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다는 표현만큼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평가도 드물 것이다. 유치하고 황당무계한 작품을 봤을 때 우리는 “이건 뭐 만화도 아니고.”라며 혀를 차고, 탐이 날 만큼 기발한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을 봤을 때 그 모든 찬사를 응축해서 “만화 같다.”는 감탄을 던진다.
tvN의 새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만화 같다.”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만화 같다와 긍정적인 의미의 만화 같다를 모두 포함한다. 헬기를 타고 등장한 말끔한 슈트의 서인국이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존경받는 기업인의 면모를 뽐낸다. 잔뜩 으스대던 서인국은 신비롭게 다가선 이하나의 기계적인 귓속말 지령에 순간적으로 야단맞는 어린애의 얼굴이 된다.
낮의 고교 교사가 밤엔 야쿠자 무리를 이끄는 두목이 된다든가, 보스의 유지를 이어받아 중년의 얼굴로 교복을 입은 조직 폭력배 이야기 등. 그래서 이 닳고 닳은 만화 같은 이야기는 낡고 상투적이지만 이런 소재를 그들에게 연기하게 시켰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큼은 기발하게 만화적이다. 서인국, 이하나, 이수혁. 만화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은 그들을 진짜 만화 같은 이야기에 출연시켰으니. 그들을 캐스팅함으로써 이 드라마의 “만화 같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만화라서 고마워.”로 바뀐다.
여주인공 이하나는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의 만화다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사실 이하나부터가 만화적 캐릭터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연기자이지 않은가. 대한민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백수 로맨스를 그려냈던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나는 아직도 이하나가 남긴 만화적 제스추어 몇 개를 잊지 못한다.
사랑을 책으로만 배워서 처세보다는 감정만이 앞선 나머지, 명품 같은 남자 유진우(이수혁 분)에게 화장실 프러포즈로 망신을 당하는 T.P.O 결여의 인간. 거절당한 상처에 진탕 술을 마시곤 한 손에 뻥튀기를 들고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차인 남자와의 통화를 시도한다.
이하나의 만화 같은 표현력이 빛나는 부분은 제스추어에 깃든 그녀 특유의 조심스러움과 수줍음이다. 헌 종이컵을 재활용하라고 건네줄 때조차 눈웃음을 지어가며 남자 못지않은 큰 키를 구부려 저자세로 굽실대는 능글맞은 디테일에 짜증은커녕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던 건 나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어찌나 수다를 떨었는지 배터리가 방전되자 이번엔 옆에 선 고교생 이민석(서인국 분)의 핸드폰을 구걸하여 또다시 끊이지 않는 한탄을 늘어놓다가 다음날 직장 상사이자 짝사랑 남인 유진우(이수혁 분)의 집에서 발견된 자신에게 기겁한다. 어쩌면 주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장면들이 이하나 특유의 수줍음과 곁들여져서 결코 거북하지 않은 만화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래서 다음날 유수영이 전화기에 저장해둔 ‘유인우 본부장님♥♥’의 하트 두 개를 슬그머니 지우는 장면이 사무치게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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