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관심이 없던 영화였다가 감독이 빌 어거스트라는 걸 알고서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후로 처음이니 7년 만이군요. 아, 그러고 보니 <베스트 오퍼>와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공통점이 몇 개 있습니다. 둘 다 노장 감독의 신작이고, 사랑과 또 하나의 소재를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구성에서 동일합니다. 주연도 노년인 제프리 러쉬와 제레미 아이언스고, 두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는 각각 결말에 다다르면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베스트 오퍼>와 달리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해서는 좀 더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 메르시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학교 선생인 레이먼드가 갑작스럽게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면서 시작합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비포 선라이즈> 이후 적지 않은 배낭여행자가 꿈꾸고 있을 유럽여행에서의 낭만을 그린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한 노년의 남성이 금세 푹 빠진 책을 쓴 저자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스터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에서도 두 영화는 닮았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베스트 오퍼>와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베스트 오퍼>가 두 가지 소재를 유기적으로 엮어 울림을 전하는 데 반해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성급하고 얄팍하게 조리하고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배경으로 삼은 것은 포르투갈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정권을 쥐고 있던 살라자르의 독재정권 시절입니다. 영화 속 주요인물들은 지성을 갖고 그에게 맞서 싸우는 한편으로 삼각관계에 빠지고, 레이먼드는 그들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되찾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정작 영화에서는 제대로 보여지질 않는단 점입니다. 각색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은 훤히 알 수 있는 바지만 그 결과가 마땅치 않습니다. 원작을 읽진 않았으나 영화만 보면 소설의 정수가 완전히 누락됐을 것이라고 절로 짐작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비단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작년에 개봉한 대만의 <여친남친>만 하더라도 정치적 시대상에 여러 인물의 관계를 투영시켜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잘 보여줬습니다. 그런 것에 비할 수 없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면서는 감정적 동요가 별로 일지 않았습니다. 초반부터 지나치게 현학적인 대사를 읊어대면서 무게를 잡는 데다가, 각 인물의 복잡한 심리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감정을 오롯이 포착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중심이 온통 거기에 쏠려있습니다. 숫제 살라자르의 독재정권이라는 배경은 곁다리로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허수아비처럼 갖다 놓았을 뿐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마지막에 나타나는 여자의 정체와 레이먼드가 "그들은 열정적인 삶을 살고 갔다" 따위의 발언을 하는 것도 영 탐탁지 않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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