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권센터 심영섭 정책위원은 그를 소개하며 “2000년 9월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다른 분”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홍석천.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을 했지만 미디어에서 ‘아웃’당했다. 모든 매체들이 특종 장사를 위해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의 이후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목하지도 책임도 지지 않았다. 불나방 같던 관심이 끝나고, 홍석천 씨는 성정체성을 밝혔다는 이유로 2년 여의 시간을 강제 휴식당했다. 그 후, 14년이 흘렀다. 방송계는 다시 ‘홍석천’을 찾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고,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24일 오후 7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하는 <무엇을 보호할 것인가-미디어와 인권> 강연에 홍석천 씨가 강사로 섰다. 홍석천 씨는 2000년 자신의 커밍아웃과 미디어, 그리고 동성애자의 삶이라는 주제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지하게 또 때로는 웃음으로 그는 참석자들을 들었다 놨다했다.

▲ 24일 오후 7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하는 <무엇을 보호할 것인가-미디어와 인권> 강사로 홍석천 씨가 나섰다ⓒ미디어스
홍석천 씨는 2000년 ‘커밍아웃’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2000년대로 넘어가는 첫 해였다”며 “Y2K, 종말, 사재기도 벌어졌다”며 “개인적으로 ‘구시대는 갔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커밍아웃을 했는데, 정확하게 달력만 바뀌었더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커밍아웃을 언제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2000년도는 좋은 해였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로 넘어가는 첫 해였다. 당시 Y2K, 종말이 온다는 얘기도 많았고 사재기도 횡행했다. 나도 기대가 됐던 것 같다. 후진 구시대는 갔다는 생각에. 21세기에는 사회가 이것(성소수자)도 받아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30세였기 때문에 젊으니, 다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달력만 바뀌었더라. 2000년대가 됐는데 사재기해뒀던 라면과 생수 먹느라 죽는 줄 알았다”

1호 커밍아웃 연예인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컸다.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을 KBS의 방송 녹화 중 했다고 기억했다. 홍 씨는 “해당 녹화분이 방영되어도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담당 PD는 그의 미래를 걱정해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으로 인해 알음알음 기자들 사이로 퍼져나갔고 결국, 모든 매체의 관심이 집중됐다.

홍석천의 ‘커밍아웃’…그리고 미디어의 전쟁 같은 취재열기와 왜곡

“<여성중앙>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연락이 왔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왔는데 말을 빙빙 돌리시기에 먼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고 4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살았던 일들과 생각, 왜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면에 내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당시 일을 봐주시던 변호사와 매니저 등 사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부모님에게 말씀 드린 때에도 그때였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손가락질 받는 연예인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저를 믿어주셨고, <여성중앙>에도 기사를 내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잡지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 즈음 시드니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으로 합류하게 돼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친했던 일간스포츠 기자가 전화를 해서 ‘무슨 인터뷰를 한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올림픽 응원가니 기다리면 돌아와서 이야기하자’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 날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확인되지 않은 팩트로 1면 기사였지만 데크스에서 ‘빨리 쓰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 같다”

홍석천 씨는 “시드니에서도 나를 잡으려는 기자들도 있었다”며 “호텔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숨긴 채 인터뷰를 하려고 했던 기자도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무섭기도 했다. 미디어들이 큰 이슈가 있을 때 달려드는 에너지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시드니올림픽 응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모든 매체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며 “제가 김연아도 아니고 금메달 딴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홍석천 씨가 2000년 ‘커밍아웃’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한 것 역시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진심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1시간 30분 분량으로 제작된 영상에서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우는 장면'만 선택해썼다.

“매우 유쾌하게 진행된 질문 대답 형식으로 만들어진 한 시간 반짜리 ‘커밍아웃’인터뷰 동영상이었다. 그런데 모든 매체에서는 제가 우는 영상만 나갔더라. 사실 그 장면은 이의정 씨가 ‘앞으로 2~3년은 방송을 못할 텐데 오빠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질문에 답을 하다가 울컥했던 것인데…. (언론보도를 통해) 큰 죄를 짓고 의도치 않게 커밍아웃한 것처럼 그러졌다. 그래서 아직도 인터넷을 보면 ‘아웃팅’이라는 분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해되는 기사들이 계속 나가 정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때에는 이미 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기사화(정정)되지 못했다”

홍석천 씨는 “나에 대한 관심은 한 때였다”며 “그 이후 매체들은 커밍아웃하고 뭘 먹고 사는 지 등 별 관심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 홍석천 씨는 지난 3일 새벽 서울 마포구의 한 길가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사람을 보고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줘 경찰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연합뉴스

홍석천, 동성애자를 비추는 언론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으로 세상을 조금 바뀌었을 뿐,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최근 김조광수 감독 결혼식에 뿌려진 오물과 퀴어문화축제에서 벌어진 서대문구청의 ‘승인취소’ 그리고 기독교단체들의 항의 집회까지. 이를 바라보는 홍 씨의 시선은 한 마디로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홍석천 씨는 “내가 커밍아웃했을 당시 욕먹은 것이나 김조광수 감독에게 쏟아졌던 반응은 이해를 한다”며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내가 저들의 다름을 인정해줘야 나에 대한 차별이 왔을 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별’이 여전한 것 또한 현실이다. 그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러분들도 학력, 지역, 성별, 외모 차별을 받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홍석천 씨는 이와 관련해 “저는 죽을 때까지 소수자이고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다수자이기 때문에 제가 힘이 없다”며 “1대 50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은 여러분들의 든든한 응원과 빽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디어에 노출되는 소수자들의 모습들이 자극적인 것들이 많아 더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아파트 주상복합에서 동성애자들이 마약파티를 즐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대적으로 생중계하듯 카메라를 훑는 장면까지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그런데 이성애자들이 마약파티하는 걸 급습하는 걸 본적이 있느냐? 없을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성애자들의 마약범죄율이 더 높다. 그런 건 별로 보도 안하면서 꼭 동성애자들이 뭘 하면 굉장히 크게 이슈화된다. 가뜩이나 쟤들 문란할 거 같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뉴스들만 본다면 편견은 점점 쌓여갈 수밖에 없다”

이날 홍석천 씨가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은 ‘동성애자들이 당신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난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제가 여러분의 남자친구를 뺏었나요?”라고 물었다. 웃음으로 승화된 질문이었지만 소수자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짙은 감정이 베어있었다.

“사람들은 누군지 모르고 욕을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욕을 하는 상대는 자세히 살펴보면 8촌까지 넘어가면 그중 한 명일 수 있다. 내 가족 중 한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아들이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셨겠나. 주변에 다 있는 것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만일, 제일 친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실은 내가 말이야’라고 하면 그에게 ‘꺼져’라고 이야기할 거냐, 아니지 않느냐. 그들 역시 한 인격체로서 잘 살아왔고 여러분들이 느끼지 못하는 숱한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홍석천 씨는 “저 관련 기사가 나올 때에도 마찬가지”라며 “꼭 앞에 ‘동성애자’, ‘커밍아웃’으로 저를 가둬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냥 방송인 홍석천이면 되지 않느냐”, “원빈과 장동건 씨 앞에 ‘이성애자’라고 붙이지 않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JTBC <마녀사냥> ‘탑게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게이 중 내가 탑이라는 뜻이니 그건 봐주겠다”고 다시 웃음으로 말을 돌렸다.

홍석천 씨는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기독교 근본은 사랑”이라며 “그런데 그 속에 동성애자들은 안 된다는 건 이해하지 못하겠다. 저 역시 교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탑게이'로 불리는 홍석천 씨는 연예계에서도 손꼽히는 패셔니스타이다. ⓒ연합뉴스

“탑게이 자리는 혼자 독야청청 지키고 있을 것 같다”

이날 강연은 자연스럽게 JTBC <마녀사냥> 출연과 배우로서의 ‘홍석천’으로 맞춰졌다. 홍 씨는 최근 MBC <트라이앵글>과 tvN <댄싱9>에서 활약하고 있다.

홍석천 씨는 JTBC <마녀사냥> 출연에 대해 “처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미쳤나보다 했다”며 “그런데 섭외한 사람은 열려 있는 생각을 가진 친구였고, ‘제3의 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콘셉트로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소수자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 반응도 좋은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홍석천 씨는 “연기자로서는 지금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고 시도도 하고 있다”며 “연기를 하면서는 애드립없이 대본에 충실하려 한다. 저는 써주시는 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사회와 성적소수자, 용산구청장에 대한 도전 등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쳤다.

“커밍아웃 이후 14년, 나를 보는 시선이 좋아지긴 했다. 처음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들이 그들의 아이들과 저를 분리시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지금은 가게에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와 사진도 찍어주시고 한다. 그게 가장 저에게 기쁜 일이다. 눈감는 순간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 때문에 우리(동성애자들이) 살기가 조금은 편해졌더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그리고 제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의 간극을 좁혀놓고 가고 싶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제 후대 젊은 게이친구들이 선조의 얼을 본받아 잘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나서는 애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탑게이 자리는 혼자 독야청청 지키고 있을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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