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에는 딱히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장소심(윤여정 분)을 비롯한 <참 좋은 시절> 가족들은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 대립할 때도 종종 있지만, 함께 사는 가족을 위할 줄 알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선한 인물들이다. 오랜 세월 집밖으로 나돌다 늘그막에 집에 들어와 호시탐탐 안방을 노리는 강태섭(김영철 분)빼곤 말이다.

젊은 시절 유명한 호색한으로서 아내 장소심의 속을 꽤나 썩였던 강태섭은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뒤 뒤늦게 장소심과 자식들이 있는 본가로 돌아와 정착을 꿈꾼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편, 아버지 구실을 제대로 하지 않은 강태섭을 강씨네 일가가 흔쾌히 받아줄 리 만무하다.

장소심과 사고로 정신연령이 9살에 멈춘 강동옥(김지호 분)을 위시하여 유독 선량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강씨네인지라,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는 강태섭은 그야말로 제대로 도드라진 '밉상' 그 자체다.

이제 와서 가장 대접 받으려고 안달복달하는 강태섭의 정체성은 '뻔뻔'이다. 자기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가족들에게 "못난 아버지를 둔 자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면서 눈물의 샤우팅을 하는 대신 "내가 나라를 팔아먹었나, 사람을 죽였나!"라며 자기 합리화에 열중한다. 강씨네 사람들이 워낙 착해서 자신을 받아준 것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시늉은 하지만 점점 기고만장해지는 중이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척 하고 안기는 넉살은 최고다.

현재 장소심이 있는 안방입성이 인생 최대 목표라는 강태섭의 최대 눈엣가시는 한때 그의 첩이었던 하영춘(최화정 분)이다. 영춘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태섭은 사기 전과 28범 한사장을 영춘에게 재혼 상대로 소개시켜준다. 물론 보기보다 순진한 강태섭은 한사장이 지명수배 중인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때문에 영춘이 제 발로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나가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갖은 모욕을 준다.

강태섭이 자꾸만 하영춘을 못살게 구는 데는 현재 안방에서 장소심과 함께 지내는 영춘을 내쫓고 대신 자신이 소심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영춘은 한 때 태섭이 품었던 수많은 여자 중 하나다. 이제 난봉꾼 과거를 청산하고 완전한 새 사람이 되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태섭에게 영춘은 자신의 불온하고도 질펀했던 지난날을 연상시키는 악몽이다. 그래서 자신이 더 이상 옛날처럼 여색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장소심과 가족들에게 입증해야하는 강태섭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더욱더 영춘을 공격한다. 그래야 자신이 이 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장소심의 남편이자 강동탁(류승수 분), 강동옥, 강동석(이서진 분), 그리고 하영춘 사이에서 낳은 강동희(옥택연 분)의 아버지이자 강쌍식(김광규 분), 강쌍호(김상호 분)의 친형이지만, 오랫동안 집밖으로 나돈 강태섭은 강씨네 식구들 사이에서 쉽게 섞이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오히려 강씨네 식구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영춘이 강씨네 식구들과 유대관계가 좋다. 집안의 구심점이었던 소심의 시아버지 강기수(오현경 분)가 죽은 이후 소심이 현재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은 호적상 남편 태섭이 아닌 그간 동고동락해온 영춘이다.

자신이 그동안 소심과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모른 채, 자신을 남편, 아버지로 인정해주지 않는 가족들만 야속해하는 강태섭은 가장으로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영춘을 쫓아내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딸 동옥이 쇼핑몰 사업으로 힘들게 번 돈을 투자라는 명목 하에 한사장에게 맡긴다.

하지만 불행히도 강태섭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큰돈을 맡기는 한사장은 아들 강동석 검사가 체포령을 내린 희대의 사기꾼이고, 더 심각한 문제는 강태섭의 소개로 영춘을 만난 한사장이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영춘의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단 점이다. 천만 다행으로 동석의 아내 차해원(김희선 분)이 다른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한사장을 봤으니 망정이지.

어찌되었던 동옥이 힘들게 번 돈을 사기꾼에게 헌납하고 하마터면 동생들 돈과 하영춘의 인생까지 허공에 날릴 뻔한 강태섭은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조만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할 것 같다. 강태섭 딴에는 다 잘 해보려고 한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족들에게 도움은 주긴 커녕, 오히려 강씨네 일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의 빌미를 제공하는 강태섭은 차라리 옆에 없는 게 더 나을 수 있는 트러블메이커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을 위해 해준 것은 없음에도 가장으로서 군림하고픈 욕망만 앞서는 강태섭은 스스로를 위해 뿌린 씨앗이 얼마나 큰 화를 초래할지 알지 못한다.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가족들이 태섭의 어리석음을 질책할 때 태섭은 분명 이렇게 나올 것이다. 다 잘 해보려고 한 건데 왜 나만 갖고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마음 끌리는 대로, 욕망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이 남자의 서글서글한 웃음이 더 무섭다. 설령 어떠한 악의 없이 취한 행동이라 한들, 가족은 물론 그 자신까지 벼랑으로 몰아 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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