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시청률의 강자 개그콘서트는 예능 1위의 확고한 지위를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수치로만 보만(평균 14.7%), 20%를 넘나들던 예전만 못하다. 심지어 같은 방송사 드라마 <정도전>(평균 시청률 18.9%)에 동시간대 1위까지 내주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개그콘서트>는 지금 변화 중이다. <끝사랑>이나 <후궁뎐>, <놈놈놈>, <깐죽거리 잔혹사>, <시청률의 제왕>과 같은 인기 코너는 유지하면서, 매주 새로운 코너들이 선보이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최근 <개그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확고하게 자리잡은 인기 개그맨들이다. 김준현, 정태호, 박지선, 오나미, 박성광, 김지민 등 확고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개그맨들에, 새롭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허안나, 김혜선, 김대성, 조윤호 등이 가세해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그 중 김대성의 경우, <쉰밀회>, <우리 동네 청문회>, <취해서 온 그대> 등에서 발군의 개그를 선보이는 중으로, 그가 등장하기만 해도 관객들은 환호하며 그를 반긴다. 조윤호도 마찬가지다. <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스를 따라다니던 졸개에 불과하던 그가, 이젠 거창한 음악이 깔린 상황에서 멋들어지게 등장해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개그를 선보이며 조윤호의 <깐죽거리 잔혹사>로 코너를 변신시켜 버렸다. 보이스 피싱을 하던 아줌마 이수지는 180도 변신하여, 이제 '선배 선배' 코너에서 개대 1학년 여신으로 등장하여 한 코너를 이끌어 가기에 너끈한 능력을 보여준다. '대학로 로맨스'의 허안나는 몸을 사리지 않는 분장과 연기로 뻔한 사랑 이야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선배들의 탄탄한 실력도 만만치 않다. 정태호와 김명희의 환상 호흡은 두 말할 나위 없으며, 오랜만에 등장한 '쉰밀회'의 김대희는 94년생 유아인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존경합니다'라는 코너의 8할은 김준현의 연기력이며, 이쁜 김지민의 반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발군이다.

하지만 인기 개그맨들의 활약은 양날의 검이다. 그들이 등장하기만 해도 객석이나 시청자나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코너들은 때론 회차가 지날수록 속빈 강정 같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그맨들의 개그력, 혹은 연기력과 과연 개그코너 자체의 질이 정비례하는가 생각해보면 코너별 편차가 심하다.

언제나 개그콘서트에서 제 몫을 해주는 송필근, 이동윤, 노우진, 박은영의 뮤지컬 개그는, 개그콘서트만이 가지는 전통의 개그 코너이다. 특히 이번 '렛잇비'는 회사원 컨셉으로, 각 직급별 애환을 놀랍도록 현실감 있게, 그러면서도 결코 웃음을 지우지 않는, 그래서 보다보면 때로는 뭉클해지기까지 하는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선배선배'의 경우 비록 살찐 여성에 대한 비하의 시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자뻑'인 캐릭터를 내세워서 현실과 개그의 균형감각을 채워간다. 이렇게 상투적인 듯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개그의 흐름에 '끝사랑', '쉰밀회' 등이 있다. 가장 속물적인 인간사를 까발리는 그 지점이 바로 개그콘서트의 장기 중 하나로 개그콘서트의 인기를 담보해 내는 코너들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오랫동안 휴지기를 가졌던 개그콘서트에서 새롭게 시작된 코너들에는 '존경합니다'와 '우리동네 청문회'같은 풍자 개그들이 눈에 띈다.

'존경합니다'의 경우, 국회의원이자 대선 후보인 김준현을 중심으로, 그가 돈을 보고 결혼한 박지선과 무능력한 보좌관 송병철과 서태훈을 포진한다. 돈을 보고 결혼했고 그래서 매번 장인이 돈을 대주어야 한다고 하는 국회의원 김준현에 그를 등쳐먹거나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보좌관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풍자의 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존경합니다'는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송경철은 김준현을 어떻게 해서든 이용하고, 박지선은 자기만의 세상에 있다. 물론 그 상황 자체가 이미 이른바 '웃프'지만, 실제 우리가 사회면에서 만나는 정치인의 현실을 이 코너에서 '소름끼치게' 조우하는 경우는 없다. 틀은 풍자적이지만 코너가 개그 그 자체의 흐름으로만 명맥을 이어가며 풍자의 칼날이 무디어졌다.

새로 선보인 '우리동네 청문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고깃집을 하는 이승윤을 놓고 박지선, 김대성, 박영진이 청문위원으로 등장한다. 박지선은 뻔한 사실을 외면하고 엉뚱한 것들 들추며 이승윤이 거짓말을 한다고 추궁하고, 김대성은 반찬으로 나오는 부추를 '피파' 잔디에 적당치 않다며 억지를 쓰며, 박영진은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며 '포지티브'를 강조한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실제 정치 상황에서 보았던 것들이기에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핵심을 비껴가거나 외면하는 청문회 의원들이 아니라 청문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청문회'는 분명 풍자이긴 한데, 거기에 등장한 개그맨들처럼 살짝 핵심을 비껴간 풍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실제 상황이 개그보다 더 '웃긴' 시절에, 그저 풍자의 틀만을 가지고 풍자 개그라고 자부하기엔 어쩐지 좀 싱거운 느낌이다. 우리가 최근 울고 웃는 상황을 반영하는 풍자 개그라면 조금 더 속이 시원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이어가는 '시청률의 제왕'이 비교된다. 뻔한 내용임에도 방송가의 가장 핫한 이슈들을 계속 코너의 내용으로 발 빠르게 수용함으로써 여전히 '시금석'으로서의 개그를 생산해낸다. 물론 정치 풍자와 그보다 만만한 방송 풍자의 어렵고 쉬움은 있겠지만, 기왕에 풍자 개그로 시작했다면 현실의 공감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

그나마 '우리 동네 청문회'나 '존경합니다'는 그 코너의 의도가 가상히 읽혀지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연애 능력 평가'는 새 코너라기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미 개그콘서트를 통해 숱하게 우려먹은, 연애에 있어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을 대상으로 한 것에,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박성호나 정범균이 이전 코너에서 했던 스타일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코너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너 자체가 박성호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해가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호의 개인기는 탁월하지만, 그 개인기의 탁월함으로 이끌어 가기엔 코너의 힘이 부족해 보인다. '남성인권위원회'나 '남자 뉴스' 등 그간 박성호가 했던 코너들이 지금 '연애 능력 평가'의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금의 연애 상담 프로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연애 능력 평가'의 내용이 답답해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개그콘서트>는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에서 방송, 정치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자 시도한다. 거기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은 안정적인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이다. <개그콘서트>는 집밥처럼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권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날카로움을 탑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KBS 9시 뉴스도 달라지는 상황에서 개그콘서트도 조금 더 힘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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