데 있다.
“이제 책은 오락 매체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문화로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힘든 일과가 끝나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고 편안하게 TV나 노트북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생활 속에는 아직도 책을 위한 공간이 남아있다. 책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전달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진실한 매체다. 종이책의 아름다움은 독자가 자신의 속도대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킨들, 즉 전자책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기술자들이 있었지만, 확신으로 밀어붙인 사람, 즉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사람을 그는 제프 베조스라고 본다. 그가 투자한 연구개발비와 매입한 물품, 스타트업 비용과 처음 몇 년간 직원들에게 지급한 급여와 주식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킨들은 파일 포맷의 충실도에는 사실 완벽을 기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킨들이 처음부터 장르 소설이나 베스트셀러 독자들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반즈앤노블의 누크 등이 가세하며 미국의 전자책 산업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책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앞으로도 종이책이 계속 출판되기는 하겠지만 주로 많은 부수를 찍어내는 책과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책에 한정될 것이다. 특별 기념판처럼 소장 가치를 지닌 책으로서 종이책의 매력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책이 주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전자음악이 이제 주류 음악이듯, 사람들은 전자책을 책이라 부를 것이다.”
이 책에는 책의 발견성, 위치기반 앱을 통해 자신만의 서점을 만드는 아이디어, 웹을 통한 책의 공유와 북클럽, 책마다 생겨나는 채널, 거대한 하이퍼링크 모음, 책을 읽어내는 방법, 소셜퍼블리싱, 거대한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내는 서비스까지 콘텐츠 비즈니스에 관한 몇 가지 모델과 상상들이 나온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많은 부분을 저자는 전자책에서 출발시킨다. 책의 디지털화란 단순히 물성을 전자로 구현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에 맞춰, 독자, 저자, 유통, 출판사 모두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저자 스스로도 틈새시장이라 부르는 이런 아이템들의 현실적 모양을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미래에는 책을 읽는 경험이 바뀔 수 있다. 당신은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이나 가족을 책 속으로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책은 당신의 기분에 따라서 독서를 공개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할 것이다.”
디지털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위협적이지 않다. 전자책에 사인할 수 있을까? 사인본에 대한 상상, 바로 이런 것들이 저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책의 환경들이다. 이 책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의 ‘읽기’는 이제 무엇인가다. 책에 나오는 기술적인 용어들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디어를 통한 콘텐츠 전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읽으며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겠다. 출판사 창업하면 망하는 시대다. 해야 한다면 ‘변화에 대응’은 하지 못하더라도,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당면한 것은 변화 속에서 유저들의 기대에 조금도 기대하지 못한 채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출판 산업일 것이다. 글 쓰는 이들, 책 좀 읽는다는 이들의 필독을 권한다.
* 대형출판사들이 전자책의 가능성을 애초 무시하며, 전근대적인 영업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것 같다. 많은 출판사들은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지만, 그만큼의 많은 출판사들은 안일하다. 그러다보니 이 모든 걸 와해시킬 누군가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적어도 전자책에 대해서는 미국 출판 기사를 읽다보면, 우리와 꼭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러다보니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이나 우리나 이런 거 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자조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 16세기 부유한 독자들은 무려 당시의 종이책을 필경사들이 손으로 직접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성이 부족하고 기계적’이라고 비판하며 멀리 했다고 한다. 인쇄된 책은 진품이 아니라 생각한 것인데, 이 때문에 인쇄업자들은 일부러 글자체에 결함을 만들어 ‘심미적인 효과’를 주기 이해 노력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근거로 전자책이 종이책의 미래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업계에서는 완전 대체 불가능성보다는 ‘기능적인 전환’에 대해서는 필연적일 것으로, 다만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다’가 ‘전자책이 종이책의 미래’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흐름에 대해서는 다들 올 것이 온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미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책 판매와 구독이 줄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 기존 출판 산업 종사자 입장에서는 저자의 생각 중엔 허무맹랑한 것도 좀 있다. 자가 출판의 꿈을 가진 분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지만, 출판사의 ‘기획, 편집, 유통, 마케팅 능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내 책 내고 싶다는 이유로 전자책 사업’에 뛰어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최소한의 출판사 투고도 통과하지 못할 콘텐츠로 어떻게 독자를 설득시키려 하는가다. 적어도 편집자 하나는 설득해야 하지 않나. 다른 것들도 가능한 ‘채널’ 안에서 디지털을 구현해내는 것을 고민해보자. 뉴스나 미디어에는 이미 그런 실험들이 벌어지고 있다. 망해가기 직전, 피해보자고 시작해봐야 답이 없다.

미스김

블로그를 운영한 흑역사가 있는 미혼의 직장인이었다. 글밥을 먹고 살다가 최근 창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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