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들어 <쓰리 데이즈>, <신의 선물>을 시작으로, <골든 크로스>, <개과천선>, <빅맨> 그리고 케이블의 <갑동이>, <신의 퀴즈 4>까지 다양한 장르물의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다. 장르물의 특성상 시청률 면에서는 타장르만큼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사회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젊은 층에게는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화제성을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 장르물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남자들이다. 그것도 <빅맨>의 김지혁을 예외로 하고, 대부분 청와대 경호관, 전직 형사나 형사 혹은 검시관, 검사시보, 변호사 등 전문직 남성들이다. 이들은 자기 가족 혹은 자신이 일을 하다 조우한 사회의 부도덕한 면에 맞서 진실을 수호하는 의지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 드라마에는 모두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경찰관으로 쫓기는 경호관을 돕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엄마가 되어 직접 유괴범을 쫓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여성 캐릭터들이, 올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장르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드라마마다 형편의 차이가 느껴진다. 때로는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가하는가 하면, 여전히 수동적이고 보조적이며, 때로는 민폐에 가까운 '여성'으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48시간을 구금하고 심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갑동이라는 알게 된 상황에서도 너무나 태연자약한 차도혁에게 절망감까지 느끼던 오마리아는 자신의 그런 무기력감의 돌파구를 차도혁의 다중인격에서 찾으려 한다. 차도혁은 다중인격이라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정신적 분석으로, 그가 자신에게 여전히 뻔뻔하게 대하는 그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자인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울은 한 술 더 뜬다. 무려 여덟 명의 여성을 즐기듯 죽인 사이코패스 류태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명목하에 류태오를 찾아든 마지울은 그가 가진 분노를 일깨우며, 그 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피해자로서 자신의 사건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싶어 하는 오마리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벌]의 쏘냐처럼 범죄자의 구제에 연연해하는 마지울이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가 아니라 그녀여야 하는가?
그녀는 하무염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연쇄 살인범 류태오를 따라 나서던 자기중심적인 맹랑한 여고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류태오가 살해했던 여덟 명의 여자들은 마지울의 염두에 없다. 오로지 자신을 바라보는 류태오와, 그에게 대단한 존재인 것 같은 자신만이 있다. 거기에 모성성의 발로라 여겨지는 무한한 측은지심이라니!
오마리아는 한 술 더 뜬다. 갑동이를 잡기 위해 치료 감호소의 정신 감정의가 되고, 류태오를 갑동이를 잡기 위한 제물로 쓰기조차 마다치 않던 그녀가, 정작 갑동이 앞에서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직분을 망각한 채 흔들린다. 아니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의 지식이, 그녀의 감정의 노예가 되어 그녀의 눈을 막게 된다.
17회에 이른 <갑동이> 여성 캐릭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앞에 있는 상황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성이, 냉정한 판단보다는 충동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르물에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캐릭터의 몫은 대개 여성들의 것이란 점이다.
화제를 안고 시작했던 <신의 선물>에서 납치된 딸 샛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 김수현(이보영 분)은 번번이 민폐 상황을 만든다. 딸을 찾기 위한 맹목적인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앞뒤 안 가리고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고, 정작 그 상황을 해결해주는 건 남자 주인공이나 주변 남자들의 몫이었다.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납치범을 찾겠다며 정작 딸을 방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골든 크로스>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서이레(이시영 분)와 아버지 기업을 망가뜨린 골든 크로스 멤버들에게 복수하고자 골든 크로스 대표가 된 홍사라(한은정 분)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랑에 눈물 흘리고 가슴아파하는 역할이다. 그녀들이 하는 일은 복수이거나 정의실현이지만, 사실 핵심은 '사랑'이다.
최근의 장르물 드라마는 2014년의 한국 사회를 냉정하게 재단하는 사회 비평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그 드라마 속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전근대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꼭 여성을 섹스어필한 존재로만 쓰는 것이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오로지 감성이나 모성, 혹은 연민이라는 특정한 감정적 기제로서만 여성을 소비하는 것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방식에 다름 아니다.
온몸이 묶인 채 갇힌 이차영(소이현 분)은 스스로 악을 쓰며 묶인 것을 풀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중회전을 하며 차에 치일 뻔하고서도, 동료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에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뿐이며, 내가 나의 일을 하듯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 윤보원 순경(박하선 분)은 한 술 더 뜬다. emp탄을 맞고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끄덕없고, 남자 세 명 정도는 거뜬히 쓰러뜨린다.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조력자로서 물심양면 도움을 준다. <쓰리 데이즈>는 작가의 의지만 있다면 여성 캐릭터들도 진일보한 이성적인 인물로서 드라마 내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장르물은, 여성을 '여성'으로 소비하고 소모하는 데 진력하는 편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늘 문제를 만들고 헤매고 흔들리며, 그녀를 그렇게 만든 남성들의 잿밥이 되거나, 그녀들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봉사한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사회적 시선의 성취만큼 여성상을 구현하는 시선의 성취가 아쉽다. 여성을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존재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조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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