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목드라마에는 우연하게도 공통점이 하나 발견됐다. 다른 때와 달리 러브라인이 무척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첫날밤을 보내버린 장혁과 장나라의 무개연성 베드신은 공감하기 어렵지만, 이준기, 남상미의 러브라인은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짜릿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을 잘 엮어냈다. 양쪽 다 클리셰의 활용이었지만 폭주와 절제의 차이는 컸다.

어쨌든 박윤강(이준기)과 정수인(남상미)은 참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채 나눌 새도 없이 비극에 빠져버렸다. 왕의 개혁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왕의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던 수구파들은 왕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이준기의 아버지 박진한(최재성)을 결국 죽였고, 그에게 역도의 누명을 씌웠다. 결국 딸 연하(김현수)는 노비로 전락하고 아들 윤강에게는 척살의 명이 내려졌다.

전날 불꽃놀이에 취해 두 선남선녀가 주저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가볍고 달콤한 볼키스를 나눴을 때의 모습이 의외로 빨랐지만 아름다워서 불안했고, 그 불안의 정체는 곧바로 밝혀졌다. 수인의 몸종과 산을 내려갔던 윤강의 동생 연하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비극이었으나 오빠 박윤강에게는 일종의 데쟈뷰 같은 것이었다.

윤강의 어린시절 아버지를 노린 적들이 어머니를 납치해 결국 죽음에 이른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에라도 윤강은 어떻게든 동생을 직접 구하고자 했고, 그 뜻을 이루기는 했지만 대신 아버지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버지 박진한을 노린 술책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을 흔히 하늘이 무너진 것과 비교하는데, 그런 상황에도 윤강에겐 슬퍼하거나 분노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도망자 신세가 됐고, 수인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도성을 빠져나와 강가에 다다른다. 그리고 거기서 한국드라마답지 않게 뜸들이지 않고 빠른 이별의 형식을 갖는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지금 윤강에게는 아버지의 죽음도, 동생 연하와의 생이별도 문득 지워질 만큼 이제 막 사랑하게 된 수인과의 헤어짐이 더욱 아프다.

그러나 차마 말 못하고 돌아서는데 매사에 적극적인 수인이 그런 윤강의 마음을 짐짓 알고 달려가 품에 안긴다. 거기서도 짧게 단순하게 키스하며 주어진 시간이 없는 안타까운 연인이라는 상황에 충실한다. 그래서 윤강과 수인의 키스는 더 아찔하고도 안타까웠다. 마침 관군에 쫓기는 김호경(한주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수인은 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이 헤어진 후 뱃사공은 서둘러 배를 띄웠지만 갈대숲 사이에서 윤강을 노리는 최원신(유오성)의 총에 그만 가슴께를 적중당하여 그대로 물에 빠지게 된다. 총을 맞은 이준기의 넋 잃은 연기도 좋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연인 남상미의 비명과 눈물 역시 흔하지 않은 연기여서 그 비극적 상황을 잘 전달했다.

그러나 시청자는 안다. 그 총에 결코 윤강이 죽지 않을 것을. 드라마의 클리셰대로 관군은 윤강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대신 윤강은 어떤 선비(윤희석)에 의해 구해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윤강은 한조라는 일본인이 되어 다시 조선땅을 밟는다. 그러나 신분만 바뀐 것이 아니라 한조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져있었다. 이제부터 총잡이로 돌아온 윤강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활 대신 총을 들었지만 일지매의 모습도 분명 기대할 수 있으리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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