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발언을 단독보도한 KBS <뉴스9>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해당 소식을 전한 KBS뉴스 트윗은 600회 이상 리트윗됐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시청자들은 'KBS가 변하고 있다'는 감상을 전하고 있다.

11일 KBS <뉴스9>는 예고부터 화제를 모았다. 문창극 후보자가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했다는 예고편 캡처는 삽시간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상에서 퍼졌고, 발언 수위와 해당 보도 출처가 KBS라는 점 때문에 ‘합성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어났다.

KBS <뉴스9>는 마치 보란 듯, 첫 뉴스부터 세 꼭지를 내리 문창극 후보자 검증 보도로 채웠다. 검경의 금수원 재진입 소식을 전하면서는 대대적 수색을 벌이면서도 난항에 빠진 검찰을 겨냥했고, 유가족들의 입장이 담긴 세월호 참사 국조특위 보도도 비교적 빠른 8번째 리포트에서 전했다. (KBS <뉴스9> 11일자 방송 목록 바로가기)

▲ 11일 KBS 뉴스9에 보도된 밀양 송전탑 갈등 관련 보도

새벽을 틈타 공권력을 대거 투입한 ‘밀양 사태’도 9~10번째 리포트에서 비판적으로 다뤘다. <뉴스9>는 “9년 넘게 주민들 반대가 이어진 밀양 송전탑 현장에 오늘(11일) 새벽 공권력이 투입됐다”고 보도하며, ‘경찰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주민을 끌어내고 부상자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2005년부터 10년 간 이어진 밀양 송전탑 사태의 요지는 무엇인지도 상세히 다뤘다. (▷관련기사 : <밀양 송전탑 사태 ‘9년 갈등’…쟁점은?>)

KBS의 ‘직구’, 문창극 보도 어떻게 가능했나

어제 KBS <뉴스9>에서 단연 돋보인 보도는 역시 문창극 후보자 검증 보도였다. KBS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에둘러 전하거나 누락하는 식으로 몸을 사려왔던 과거와 다른 뉴스를 보여준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KBS가 변하고 있다”, “꽤 괜찮은 언론이었군요. 사장이 누가 오든 앞으로는 변함없기 바랍니다”, “문창극은 JTBC보다 KBS가 더 까버리네. 어쩐 일이래” 등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KBS 뉴스9는 11일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망언을 톱 뉴스로 보도했다.

문 후보자 관련 보도 사정을 아는 한 기자는 “공직자 검증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 시작한 것”이라며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은 어느 누가 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판단 하에, 뉴스 가치가 높다고 판단돼 톱 뉴스로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당 동영상에 접근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후보자 검증과 관련해) 뉴스 가치가 높은 내용이라면 충실히 보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일각에서 도는 ‘문창극 후보자가 차기 KBS 사장설이 돌아 이를 차단하기 위해 센 보도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사실무근이다. 철저하게 뉴스 가치를 보고 보도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길환영 사장 해임 이후 달라진 보도국의 ‘분위기’도 이 같은 보도를 가능하게 했다. KBS기자협회(협회장 조일수)는 지난 9일 보도국 간부도 함께 참석하는 기자 총회를 열어 KBS 뉴스 제작 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기자 총회에 참석한 기자는 “보도 시스템 개선 관련 TF를 만들었다. 보도본부장은 TF에서 나오는 결과물에 대해 ‘토 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단, 국장 임명 동의제 등 자신의 권한 밖 요구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도국장은 기자총회에서 ‘어떤 아이템이든 가져 와라. 팩트만 맞으면 보도하겠다’고 말했다”며 “파업을 한 뒤 보도국 간부들이 과거처럼 뉴스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불신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으나, 여하튼 기자들이 가져온 단독을 예전처럼 뭉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기자는 오늘(12일) 편집회의에서 보도국 간부들이 “어제 보도로 인해 얘기가 많으니, 후속 취재를 충실하게 하라”고 기자들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과거 보도국 간부들의 지시에 따라 보도 방향이 좌지우지됐던 것과 달리, 기자들에게 취재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도 이런 뉴스 할 수 있다’ 느껴… 자신감 회복하고 있다”

가능성을 보여준 KBS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향도 크지만, 가장 고무된 곳은 역시 KBS 내부다. 특히 KBS 기자들은 “당연히 KBS가 해야 할 보도”라면서도 “우리도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뜻깊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A 기자는 “KBS의 정상화가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하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뉴스가 정치적 외압이나 개입이 없으면 이렇게 차근차근 나아질 수 있다는 점, 기자들의 취재와 제작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을 알린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도 언론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B 기자는 “기사도 좋았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이 더 인상적이었다”고 고백했다. B 기자는 “댓글을 보면서 파업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시청자들이 (이런 방송을) 굉장히 많이 기다렸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지금 보내주는 기대와 응원만큼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지만, 좋은 보도를 꾸준히 한다면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 11일자 KBS 뉴스9 1~3번째 리포트

또한 “어제 뉴스를 보고 ‘톱 뉴스부터 초반 20분대까지 뉴스가 그동안 달랐다. 그동안 많이 가려지거나 희석됐던 멘트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문제점을 거론해서 좋았다’고 한 분도 있었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C 기자는 “그동안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 ‘우리는 해도 안 돼’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제 보도로 인해) 다들 고무돼 있다. ‘우리도 이런 뉴스를 할 수 있구나’ 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D 기자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분이 좋았지만, (그런 검증 보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결국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길환영 사장 체제 하에서는 아마 단독보도의 기회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길환영 사장이 있었다면 단독 아이템이어도 하루 연기 지시를 했을 거다. 어제 뉴스K에서도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고 하니, 연기됐으면 단독보도의 의미가 없어졌을 테고. 다음날 뉴스를 하더라도 이미 나온 얘기라며 큐시트에서 훨씬 뒤로 밀리지 않았을까. 안 봐도 그랬을 것 같다. 또, 어제는 문창극 후보자 검증 보도가 3꼭지였는데, 문제의 발언 녹취 하나 정도 집어넣고 여야 반응 집어넣고 하면 어제 했던 분량의 반 정도 이야기밖에 못했을 것이다”

KBS 기자들, 공정보도 장치 마련 노력 중

KBS <뉴스9>는 11일 방송으로 특종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공직자 검증 보도를 하고 밀양 송전탑 갈등 등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길환영 사장 해임 이후 ‘반짝 활약’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KBS 기자들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D 기자는 “어제 뉴스를 보고 KBS가 잠깐 동안 상식의 시대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봤다”며 “다만 이런 변화가 정권에게 KBS를 더 확실히 장악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줄까봐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C 기자는 “(새 사장이 오면 보도 태도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그런 우려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보도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장치가 상시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국장 평가제 등 구조적인 장치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고 전했다.

현재 KBS 기자들은 △국장 임명 동의제 혹은 국장 평가제 도입 △평기자들의 편집회의 참석 확대 및 보도국 옴부즈맨 제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