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숙희>의 히로인으로 출연하는 채민서는 간병인 숙희를 연기한다. 그런데 용한 의원마냥 그녀가 돌보는 남자 환자는 백발백중 병상을 박차고 일어난다. 다른 간병인과는 다른 숙희만의 장기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녀의 손길을 거쳐 간 모든 남자 환자가 완쾌하는 것일까. 숙희만의 치유 방법은 모성애와 사랑이라는 ‘칵테일 요법’이었다. 환자를 자식처럼 대하는 모성애와 육체적인 사랑이 만날 때 모든 환자를 낫게 만드는 놀라운 치유가 나타날 수 있었다.

<숙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난 바 있다. 당시 GV때에는 관객의 질문이 워낙에 많아 영화제에서 마련한 질문과 답변 시간을 초과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끈 작품이기도 하다.

- 숙희는 환자를 아이처럼 돌보는 경향이 있다

“환자가 숙희에게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 모성애를 갖게 하지 않나 싶다. 환자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아기 다루듯 하며, 잘 웃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준다.”

▲ 사진 ⓒ박정환
- 하지만 윤 교수는 아이치고는 간병인 숙희의 말을 너무도 듣지 않는다. 먹던 요구르트를 숙희에게 내뿜기까지 한다

“그 장면은 병원 로비에서 촬영했다. 더운 날씨에서 촬영을 했다. 요구르트는 발효 식품이다. 날씨가 더우면 냄새가 난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요구르트를 40여개 이상 썼다. 요구르트가 옷에 묻으면 헤어드라이기로 말리고 찍기를 반복했다. 아기가 토한 냄새가 날 정도라 옆에 있던 스태프도 다가오지 못할 정도로 냄새가 고약했다.

화면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배우와 조명 감독, 카메라 감독, 녹음 기사가 좁은 화장실 공간에 모두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사람의 열기가 히터 못지않게 뜨거웠다. 그 장면을 다시 찍자고 하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 여자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여자 감독님과 작업한 첫 영화가 <숙희>다. 감독님이 여자이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을 짚어줄 줄 아는 감각이 있었다. 연기를 하는 배우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감독님이 구상하는 캐릭터가 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감독님과 충분한 상의를 거친 후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숙희라는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시나리오 상의 숙희의 성격을 종이에 써 보았는데, 의외로 제 실제 성격과 잘 맞았다. 숙희의 여성스러운 면과 모성애가 강한 면이 제 실제 모습과 흡사했다. 숙모가 조카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조카를 제 손으로 일 년 동안 키운 적이 있다. 나중에는 조카를 보내기가 싫을 정도로 조카에게 많은 정이 들었다.”

- 매 영화 촬영하면서 쉬운 캐릭터보다 어렵게 찍은 캐릭터가 많다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쉬운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챔피언>은 데뷔작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집에 오면 쓰러질 정도로 힘들었다. 병원 응급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가발> 찍을 때는 영화를 위해서 과감하게 머리를 잘랐는데 저절로 눈물이 났다. 남자친구와 결별까지 했다.

<가발> 찍을 때 귀신을 보기도 했다. 밤에 가발을 말려놓기 위해 가발을 놓으면 새벽 4시에 어린아이가 가발을 가지고 논다. 가발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신을 피하기 위해 방을 두 번 바꾸기도 했다. 남자 분장을 할 때는 화장실도 못 가고 7시간 동안 분장을 받아야 했다.

<채식주의자> 때는 못 먹어서 힘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날부터 먹지 않았다. 보디페인팅을 할 때 9시간 동안 온몸에 칠을 한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다. <숙희> 찍을 때에는 남자배우가 앉아있는 상태에서 휠체어를 밀면서 산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슬리퍼를 신고 맨몸으로 산을 오르는 것도 힘든데 남자배우의 무게가 실린 휠체어를 밀며 산을 올랐다. 수유하는 장면과 휠체어로 산을 오르는 장면 중 어느 걸 한 번 더 찍을 건가를 묻는다면 수유하는 장면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 사진 ⓒ박정환
- 아직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 있다

“신생아는 이빨이 나지 않아서 엄마의 유두를 깨물지 않는다. 그런데 이가 난 아이는 젖을 빨 때 유두를 깨문다고 한다.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을 위한 ‘수유 커버’가 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촬영을 위해 수유 커버를 구입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티가 나더라.

수유 커버를 빼고 촬영했다. 아이가 유두를 물고 놓지 않아서 촬영하면서 너무 아팠다. 촬영이 끝났을 때 아파서 울 정도였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니 제가 젖을 늦게 뗐다. 어머니도 저를 키우셨을 때 이랬을 것 같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장면을 찍으며 든 생각이 있었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예전에 이상형이 있었다. 영화배우 김상경 선배님이다.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압구정에서 그 분을 우연히 보았다. ‘인사 드려야지’ 하는 게 아니라 ‘헉’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두근거리며 인사한 적이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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