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남자>는 <아저씨>보다 더 세련되게 변했고 많은 부분에 공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반면에 그것으로 인해 <아저씨>가 갖고 있던 '단순함의 미학'이 <우는 남자>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도입부부터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면서 돌아왔다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정범 감독은 욕심과 압박이 지나친 나머지 <아저씨>가 왜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까맣게 잊은 듯합니다. 할리우드에 비유하자면 <에이리언 2020>으로 재미를 보고 자본을 대거 투입해 <리딕-헬리온 최후의 빛>을 제작했지만 혹평이 빗발쳤던 데이빗 트워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는 남자>의 결정적 패착은 곤과 모경이라는 두 명의 캐릭터에게 과도한 애정을 투영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영화를 망친 주범이었습니다. 곤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관객의 감정이입을 높이는 데 굳이 지금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내러티브가 필요하진 않습니다. 당장 <아저씨>와 비교하면 <우는 남자>는 영화의 1/3 가량을 여기에 집중했으나 부작용만 커졌습니다. 킬러인 곤이 죽이려고 했던 모경에게까지 사연을 부여하고 그것을 어필하는 데 정성을 기울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의 의도는 모경으로 말미암아 곤에게 더 어두운 그림자를 덧씌우겠다는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우울함이 지나치게 가중되어 관객을 일찌감치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그 탓에 액션의 노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설상가상 그토록 시간을 투자하고도 완성도가 차지 않았다는 것은 영화의 에필로그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사족에 가까운 이 장면까지 캐릭터를 보충하는 데 동원한 것은 감독 스스로 연출에 실패했다는 것을, 즉 왜 곤이 '우는 남자'인 것인지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것이 더 아쉬운 이유는 <우는 남자>가 상당부분 <아저씨>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캐릭터부터 두 영화는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울분을 간직한 남자에게 그걸 상기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고, 내내 자신을 가두었던 과거라는 올가미를 벗어던지고자 위험이 도사리는 현재에 기꺼이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는 것에서 <우는 남자>와 <아저씨>는 닮았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고 남자로 인해 여자는 홀로서기에 나선다는 것도 같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아저씨>를 이끄는 정서는 복수와 응징이지만 <우는 남자>는 참회와 (자기)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에서 오는 영향이 꽤 커서 관객이 각 영화를 받아들이는 반응에서 극명하게 다를 것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는 남자>는 <아저씨>에 비해 극적 쾌감은 상당히 떨어지고, 동정이나 연민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액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저씨>에서 봤던 그 박진감 넘치고 리얼했던 액션이 <우는 남자>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촬영, 편집, 무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었습니다. 스탭이 대거 교체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육박전에서 총격전 위주로 바뀐 차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한 두 영화의 정서이자 캐릭터의 감정이 액션에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에 관객이 체감하는 것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아저씨>보다 더 복잡한 캐릭터의 내면을 끌어들인 것이 <우는 남자>에게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이를테면 감독의 전작인 <아저씨>의 액션과 <열혈남아>의 드라마를 <우는 남자>에서 융합시키는 게 목표였겠으나, 대사에서도 예전과 같은 센스가 엿보이지 않은 걸로 짐작컨대 각본부터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는 남자>가 증명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아저씨>와 같은 액션영화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토록 단순하면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액션영화를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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