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은인과도 같은 두 사람,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가 <베스트 오퍼>로 돌아왔다기에 냉큼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노년의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베스트 오퍼>에서도 노장들의 궁합은 여전하네요. 예술품 감정사인 버질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한번에 예술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날카로운 눈과 늘 장갑을 끼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는 그에게 기이한 여인으로부터 마뜩잖은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것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면서 조금씩 애틋한 감정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제목 <베스트 오퍼>는 경매에 나온 물품에 최고의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평생을 미술품 감정과 경매에 바친 데서 알 수 있다시피 버질은 지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베스트 오퍼>는 그런 그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제안'이 들어오면서 몰라보게 변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립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 어떤 위력과 파괴력을 미치는지를 기가 막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꾸준히 호흡을 맞췄던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는 <베스트 오퍼>에서도 섬세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관객을 '유혹'합니다.

<베스트 오퍼>를 제대로 논하려면 불가피하게 결정적일 수도 있을 스포일러를 발설해야 합니다. 행여나 약간의 힌트라도 드렸다가는 김이 새게 할 수 있어서 더 조심스러운 바람에 글을 쓰기가 난감하다는 게 좀 아쉽네요.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베스트 오퍼>는 마냥 아련하고 애틋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최고의 로맨틱 XXXX 무비"입니다. (저 네 글자는 밝히는 즉시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합니다) 시종일관 복선을 차츰차츰 깔고 있어서 어렴풋이나마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만, 막상 그 순간을 눈으로 보게 되면 이상한 감격에 사로잡힙니다.

실존하지 않는 미술품 속 여인에 둘러싸인 채 삶에 만족하고 자신을 위로하던 남자가, 실체(?)를 가진 여인과 만나 서로 응시하고 자신의 감정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지를 <베스트 오퍼>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허술한 구석이 많지만 로맨스와 '그것'을 우아하고 기품 있게 조화시킨 솜씨만큼은 일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랑을 한번쯤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 소재의 조합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버질을 보면 가슴이 아릴 것입니다. 과연 열린 결말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쪽으로 생각하게 되실지도 궁금합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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