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151회를 마지막으로 KBS 일일 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는 진부와 진보를 절반씩 섞은 기묘한 결말로 시청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여느 KBS 홈드라마가 그랬던 것처럼 등장인물 대부분이 모여 큰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하하 호호하는 매듭짓기였죠.

이 드라마의 족보를 카오스로 만든 원흉이자 악의 근원지인 윤석태(강인덕 분)는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돈생돈사를 외치더니 죄인의 몸이 되고 나서는 별안간 성격 좋은 동네 아저씨가 되어있었습니다.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그 때문에 풍비박산 난 가정이 한둘이 아님에도 당연히 모든 등장인물은 죄인을 용서했고, 마치 밀양의 한 장면처럼 감옥 안에서 그는 평화를 찾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원수 박범진(선우재덕 분) 일가에게 본의든 타의든, 정자와 장기를 기증해준 남편에게 이혼할 기세로 달려들었던 유진순(김혜옥 분) 또한 어느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공정남(이정길 분)과 부부의 로맨틱한 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역시 이런 드라마의 마무리로는 빠져서는 안 되는 여주인공의 입덧 장면을 언니 공수임(황선희 분)이 대신함으로써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기도 했죠.

이토록 ‘사랑은 노래를 타고’의 마지막 회는 홈드라마 특유의 “끝이 좋으면 다 좋아요.”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공들임과 박현우, 두 남녀 주인공의 애정 전선은 먹구름만 자욱했었죠. 심지어 조귀분(반효정 분)과 박두식(박웅 분)의 짤막한 황혼의 로맨스마저 예지한 이 드라마가 남녀 주인공의 연애만큼은 쉽사리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일일 드라마 특유의 사필귀정한 엔딩으로도 차마 재결합할 수 없을 만큼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엮일 수 없는 공들임(다솜 분)과의 가혹한 인연으로 말없이 한국을 떠나버린 남주인공 박현우(백성현 분). 그리고 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1년 후의 자막이 뜬 첫 번째 공간은 공들임(다솜 분)의 친부가 잠들어 있는 무덤가였죠. 혼자가 아닌, 키워주신 아버지 공정남과 그곳을 찾은 들임의 해탈한 얼굴. 그것은 피는 섞이지 않았더라도 윤리적으로 근친이나 다름없는 옛 연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쐐기를 박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의 인연은 운명이라는 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전거 사고로 재회한 그들. 말없이 떠난 옛 연인을 향해 원망을 털어놓는 들임이었지만 결국, 후일을 약속하지 못한 채 서글픈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은 뮤지컬 배경의 ‘사랑은 노래를 타고’의 최전선인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됩니다.

들임의 파트너가 복통을 호소하며 출연에 차질을 빚자 염려하는 관계자들의 모습 다음으로 홀로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들임에게 파트너를 대신하여 다가온 박현우의 모습. 잠시 당황했다가 수줍게 미소 지은 들임은 현우가 내민 손을 마주 잡습니다. “우리 함께 영원히. 변치 않으리. 이 품으로 지킬게요. 두려워 말아요. 그대.” “이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요.”라는 노래 가사가 두 사람의 각오를 반영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만.

그 다음 신은 별안간 생뚱맞은 타이틀 송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노래를 타고 특유의 멜로디. “너에게 달려갈 거야., 야이야이야.” 마치 조금 전의 일이 다 장난이라는 것처럼 활기차게 춤을 추는 들임의 모습. 그리고 이 드라마의 전 출연진이 무대 위에 올라와 손뼉을 치며 커튼콜을 하는 마지막. 그저 어안이 벙벙해지네요.

아무리 가족-지인의 사이라고 해도 뮤지컬과 무관한 사람들이 우르르 무대 위에 올라설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그렇다면 이 커튼콜은 뮤지컬의 커튼콜이 아니라 드라마에 출연한 전 출연진이 시청자에게 바치는 커튼콜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제까지 출연한 배우를 소개하며 마무리를 하는 그 장면은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이고 현실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시켜 주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제작진이 이토록 불필요하게 가상의 이야기임을 강요한 것. 그리고 보기 드물게 남녀 주인공을 해피엔딩으로 결론 내리지 못한 것은 이 드라마를 보는 주요 시청층인 중장년층의 정서를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라마 후반부에 작가가 넣은 무리수의 극치인 설정, 공들임의 양아버지인 공정남을 남주인공 박현우의 생물학적 친아버지로 연결시킨 과도한 설정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원수 가문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들임과 현우는 끝내 명쾌하게 이어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두 사람은 남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들임이가 공정남과 나눈 부녀의 정을 부정할 수 없고 박현우가 공정남의 유전자를 외면할 수 없는 이상, 그리고 적지 않은 시선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이상 남녀 사이로 엮일 수가 없는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언니 수임이가 먼저 박현우를 좋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녀 주인공을 패륜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갔던 이 드라마에서 이토록 파격적인 설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죠. 보수적인 중장년층의 정서적 거부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글리 같은 분위기로 뮤지컬 소재를 내세웠으나 결국 곁가지 이야기밖에 되지 못했던 ‘사랑은 노래를 타고’. 그러나 웃고 우는 세상만사를 노래로 표출하는 뮤지컬처럼 그동안 펼쳐졌던 이야기는 모두 가상공간의 연극이었을 뿐임을 명시하는 결말은 기괴함과 동시에 묘한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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